자연의 모든 행적이 연속적이며 그리는 곡선은 완만하듯이 어느 사람의 행적도 모두 연속적이며 그리는 곡선은 완만하다. 불연속에 급작스러운 것은 하나도 없다. 간혹 불연속에 급작스러운 것으로 보이는 것도 시간의 축을 확대해서 보면 연속적이며 그리는 곡선은 완만하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현재에 하고 있는 일의 행적을 알고자 하면 그가 과거에 한 일의 행적을 살펴보면 된다. 또 어떤 사람이 미래에 할 일의 행적을 알고자 하면 그가 현재에 하고 있는 일의 행적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현재 물러나는 정부의 책임자 거의 모두는 과거에 행한 것이 단지 정권쟁취를 위한 사익투쟁(私益鬪爭)의 행적이었지 국민이익을 위한 공익투쟁(公益鬪爭)이 아닌 삶의 행적이었기에, 무능(無能)으로 그 종언(終焉)을 맞이하고 있다. 이들은 허황하고 거짓된 말로 임명자만을 기쁘게 한 자들로 거의 모두는 주어진 지위의 소명(召命)이 아닌 주어진 지위의 권력(權力)에 취해 전문가의 견해를 무시하는 경향의 행적을 남겼다. 간혹은 무엇이 중요하고 우선인지도 모르고 큰소리로 변죽은 많이 울렸지만 거둔 것이 없었다. 특히, 한-일 무역분쟁에서는 전략의 부재에 전술조차 없었으니 그 피해는 막대하였으나, 그
퇴임을 목전에 두고 이루어진 기자간담회에서 소위 대통령이란 사람의 발언을 듣고 말하는 그 입을 의심해야 할 것인지, 아니면 듣고 있는 나의 귀를 의심해야 할 것인지 아주 당혹스러웠다. 조국 전 장관과 관련한 “마음의 빚” 질의에 대한 답변은 확증편향(確證偏向)의 그릇된 신념으로, 건전한 상식의 한 시민에게는 듣기가 거북하고 역겨웠다. 자신의 결심을 바탕으로 일국의 지도자가 된 사람이 난전의 사람들도 감히 하지 않는데 범죄자를 두둔하고 연민을 느낀다는 듯이 발언을 한 것은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된 것이다. “마음의 빚”과 잘 어울리는 글로 주자가훈(朱子家訓)의 “시혜무념(施惠無念) 보은불망(受恩不忘)”은 “은혜를 베푼 것은 마음에 두지 않고 은혜를 입은 것은 잊지 않는다”는 뜻으로 많은 사람들이 가훈으로도 하고 있으며 지켜야 할 도리이다. 명심보감(明心寶鑑)의 정기편(正己篇)에 “귀로 남의 그릇됨을 듣지 말고, 눈으로 남의 모자람을 보지 말고, 입으로 허물을 말하지 않는다”는 글이 있듯이, 이번 간담회에서 있었던 것을 못들은 것으로 외면할 수도 있다. 하지만 명심보감의 이 말을 지키면서 세상을 살아가면, 나는 화를 면할 수 있겠지만 사회는 그릇된 길로 갈 것이다
“고니야!” “네!” “담배 하나 찔러 봐!” “예!” “회장님! 올림픽대로가 막힐 것 같습니다.” “마포대교는 무너졌냐, 이 X끼야!” “아닙니다. 마포대교로 돌아가겠습니다.” 지난 2006년에 개봉한 유명한 도박 영화에 나오는 대사 중의 일부다. 이 나라 수도 서울에서 목적지를 향하는 길이 어디 하나뿐이겠는가. 아무튼... 문재인 대통령이 3일 임기 마지막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을 의결ㆍ공포했다. 개정안은 공포 후 4개월 뒤인 오는 9월부터 시행된다. 이로써 더불어민주당이 강하게 밀어붙인 검수완박 입법 절차가 모두 마무리됐다. 마침내 여러 사연을 남기며 그렇게 돼버렸다. 저간의 우여곡절과 각계각층의 아우성과 목불인견(目不忍見)의 여의섬 개들 꼼수 등에 대해서는 여러 언론매체를 통해 잘 알려졌다. 더 이상 세세하게 거론하는 건 ‘읽는 이’들 정신건강에 커다란 해악(害惡)이 될 듯하니 과감하게 생략하자. 다만, 그 ‘검수완박’(檢搜完剝)이 ‘검찰에 완벽한 개가죽(개革)을 씌우는 것’이라고 짖어대도, 뜻하는 바는 이미 국민적인 상식이 되지 않았나. 그저 ‘문재명과 그 일당 방탄법(防彈法)’이라는 것으로... 물론
신뢰는 사전적으로 인간적 관계에서의 “믿고 의지함”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독일의 사회학자 니클라스 루만은 “신뢰가 행위의 예측(豫測)만이 아니라 예기(豫期)까지 할 수 있게 한다”고 했다. 즉, 어떤 현상과 사실을 신뢰할 수 있다는 것은 건전한 상식, 더 나아가 통계학 등에 기초한 예측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회는 신뢰가 바탕이 됨으로써 형성될 뿐만 아니라, 서로 협동하고 감시와 통제로 인한 비용을 필요하지 않게 한다. 이런 면에서는 신뢰는 사회적 자산으로 공공재(公共財)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사회적 관계에 있어서 선진국일수록 개개인 간은 물론이고 민관(民官)간의 신뢰는 매우 높으며, 신뢰 붕괴로 인한 낭비를 없애려고 늘 노력한다. 지난 4·15 총선거에 있어서 수도권 경합지역의 경우, 당일투표에서는 앞서다가 사전투표에서 거의 일관되게 뒤처지게 된 현상이 나타났다. 이로 인해 일부의 사람들은 어떤 악의를 가진 세력의 인위적 작용이 있지 않고서는 나타날 수 없는 현상이 있었다고 믿었으며, 상당한 의혹의 눈초리를 보냈다. 물론, 투표용지관리의 허술함으로 잔여 투표용지가 분실 또는 도난되어 관외 지역에서 발견되는 등의 일이 나타나 그
지도자로서의 임무를 다한 관창의 아버지 김품일 장군, 제임스의 아버지 밴플리트 장군, 마오안잉의 아버지 마오쩌둥에 대해 살펴보자. 먼저, 망국의 가족이 겪을 고통을 생각해서 처자를 죽이고 결연히 황산벌 전투에 임한 백제의 충신 계백 장군에 연패를 당하던 신라의 충신 김품일 장군은 아들 관창을 두 번이나 사지로 보냈다. 그리고 주검으로 돌아온 마상(馬上)의 아들을 보고 인간으로서 억누를 수 없는 슬픔이 있었지만, 전장에 임한 장군으로서 다른 병사와 화랑(花郞)을 이끌고 선봉에 서서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으며 삼국통일의 전기를 마련하였다. 또, 북한이 일으킨 6·25전쟁에 참전한 미8군 사령관 밴플리트 장군은 아들 제임스 중위를 6·25전쟁에 참전을 시키지 않아도 되는 충분한 위치에 있었지만 참전시켰다. 그는 압록강 남방 50km 지점에 있는 순천을 정찰 폭격하여 중공군의 주보급로를 분쇄하는 교살작전(絞殺作戰)에 참전한 아들이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접한다. 하지만, 그는 “다른 작전이 내 아들을 찾는 것 보다 더 중요하다”며 수색을 중단시켰다. 다른 실종자의 부모들에게 “모든 부모님들이 저와 같은 심정일 줄로 압니다”라는 위로의 말을 남겼다. 또 더 나아가, 마오쩌
속담(俗談) 사전을 펼쳐봤다. 비슷한 뜻을 가진 짤막한 문장들에서 선대(先代)의 지혜를 발견한다. “작은 틈만 있어도 배(船)는 가라앉는다” “적은 물이 새면 큰 배(船)가 가라앉는다” “큰 방축도 개미구멍으로 무너진다” 그리고 이런 뜻풀이가 달려있다. “아주 사소한 결함이라 하여 그것에 손을 대지 않으면 그것이 커져 전체를 망치게 되니, 그러한 후환이 없도록 미리 대비책을 세워야 한다.” 이쯤 되면 현명하신 ‘읽는 이’들께서는 벌써 눈치를 채셨을 터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40년 지기’인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를 둘러싼 의혹이 무더기로 제기되고 있다. 자녀 병역 문제, 자녀 의대 편입 특혜 논란, 외유성 출장 의혹 등이 줄지어 나오면서... ‘국민의 눈높이’라는 말들이 오르내린다. 물론 ‘문주주의’(文主主義)의 가장 돋보이는 국정 철학인 ‘내로남불’은 자동으로 따라오게 된다. ‘아빠 찬스’... 그 조(趙)씨네 특기가 소환되고 있단다. 여기에다가...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가 6·1지방선거 강원도지사후보로 황상무 전 KBS 앵커를 단수 공천하기로 했다. 재선의 김진태 전 국민의힘 의원은 컷오프됐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마저 경쟁력 있는 후보를 경선
우리의 전래동화 중에는 우매한 당나귀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불상을 지고 길을 가던 당나귀가 사람들이 자기 쪽을 향해 허리를 굽혀 절을 하고, 목에 건 불전함(佛錢函)에 돈을 넣어주니까 자기가 잘나서 그런 줄 알고 건방지게 우쭐대다가 그만 불상을 떨어뜨려 깨뜨리고 만다. 당나귀는 마부에게 채찍으로 실컷 얻어맞는다. 이와는 달리 성경에는 예수님을 태우고 그 소임을 다한 충직한 당나귀가 등장한다. 주위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열렬히 환영하였는데도 당나귀는 그 환영이 자신을 향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향한 것을 알고 조용히 목적지까지 간다. 지도자 및 사회 지도층은 국민을 위해 봉사하겠다고 자신의 결심을 바탕으로 선출되었거나 임명된 사람들로서, 예수님을 등에 태워 모시고 가는 당나귀에 비유될 수 있다. 그들은 충직한 당나귀로 자기 자신이 아니라 자신의 등에 모신 예수님인 국민을 위해 일을 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고 자신을 위해 일을 한다면 주제를 모르고 건방지게 우쭐대다 불상을 떨어뜨려 실컷 얻어맞은 우매한 당나귀의 신세가 된다. 그들이 충직한 당나귀가 될 것인지 우매한 당나귀가 될 것인지는 그 자신이 판단하고 선택한다. 물론 그들이 올바른 판단을 하고 또 올바른
기원전 221년 처음으로 대륙의 중원을 통일한 진시황(秦始皇)이 가장 먼저 한 일 중의 하나는 도량형(度量衡)의 통일(統一)이었다. 길이·질량·부피의 단위가 어디서 누가 하느냐에 따라 다르면 사회적으로 큰 혼란이 생긴다. 그래서 시황제는 정복지마다 달랐던 도량형이 언제 어디에서나 누구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여겼으며, 그것이 영토를 합치는 것 이상으로 제국에 필요하다고 여겼던 것이다. 이렇듯 시황제는 도량형을 통일함으로써 산업과 문화, 더 나아가 국가 발전의 기틀을 닦았던 것이다. 우리나라도 1894년 갑오개혁 때에 새로이 도량형을 통일하는 정책을 시행하였다. 도량형이 제 마음대로라면 결국 힘이 있는 자의 이득으로 될 수밖에 없고, 그 손해는 백성의 몫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래서 조선시대에도 암행어사들은 마패(馬牌) 이외에도 관리들이 도량형을 속이지는 않는지 알아보기 위해 유척(鍮尺)을 들고 다녔다. 저녁 퇴근 시간에 친구와 들른 주점의 삼겹살 1인분의 정량에 차이가 나면 짜증이 난다. 그런데 근간에 정치인을 비롯한 사회 지도층의 잣대를 보면서 염량세태를 느낀다. 척도가 엿장수 마음대로 때와 장소에 따라 또 사람에 따라 다른 듯하다. 일부 인사들은 특
진(晉)헌공이 여희(~기원전 677)에 속아 태자 신생을 죽였는데 그 위기가 중이(진문공)에게도 바로 미칠 상황이었다. 이에 진문공은 가신들과 적 나라로 도피하지 않으면 안 되었는데, 개자추(介之推)(달리 개추(介推), 개자(介子)라고도 함)는 진문공을 수행하며 충언에다 헌신을 다해 모셨다. 진문공이 신하 중 하나인 두수(頭須)의 배신으로 먹을 것이 없어 허기져 있을 때 개자추는 자신의 허벅지 살을 베어 고깃국을 끓여 주군을 받드는 “할고봉군(割股奉君)”을 하였다. 물론 진문공이 적 나라로 도피할 때에 개자추와 아울러 호언·호모·조최·선진도 함께 하였으며, 이들의 목표는 진(晉)으로 하루속히 돌아가서 국정을 바로잡는 것이었다. 진문공이 19년의 방랑을 끝내고 진후(晉侯)가 되었을 때, 개자추를 제외하고 탐천지공(貪天之功)하는 4명 등에만 녹봉이 내려졌다. 하지만 개자추는 이에 실망하지 않고 초연히 노모와 함께 면산에 은거하였다. 그의 노모 또한 사정을 알고서 오히려 웃으면서 "역시 내 아들이야. 암! 선비가 공로를 다투는 건 소인배와 같음이니라"고 하며 독자(獨子)와 함께 한 것이다. 후일 진문공은 이를 깨닫고 개자추를 면산에서 나오게 하기 위해 산에 불을
강간·약탈 등 두 달 넘게 이어진 소련 점령군 병사들의 비행과 만행에 격분한 신의주 시민들과 학생들은 1945년 11월 23일 소련군의 총탄을 맞서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소련 측 군사보고서에 따르면, 그날 100백여 명의 학생들이 학살당했고, 700여명이 부상을 입었다. ‘신의주 학생 의거’··· “소련군이 맨주먹인 어린 학생들을 전투기까지 동원하며 무력 진압했다”는 증언도 있었다. 당시 소련군의 여러 만행(蠻行)과 관련해서는 이런 사실(史實)을 간과(看過)할 수 없다. 김일성은 이런 일을 뻔히 보면서도 아무런 항의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소련의 산업 설비 반출에 협력하기도 했는데... 세월이 흘렀다. 세기(世紀)가 바뀌었다. 러시아군이 점령한 부차와 이르핀, 호스토멜 등에서 잔혹하게 살해된 민간인 시신을 최소 410구 이상 수습했다고 밝혔다. 러시아군의 집단 학살과 처형, 성폭력, 고문 등 증거가 속속 드러나면서... 집단 성폭행을 포함해 총구를 들이대고 위협하거나,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강간당했다는 증언까지 나왔다... 역사가 반복(反復)된 건지, 그 나라와 군대가 자랑스런(?) 전통을 제대로 잇는 건지 아리송할 뿐이다. 지난 세기(世紀) 이 땅에 진
“키에르케고르”가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 한 것과 같이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는 것처럼 불행한 것은 없다. 그래서 어느 때나 사람들은 세상이 어지러워지면 새로운 구세주를 갈망한다. 그 때마다 자신이 세상을 구원할 미륵불이라 하며 나타난 자가 예전에도 있었으며 현세에도 있다. 그들은 경률론(經律論)을 독송하고 의식주(衣食住)를 보시하고 계행(戒行)을 수양하는 등을 한 현존의 미륵불이라 하였으나, 사람들에게 풍요와 안녕을 가져다주기는커녕 오히려 빈곤과 불안을 가져다주었다. 근간에 우리나라에도 우주의 모든 상서로운 기운을 지닌 듯이 외치며 나타난 한 무리가 있었으며, 평등·공정·정의를 외치며 나타난 또 한 무리가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만이 어떠한 역경도 이겨나갈 미래에 대한 희망이라 하였으나, 그렇지 않았다. 모두 미륵불인 것처럼 외쳤지만 사람들에게 자비를 나타내 보이기보다,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았으며 모두 위선에 있어서는 한 치의 양보도 없었다. ‘위선의 태양’과 ‘마지막 잎새’ 태양은 너무나 따뜻하고 아름답지만, 너무 뜨거워 가까이 다가갈 수 없다. 그 빛은 눈을 멀게 만들 수도 있기에 인간은 언제나 다른 사물을 통해 태양을 본다. 이는 결국, 인간
인간이 져야 할 무거운 짐들을 지고 험준한 히말라야의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을 오르내리는 지상에서 가장 슬픈 짐승인 '좁교'가 있다. 이 짐승은 인간에 의해 저지대의 물소 암컷과 고지대의 야크 수컷의 이종교배를 통해 태어나서 평생 일만하다가 생을 마감하면서도 지중해 연안에서 짐을 나르는 노새와는 달리 후손도 낳을 수 없다. 인간에게 콩 한 톨도 짐으로 느껴지는 히말라야의 험준하고 높은 계곡과 능선에서 무거운 짐을 지고 오르내리다가 실족하거나 다리가 부러져 죽기도 하면서도 먹는 것은 거친 풀뿐이다. 이와 같이 '좁교'는 세상에서 가장 불쌍하고 슬픈 짐승이다. 언제부터인가 이 인간사회에서도 왕권시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투표에 의해 선출된 자가 국민을 무시하는 경우가 있다. 물론 선거운동 기간에는 국민을 하늘과 같이 받들 것처럼 이야기하면서 찬 바닥에 엎드려 꾸벅 절도 하였지만, 당선이 되고나서는 변한다. 헌법과 법에 의해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신성한 임무를 수행하는데 권한을 행사하겠다고 선서하였으면서도, 오히려 자신의 이득을 향유하는데 그 권한을 행사한다. 국민들로부터 비난이 아무리 많아도, 듣기보다 외면하면서 자신이 마치 신이라도 된 것처럼 국민은 따르기만 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