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3년 6월 13일 조선의 왕 연산군 앞에서 김감불(金甘佛)과 김검동(金儉同)은 은광석에서 순은을 추출하는 화학발명인 연은분리법(鉛銀分離法) 또는 단천연은법(端川鍊銀法)의 기술을 시연하였다. 이 기술은 일단 은광석과 납을 섞어 태워 납과 은의 혼합물을 만든 뒤 다시 가열하여 녹는점이 낮은 납은 재에 스며들게 하고 순수한 은만 남게 하는 것으로 융점의 차이를 이용한 획기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조선은 중종반정 이후 연산군 시대에서 적폐청산을 한다는 명목으로 은광개발을 억제하는 등 연은분리법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서 은본위제의 화폐경제를 실현시킬 수 있었지만 실기하고 말았다. 1533년 일본은 조선에서 경수(慶寿)와 종단(宗丹)이라는 두 기술자를 초청해 연은분리법을 습득하는 데 성공하였다. 1539년 8월에는 조선의 조정을 발칵 뒤집은 사건이 벌어지는데, 유서종이라는 종4품 판관이 일본인들을 끌어들여 연은분리법 기술을 유출한 것이다. 이와 같이 조선의 여러 기술자를 초청하고 기술을 빼내 간 일본은 시마네현에 있는 이와미은광(石見銀山) 개발하고 은본위제의 화폐경제를 실현하였다. 그리고 천하를 통일한 토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은으로부터 얻은 막대한 재정을
‘불편한 진실(眞實)'을 떠벌리기에 앞서 옛말 풀이부터 하자. ‘진실’(眞實)이라곤 하지만 완전하지는 않을 게다. 절반(折半)을 약간 넘을까 하는 정도가 될 듯싶다. ▷ 경국지색(傾國之色) : ‘임금이 가까이하여 나라가 기울어져도 모를 만한 미인’이란 뜻으로, ‘뛰어나게 아름다운 미인’을 일컫는 말. (‘한글학회’가 펴낸 ‘우리말 큰사전’에 따랐다) = = = = = = = = = = = = = = = = = = “한껏 홍조 올린 화장에 순간순간 배시시 미소를 흘리는 이 태도가 사과의 모습이라고?” 기억하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벌써 뇌리에서 지워졌을지도 모른다. 지난해 연말 어간, 대선판이 한창 열기를 뿜던 때다. 이른바 ‘개 사과’와 관련한 공개 사과(謝過)가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본 아무개 아줌씨의 넋두리였다. 저 남도(南道)의 항구 목포(木浦)에서 땅으로 유명세를 한껏 날리셨던 정치인이시다. 여사님에 대한 이 나라 모지리 여편네들의 평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고들 했다. 그 넋두리가 담긴 기사에 이런 댓글이 달렸었다고... “부러우마 지는기다 ㅎㅎ” 이후에 질풍노도(疾風怒濤)의 대선판이 마무리되고, ‘여리’님께서 취임하셨다. 취임 직후 한동안 부부
선박이 외부의 힘을 받아 평형 상태가 무너져 기울어졌을 때에 중력과 부력 등이 외부의 힘보다 우세하게 작용하여, 선박이 외부의 힘을 받지 않는 본래의 평형 상태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힘을 복원력이라 한다. 선박은 무게 중심을 가능한 낮게 하고 부력을 크게 하여 태풍· 파도 등의 외부의 힘에도 복원력을 상실하지 않도록 설계한다. 그러면서도 선박은 운항할 때의 무게 중심을 잡기위해 탑승객과 적재물의 중량 등을 고려하여, 선박의 밑바닥이나 좌우에 설치된 탱크에 적당량의 바닷물 등으로 평형수(平衡水)를 채워 넣는다. 복원력을 상실하지 않고 평형수에 오류가 없는 선박은 거친 파도에도 전복되지 않고 항해해 나아갈 수 있다. 반면에, 복원력의 상실이 일어나고 평형수에 오류가 발생하게 되면 선박은 잔잔한 파도에도 항해해 나아가지 못하고 전복되고 만다. 당나라의 정관정요(貞觀政要)에는 “수가재주 역가복주(水可載舟 亦可覆舟 :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나, 역시 뒤집기도 한다)"라면서 “군주인수(君舟人水 : 군은 배이고 백성은 물이다)”라 하고 있다. 그런데 왕이 주인인 왕권 시대가 아닌 국민이 주인인 민주 시대에 있어서도, 투표에 의해 선출된 위정자의 정권이 배가 뒤집히듯이 복원
“똥 묻은 개(犬)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 요즈음 이 나라 정치판을 관통하는 말씀이라고 감히 주장한다. 동의하시는 국민이 적지 않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으며... 돌이켜 보건대, 그 ‘똥’과 ‘겨’의 차이도 크지는 않은 거 같다. 지난 ‘3·9 대선’에서 나타난 0.73% 안팎 정도 아닐까 하는 느낌도 든다. 이편과 저편 간의 치열한 ‘나무라기’, 더 나아가서 ‘개싸움’은 그렇다. ‘이전투구’(泥田鬪狗)... 민주주의에서는 정도의 문제일 뿐, 더러 필요악(必要惡)일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자기 네 편 안에서도 마찬가지가 됐다. 매우 치열해지고 있단다. 그럼, 지난 시절에는 자기 편끼리 안 싸웠냐고 물으면... 딱히 할 말은 없다. 전체적으로 ‘개판’이란 거다. 물론 현재 진행형이다. 언제는 안 그랬냐고? 그냥 웃고 말자. 오는 8월 28일 치러지는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에 당대표 후보로 출마한 이재명 의원이 6일 진행된 강원·대구·경북 경선에서 74.81%의 득표율로 압승을 거뒀다. 2위와 50%p 이상 차이를 보인 압승으로, 이 후보가 '어대명'(어차피 대표는 이재명)으로 대변되는 대세론을 넘어 '확대명'(확실히 대표는 이재명)으로 굳히고 나선 것 아
“한국갤럽이 (7월)29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지난 26~28일 전국 성인 1000명 대상)를 보면,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지난주보다 3%p 하락한 28%를 기록했다...” 요즈음 저잣거리의 가장 큰 얘깃거리가 아닌가 한다. 글쎄, 그 무슨 ‘여론조사’에 대해 늘 반신반의(半信半疑)하는 국민이 꽤 여럿이고 보면... 믿거나 말거나 일수도 있겠다. 하지만 결과가 그러하다니, 일단 그러려니 하면서... 이와 관련하여 여기저기 훈수(訓手)꾼들이 설쳐댄다. 지지율 하락의 원인과 배경, 다시 오르게 할 여러 책략 등과 관련해서 설왕설래(說往說來)한다. 이런저런 기사와 칼럼 등등을 뒤적이다가 눈에 띄는 대목이 있었다. “정치는 타협과 연합을 통해 성격과 지지기반이 다른 세력을 붙여가면서 계속 확장해 가는 건데, 대통령은 뺄셈정치를 하고 있다...” 뺄셈이 아니라 ‘덧셈 정치’를 해야 한다는 말씀이다. 아주 명쾌한 분석과 해법 같기도 했다. 그래서 여러 매체에 실린 정치 기사를 훑어봤다. “양의 머리를 걸고 개고기를 팔지 말라했더니, 이제 개의 머리를 걸고 개고기를 팔기 시작하려는 것 같다... 저 자들의 우선 순위는 물가안정도 아니고, 제도개혁도 아니고, 정치혁신도
8월이 되면서 이제 여름도 절정에 이르고 있다. 나이가 백년은 족히 되보이는 미국 중서부 시카고 지역에서 빼곡하게 자라있는 아름드리 나무들은 초록을 힘차게 뽑낸다. 부자나라로 상징되던 이곳 미국도 끝이날 것 같지 않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영향으로 살림살이가 무척이나 팍팍하다. 게다가 코로나 바이러스의 재확산은 미국경제와 세계경기를 불황으로 더욱 몰아가고 있다. 북한 또한 코로나 바이러스의 재확산으로 국경이 봉쇄되어 많은 주민들이 병마와 굶주림에 고통을 받는다니 마음이 너무 아프다. 이런 상황속에서 탈북은 불가피한 선택일 수도 있으나, 요즘은 강화된 경비로 그마저도 쉽지 않다고 한다. 이런 가운데에서도 최근 미국에 거주하면서 ‘북한을 바꾸다’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무궁화구조대’라는 탈북지원단체를 운영하는 탈북민 출신 허강일 대표가 있어 우리의 마음을 한껏 안심시켜 준다. 허강일 대표는 요사이 탈북이 쉽지 않아 합법적으로 나온 북한사람들을 중심으로 도움을 준다고 말한다. 허대표의 말에 따르면 지금은 탈북이 예전과 같이 쉽지 않고, 북한내부에서 나오는 사람들이 매우 적다고 한다. 그렇지만 중국이나 특히 러시아 같은 곳에 합법적으로 나온 인력은 여전히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이 회자된 진실·충성·거짓·배신 등의 말 가운데, 배신이라는 말은 사회에서 각자의 선택이 “정당한 사유 없이 사욕을 충족시키기 위해 물리적·정신적 인연을 맺고 있었던 지인 또는 집단을 등지는 행위”에 해당하는 경우일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배신이라 느껴는 이유는 자신의 예상과 기대에서 벗어났거나 상대에게 무엇인가 베풀었다고 여기는 오만에 의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의 오만에 의한 것이 아니라 상대의 다른 선택에 정당한 사유의 정의(正義)가 있다면, 이를 배신으로 치부하지 말고 오히려 존중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단지 시류를 좇은 염량세태(炎涼世態)에 의한 배신이라고 느낀다면, 상심하기보다 한시바삐 상대와 정리(定離)하는 것이 바른 선택이 될 수 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의 “최후의 만찬”에 엎질러진 소금그릇이 의미하듯이, 이스카리옷 유다는 은화 30냥의 탐욕을 이기지 못하고 예수님을 팔아넘겼다. 이와 같이 유다는 물리적·정신적 인연을 맺고 있었던 예수님을 등지고 사욕을 충족시키고자 하였으나, 인류가 존재하는 한 누구도 지울 수 없는 배신의 오명을 남겼다. 단테의 신곡 ‘지옥편’에서는 가장
“지금 경찰의 정치적 중립은 70〜80년대 민주 투사들이 목숨으로 바꾼 아주 귀한 것이고 그것이 30년 동안 잘 진행됐는데 (경찰국은)하루 아침에 경찰 제도를 졸속으로 바꾸는 시도다... 한번 잘 살피고 국민의 인권과 직결된 경찰의 중립을 몸으로 막아내겠다...” 하나하나 아름다운 단어들로 엮은 문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전체 문장에 선뜻 동의할 수 있을까? 흔히 ‘삶은 소 대가리’로 일컬어지는 노인네조차 화장실에서 킥킥거릴 것만 같다. 무장(武裝)한 공권력이 ‘정치적 중립’을 간판으로 ‘독립’을 꾀한다? 그것도 떼법적으로? 우째 이런 문장이 탄생할 수 있었는지, 왜 이 지경까지 왔는지... 완전히 객관적이지는 않지만, 결코 절대로 주관적이지만도 않은 ‘혼(?)이 담긴 구라’를 풀어보기로 한다. 워낙 보고 들은 바가 부족하니, 부분적이고 파편적일 수밖에 없다. 또한 어수선한 ‘구라’가 늘 그렇듯이,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상상력도 필요할 듯하다. 자 그럼... ▷ 육이오 때 납치됐다 최근에 나타난 자 ▷ 일정한 직업 없이 돈을 마구 쓰는 자 ▷ 술집에서 술김에 “동무·동무” 찾는 자 ‘민족중흥’의 열기가 반도(半島) 남쪽을 달구던 1970년대
일본에서는 1972년에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栄) 수상이 일본열도 개조론을 발표하면서 산업단지를 전국에 재배치하고, 도시와 지방을 고속철도인 신칸센(新幹線)이나 고속도로로 연결하는 구상을 발표하였다. 그리고 60년대 고도성장의 후유증으로 나타난 경제성장의 정체, 도시와 지방간의 격차의 확대, 그간 산업화에 따른 공해 등을 해결하였다. 그리고 50년이 지난 지금 일본에서는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수상이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여 데이터 센터 및 플랫폼을 기반으로 하는 인프라, 재생 에너지 전력의 공급에 적합한 에너지 인프라, 고속통신망 사용의 자동운전 및 자동배송의 물류 인프라 등을 정비함으로써, 국민에게 풍요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디지털 일본개조를 구상하고서 잃어버린 30년 극복과 재도약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970년대에 박정희 대통령이 동남 임해권을 중심으로 중화학 산업을 육성하고 고속도로를 건설·연결함으로써 산업화를 통한 경제성장을 촉진하였다. 이에 수반하여 산업화에 따른 도시로의 인구 유입에 따른 사회적 문제는 다소 있었지만,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의 과밀에 의한 문제는 그리 심각하지는 않았다. 그 이후, 1988년 올림픽을 계기로
현인은 잘못이 있으면 내게서 찾고, 우인은 잘못이 있으면 그것을 네게서 찾는다. 이와 관련하여 많은 사람들은 아시타비(我是他非)를 먼저 머리에 떠 올릴 듯하다. 특히, 우리 사회에는 어느 때부터인가 주위를 둘러보지 않는 개인주의가 팽배하면서 잘못을 내게서 찾지 않고 네게서 찾으며, 내 책임을 네 책임으로 돌리고, 내 탓이 아닌 네 탓을 하는 경향이 너무나 만연하다. 이런 아장동사(我將東徙) 하는 후안무치의 위선은 이미 그 도를 넘어 사회를 무너뜨릴 지경이다. 천주교에서는 미사 전례의 참회에서 “형제들에게 고백하오니, 생각과 말과 행위로 죄를 많이 지었으며, 자주 의무를 소홀히 하였나이다. 제 탓이요, 제 탓이요, 저의 큰 탓이옵니다(3번 가슴을 치고 자신을 돌아보며...). 그러므로 간절히 바라오니, 평생 동정이신 성모 마리아와 모든 천사와 성인과 형제들은 저를 위하여 하느님께 빌어 주소서!"라고 하며 자신에게서 잘못을 찾고 참회한다. 불교에서는 화엄경(華嚴經)의 중심 사상으로 “일체의 제법(諸法)은 그것을 인식하는 마음의 나타남이고, 존재의 본체는 오직 마음이 지어내는 것일 뿐이라는 뜻"이라 하고 있다. 실차난타(實叉難陀)가 번역한 보살설게품(菩薩設偈品)에
옛 신라 서라벌의 어느 사찰에 한 석공이 있었다. 석공장은 문하의 석공에게 작은 돌 조각이 튀어도 무의식적으로 눈을 먼저 감지 말고 망치로 정을 똑바로 치라며, 기본을 열심히 가르쳤다. 하지만 이 석공은 스승의 말과 주위 동료의 말은 듣지 않고서, 작은 돌조각이 튀어 눈에 들어갈까 두려워 망치로 똑바로 정을 치는 것보다 눈 깜박이는 것을 먼저 배웠다. 동료 석공들은 불상·연화석 등을 조각하는데, 이 석공은 불상이 정좌할 연화석을 받치는 기단을 만드는 것이 고작 그의 역할이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이 석공은 기단을 자기가 만들지 않았다면 불상을 연화석에 정좌시켜 모실 수 없었다고 큰 소리를 쳤다. 사찰에 들른 많은 불자들은 이 석공의 말이 어불성설인 것을 알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잘 하겠지 하면서 토를 달지도 않았다. 많은 국민들이 국정의 시비에 대해 시간이 지나면 잘 하겠지 하면서 토를 달지 않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다. 현재 우리 정부에 있어서 중요한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자들 중에는 이 석공과 같이 망치로 정을 똑바로 치기보다 눈 깜박이는 것부터 먼저 배운 자들이 많다는 의심이 든다. 국가와 국민만을 위해 눈을 부릅뜨고 국정을 수행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사마천의 사기에는 사람의 죽음과 관련하여 “人固有一死 或重于泰山 或輕于鴻毛 用之所趨異<인고유일사 혹중우태산 혹경우홍모 용지소추이> 사람은 누구나 한 번 죽지만, 어떤 죽음은 태산보다 무겁고, 어떤 죽음은 깃털보다 가볍다. 이는 죽음을 쓰는 바가 달라서다”라고 쓰여 있다. 이는 모두 한 번밖에 살지 못하는 삶에 있어서 헛된 죽음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경계하는 말이다. 인간은 세상에 벌거숭이로 공수래(空手來) 해서, 인연을 일기일회(一期一會) 하여, 제행무상(諸行無常) 하며, 인연을 회자정리(會者定離) 하고, 주머니 없는 수의에 공수거(空手去) 한다. 이것이 모든 인간이 겪을 수밖에 없는 삶이지만, 몇 년 전에 현직 서울시장이였던 박원순과 현직 공군대위였던 심정민의 죽음이 있었다. 서울시장 박원순은 자신의 권한을 이용하여 부하직원에게 불미스러운 일을 저지르고 스스로 목을 매어 삶을 달리 함으로써 죽음의 무게를 홍모(鴻毛)보다 가벼이 하였다. 반면에 공군대위 심정민은 자신의 권한을 이용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민가의 국민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 전투기 조종간을 움켜쥐고 삶을 달리 함으로써 죽음의 무게를 태산(泰山)보다 무겁게 하였다. 서울시장 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