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잘 알려져 있는 프리즘은 투명한 광학재료로 이루어진 삼각기둥 모양의 광학소자로 여러 빛이 혼합된 백색광을 파장별로 가르거나 하는데 쓴다. 프리즘을 통과한 빛은 파장에 따른 분포의 스펙트럼을 갖는다. 파장인 긴 빛, 즉 주파수가 낮은 적색으로부터, 파장이 짧은 빛, 즉 주파수가 높은 자색의 무지개 빛이 가시광으로 분별된다. 물론 프리즘을 통과한 빛은 보다 파장이 긴 적색 및 보다 파장이 짧은 자색의 빛인 비(非)가시광도 포함하고 있다.
빛은 모두 고유의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파장대의 빛은 식물의 성장에 도움이 되고, 어떤 파장대의 빛은 의료용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그래서 어떠한 스펙트럼의 빛도 가치가 없는 것은 없다.
사회는 여러 스펙트럼을 가진 사람들의 모임으로 백색광과 마찬가지이다. 모든 빛이 그 가치를 가지듯이 사회의 모든 구성원 또한 각자 천부(天賦)의 가치를 가진다. 그러므로 사회의 구성원으로써 살아가는데 있어서 인위적인 어떤 차별을 받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전체주의를 구분 짓는 기준이 될 수도 있다. 이런 기준이 무너질 때 사회는 공산·전체주의의 독재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전 정부의 위정자는 프리즘을 통과한 일부 스펙트럼, 특히 사회적 약자, 예를 들면 약소 중소기업, 하류층, 및 특정지역만을 중요시 했다. 또 다른 스펙트럼, 특히 사회적 강자, 예를 들면 재벌 대기업, 상류층 및 중산층 및 특정지역은 무시하는 정책을 시행하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다.
프리즘을 통과한 빛의 스펙트럼 중에서 자신의 마음에 드는 일부 스펙트럼만으로는 백생광의 사회를 형성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위정자는 일부 스펙트럼만을 중시하였다. 그러다 보니 올레드(OLED) 텔레비전에서 적색계열의 빛만 강조되어 드라마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홍등가의 불빛에 비친 것과 같이 사회도 그러한 모습이었다.
여러 스펙트럼의 빛이 모여야 백색광이 되고 여러 계층의 사람이 모여야 사회가 형성된다. 그런 점에서 정부의 위정자는 스펙트럼화를 통한 일부 스펙트럼의 지지자들만을 가지고서는 사회를 형성할 수 없다고 하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어떠한 일기(日氣)도 자연에 나름대로 쓰임이 있고, 어떠한 파장의 빛도 자연에서 나름대로 쓰임이 있듯이, 어떠한 계층의 사람도 사회에서 그 나름대로 쓰임이 있다. 그래서 프리즘을 통해 사회를 스펙트럼화해서 어떤 계층을 차별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단지 프리즘은 얍삽하고 아첨하는 자에게는 얍삽하고 아첨하는 자만이 모이고, 정직하고 간언하는 자에게는 정직하고 간언하는 자가 모이는 것과 같은 유유상종(類類相從)을 가려내는데 쓰기를 바란다.
이런 점을 명심하고 윤석열 정부는 이전 文정부와는 다르기를 기대해본다.
深 · 思 · 翁 (심사옹) <객원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