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권 등장 내내 몸서리치게 느껴왔던 동일한 감정의 연속이지만, 또 한번 새롭게 기가 막힌다. 궁지에 몰린 문정권이 무척 다급한 모양이다. 찌라시 수준의 첩보 기사를, 유력언론사도 아닌 요상한 선동형 인터넷 언론매체가 발표했던 그런 내용을 검찰과 공수처가 받아 야당의 유력 대선후보를 전광석화처럼 입건했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조국-추미애-박범계로 이어지는 법무부장관들이 지난 2년 동안 윤석열 전 총장을 찌라시 수준의 첩보로 몰아붙여 놓고, ‘검찰개혁’이라는 위선과 기만의 정치적 명분으로 정국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던 사실들을 모두 기억하고 있다. 급기야 야당의 유력 대선후보를 제거하기 위해서 국정원장까지 등장한 막장드라마가 펼쳐지고 있다. 찌라시 정치쇼의 결말 지난날의 학습효과를 생각한다면, 공교롭게도 무능한 자들의 위선과 기만의 정치 사기쇼는 분명히 당사자로 지목된 윤 전 총장의 반사이익과 함께, 결국 땅을 치며 후회할 찌라시 정치쇼로 끝날 것으로 예상된다. 그래도 내년 대선을 앞둔 정권의 일그러진 ‘초상(肖像)’은 살아야 하겠기에, 윤석열이 아닌 그 옆에서 얼쩡대는 아류들이 희생양으로 처리될 가능성이 아주 높아 보인다. 첫 번째는 공익신고자 신분이라는 ‘조성
거창하게 고상한 철학을 한답시고 일상에서 거들먹거릴 일은 전혀 없다. 말이 좋아서 철학이지, 철학은 바로 ‘인간의 생각’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흔히 사용되는, 타인을 폄하하는 말 중에 가장 많이 쓰이는 것이 바로 ‘골이 비었다’는 표현이다. 골이 비었다... 이를 직역하면 생각이 없다는 말인데, 양식과 상식, 오랫동안 과거로부터 지켜왔던 지혜와 관습을 완전히 무시한 채, 무지와 무능이 충만한 자신만의 ‘언사’를 거리낌 없이 해댄다는 말이기도 하다. 희랍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사회적 동물’ 또는 ‘정치적 동물’로 규정했다. 이 말은 인간이라는 동물이야말로 자신이 처한 공동체를 벗어나, 이기적이고 살벌한 자연 상태에서는 결코 쉽게 생존할 수 없는 그런 나약한 존재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래서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와 그 공동체의 가치가 중시되었고, 이런 관념은 이천년의 세월이 흐른 후에 서양에서 국민이 주인이 되는 ‘근대국가’의 형성으로까지 발전해 나갔다. 군집(群集)의 지혜와 정치의 기술 인간의 생각과 가치, 그리고 이와 연관된 실존적 문제인 삶과 생존이 충돌하는, 즉 사회 속 인간관계의 갈등 해결 장치로 작동하는 ‘정치’에 대한 역할과
“합리적 이성을 기반으로 하는 민주주의제도는 각 나라가 갖고 있는 전통적·문화적 습속(Mores)을 넘어서기가 무척 힘들다. 그리고 이를 무시한 채, 맹목적으로 자유와 평등, 인간의 가치를 강요할 경우, 민주주의는 내부적 갈등의 온상이 될 수 있다.” 이는 200년 전, ‘미국의 민주주의’ (Democracy in America)를 저술했던 토크빌 (Alexis de Tocqueville)의 명언이다. 자유민주주의가 겪는 도전 걸프전 이후 민주주의의 전파를 위해 시도되었던 미국의 ‘자유주의적 헤게모니’(Liberal Hegemony) 대외정책은 작금의 카불공항에서 벌어지는 아비규환을 끝으로, 처절하게 실패의 구렁텅이로 빠져 들어가는 형국이다.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전 세계에 자유민주주의라는 제도를 확산시키면, 지구촌의 영구적 평화가 찾아올 것 같았던 미국의 생각은 각 나라의 전통적 습속과 부족주의 같은 개별적 민족주의를 넘어서지 못하면서 모멸스런 참패를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19세기 산업혁명을 통한 폭발적인 성장은 근대국가의 탄생과 더불어 소위 국가 간의 이동과 교역을 배가시켰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바로 여권 (Passport)제도였다. 구체적으로 국
아프가니스탄 카불의 비명소리가 모든 뉴스의 일면을 장식하는데도, 문정권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여전히 대북 ‘평화 쇼’만을 강조하고 있다. 근대국가에서 군의 창설 목적이야말로 싸울 적을 규정하는 것인데, 지속적으로 무장해제 되고 주적개념이 사라진 국군은 이제 문정권의 케케묵고 왜곡된 친일파 척결 선동에 휘둘리는 느낌이다. 그 결과, 국군은 자유우방인 일본을 주적으로 삼아야 할지 헷갈리는 정도가 되었다. 과연 문대통령의 말대로 북한이 생명공동체로 삶과 죽음을 같이해야하는 피붙이의 존재라면, 대한민국 국군도 북한이 주적으로 삼고 있는 미국에게 총부리를 겨누어야 하는 것 아닌가 말이다. 가붕개로 조롱받는 국군 매일같이 터져 나오는, 총체적으로 육·해·공군이 모두 관련된 성추행사건과 조롱섞인 조국의 ‘가붕개’(가재, 붕어, 개구리)들이 벌이는 당나라 군대 패러디 선전·선동이 문정권 들어서서 꾸준하게 와해되고 있는 국군을 더욱 비참하게 형해화시키고 있다. 그래도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는 6·25 전선에서의 유명했던 시 한 구절을 상기하며... 대한민국 국군의 충성스런 결기를 품은 채, 이 악물고 문정권의 조롱과 무장해제를 위한 반역 정책을 버텨내는 일선 지휘관들에
2020년 세계언론자유지수 기준 세계에서 42위, 아시아에서 3년 연속 1위... 다수의 해외 유력 언론사 아시아지국이 한국으로의 이전을 타진하고 있어 한국이 아시아 지역의 미디어 중심지임을 시사하고 있다... 발 빠른 비상 대응 체제 전환 및 국가적 역량 집중으로 코로나19 이전으로 회복한 거의 유일한 나라... 국민 앞에 겸손한 권력과 공정사회의 토대를 마련했다... OECD 평균 집값 상승률이 7.7%인데 한국은 5.4%에 불과하다. 다만 이를 설명한다고 해도 국민들께서 쉽게 납득 못 하는 상황... “더불어민주당이 [8월]26일 ‘2021년 정기국회 대비 국회의원 워크숍’에서 문재인 정부의 4년 성과를 공유”했다고 한다. 크게 놀라워하거나 흥분할 바가 아니다. ‘문주주의’(文主主義) 4년 동안 ‘내로남불’과 ‘진실(眞失)+공정(空正)’의 드라마에서 엑스트라이자 뻘쭘한 관객으로 지내 온 이 나라 대다수 ‘국민’들은 그저 고개를 가로저을 뿐이다. 더구나 마스크를 덮어쓴 주제에 뭔 시비를 하겠나. 이어서 저들이 ‘문주주의(文主主義) 시즌 2’를 완벽하게 준비하고 있다는 설레는(?) 소식에 밤잠을 설치고 시름에 잠긴 국민들이 늘어만 간단다. 이른바 ‘문재명’
하비 멘스필드 (Harvey Mansfield) 교수의 명저 '남성적인 것에 대하여'(Manlyness)에서 가장 바람직한 남성의 자세는 바로 ‘철학하는’, ‘사유하는 남성성’(Philosophical Manlyness)이다. 이는 남성성에 대한 과학적-생물학적-진화론적 접근이 아닌, 철학적·인문학적 탐구의 결과물이다. 그러니까 남성적이지 못한(Unmanly) 정체성과 지나치게 귀족화된 젠틀맨적인 정체성 사이에서, 적절하게 절제된 중간지역을 형성하자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말하면, 거칠기 짝이 없는 남성성이 이런 사유의 경지에 오르기란 참으로 쉽지 않다. 결국 신념에 대한 지나치게 완고한 독립적 사고를 성찰해 가면서, 충동적·악의적 남성성을 억제하고, 절제된 중용의 덕목을 실현시키는 남성성을 길러야 한다는 것인데, 이는 한마디로 전혀 일반적이지 못하다. 용맹이라는 시민의 덕목 희랍시대에 남성의 ‘용맹’(Thumous)은 자신의 이상을 위해 육체를 바치는 행위로서, 희랍의 철학자들로부터 결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플라톤은 남자의 용맹과 기개야말로 자기존재를 지켜내려는 ‘야수적 본능’이라고 비평했다. ‘정치적 동물’로써 인간을 규정했던 아리스토
한국의 언론자유 수준은 매우 높다. 그러나 언론의 책임 수준은 매우 낮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이 불균형을 바로잡기 위한 것일 뿐... 이 나라의 ‘가붕개’(가재-붕어-개구리)들은 아직까지도 ‘조국스러운’ 설교 말씀을 듣고 살아간다. 마스크 줄을 건 귓바퀴 밖으로... 그리고 저 멀리 중앙아시아에서는 21세기에 전혀 어울리지 않을 듯한 전쟁의 소식들이 남의 일 같지 않게 들려온다. 두 가지 일들이 연관이 없을 듯하면서도 왠지 께름칙하게 머릿속에서 스멀거린다. 탈레반이 점령한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이 일주일째 공포와 혼돈 속에 빠져있다. 카불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 앞은 여전히 탈출 인파가 몰려 있고, 반대로 카불 시내는 탈레반의 보복 처형을 두려워한 시민들이 자취를 감추면서 적막이 감돌고 있다. 그 나라 백성들이 엄청난 시련과 곤경에 처했는데, 이를 비아냥 꺼리나 웃음 소재로 삼는 건 매우 못된 짓이다. 또한 인류 보편적인 양심을 저버린 패륜의 집단을 희화화(戲畫化)하는 작태는 그들의 본질과 악행을 희석(稀釋)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 전 교수는 21일 페이스북을 통해 언론중재법 수정안 의결을 비판하는 글을 공유하며 “달
‘말이 씨가 된다’고 했던가... ‘4‧7 주물럭 심판’이 시민들의 승리로 끝나고 나서였다. 국민의 ‘짐’에서 벗어나 비로소 국민의 ‘힘’이 될동말동하던 시기였다. 그 무리의 우두머리 경선(競選)이 끝났고, 세간의 주목과 함께 언론매체의 인터뷰가 계속되는 과정에서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그는 “어릴 때 유시민 장관의 모습을 많이 봤는데 ‘맞는 말도 기분 나쁘게 한다’는 평가가 있었다”며, “저는 유시민 장관의 모습이 대한민국에 꼭 필요하다”고 했다... 그저 지나가는 농담, 우쭐함의 한 표현 정도로만 받아들였다. 이 꼰대는 젊은피에 대한 기대 반 걱정 반의 심정으로 어쭙잖게 옛 현자(賢者)의 말을 빌려 한마디 던졌었다. 바로 이 칼럼난을 통해서였다. ‘올바른 말을 제때에 제대로 하는 것’과 ‘싸가지 없거나 촐랑대거나 경솔한 언행’은 엄연히 다르다는 사실이 꼭 기억돼야 할 것이라는 전형적인 꼰대성 멘트와 함께... 그 현자의 말대로 되지 않기 만을 진심으로 바라면서... “청춘을 청춘들에게 주기에는 너무도 아깝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채 두어 달 남짓이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야권 유력 대선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 대한 과거 발언이 속속 공개되면서
대한민국 언론들도 문정권처럼 돌려차기식 간접화법의 홍보를 하려고 하는지, 매일 아프카니스탄 탈레반의 카불 점령과 이어지는 난장판사회에 대한 보도에만 여념이 없다. 아마도 문정권이 대대적으로 홍보했던 ‘홍범도 장군의 귀환’에 대해서는 진실이 어떻고 역사와 공산주의가 어쩌고 하면서 짚어보려는 시도보다는 그냥 뭉개기로 한 것 같은 느낌이다. 탈레반과 북한을 빗대면서 슬쩍 제2의 사이공 얘기도 나오고, 이에 견주어 대한민국의 주적이 사라진 안보위기 상황과, 남북 생명공동체를 강조하는 문정권의 대한민국 역사에 대한 위선과 기만, 사기와 거짓에 대한 그럴듯한 암시를 표명하고 있는 듯 보여 그나마 다행스럽기도 하다. 일제시대 봉오동전투와 청산리전투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대전 현충원에 안장되기 위해, 대한민국 건국 후 73년 만에 카자흐스탄에서 고국으로 돌아왔다. 김일성내각에서 장관을 역임했던 독립운동가 김원봉에 이어, 제2탄 형식의 선전·선동 형태로, 대한민국의 헌정질서와 독립, 건국역사를 완전히 무시하는 역사왜곡과 사기의 민족자주 선전극이 문정권에 의해서 또 다시 대대적으로 자행되고 있다. 작년 6·25 참전용사 유해 송환식에서는 갑자기 대
“그저 와준 오늘이 고맙기는 하여도 / 죽어도 오고 마는 또 내일이 두렵다...” 이렇게... 세월이 흘러간다. 나라 안팎이 어수선하다. 지칠 줄 모르는 돌림병, 그 탓에 점점 팍팍해가는 살림살이... 권력 따먹기 개싸움으로 날이 밝고 저문다. 나라 구석이 성한 데가 없다는 한탄의 목소리가 드높다. 반도(半島)는 언제나처럼 요동친다. 북녘 세습독재 집단의 ‘적화야욕’(赤化野慾)이야 멈출 리가 없다. 요즘 들어, 해양과 대륙 세력의 대치는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낀 나라’의 시련과 설움도 깊어만 간단다. 그리고 어김없이 8월 15일... 1945년 8월 15일 ‘해방’된 날로부터 76년, 그리고 73돌을 맞는 ‘건국’ 기념일이다. 뜬금없이, 다소 장황하게, 약간의 의미를 담아서, 이즈음 언론에 실린 몇몇 기사들을 들춰내 봤다. ㉮ 1991년 8월 14일 김학순씨가 위안부 피해 사실을 국내에서 처음 공개했다... 지난 11일 한국에선 정대협 대표를 지낸 윤미향씨 재판이 열렸다... 윤씨는 재판 직전 소셜미디어 프로필 사진에 ‘김학순 증언 30주년 기림의 날’ 문구를 넣었다... ㉯ 청와대는 올해 8·15 광복절을 맞아 ‘봉오동 전투’로 잘 알려진 독립운동가 여
실로 오랜만에 들어본다. 아니 당분간은 듣지도 보지도 못할 거 같았다. 그러더니 며칠 전부터 주요 언론매체를 크게 장식하고 있다. ‘국가보안법 위반’, ‘간첩’, ‘간첩단’.... 그 무슨 ‘자주통일충북동지회’란 그럴듯한 이름의 조직이다. 충북도민들이 화를 낼지 모르지만, 간략하게 ‘충북간첩단’이라고 하자. 전모(全貌)는 아니더라도, 북녘의 지령(指令)을 비롯해서 수년간의 활약상이 여러 언론과 기타 매체를 통해 상세히(?) 소개되고 있다. 다시 별도의 언급이 필요치 않을 듯하다. 다만, 이제는 생소해진 ‘간첩단’ 사건이 이 시점에서 불거진 이유가 무얼까. 아무개 일간신문이 ‘여권 관계자’의 말을 빌려 떠벌렸다. 박지원 국정원장이나 국회 정보위 소속 여당 의원들도 이번 사건과 관련해 여러 증거를 보고받고 어쩔 수 없었을 것... 현 정권에 불리하더라도 이를 감추려고 했다면 오히려 뒷감당이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하지 않았겠냐... 뭐 그렇다 치자. 하지만... 그 ‘간첩단 사건’이 세간에 널리 퍼진 즈음에도 그 무슨 ‘남북통신연락선 복원’과 관련해서 ‘한미연합훈련 연기’를 주문하는 다양하고 거센 움직임이 이곳저곳에서 벌어졌다. 정보의 수장(首長)이란 양반네는 “훈
“사악한 악령들에게는 자비와 은총을 먼저 베풀 수는 없다. 쟁기와 낫을 다시 녹여서 칼과 창을 만들고, 곧 몰려올 악령들과의 전면전쟁에 대비할 시기가 왔다.” 이 말은 인간의 신체와 영혼을 이용하고, 절대자가 제시한 십계명의 언약을 져버린 사악한 무리들에 대해 성경이 명령하는 대응방식이다. 다시 말해, 갈 때까지 간 사회의 정상회복은 ‘정화’ (Purification)이외에는 답이 없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베트남 공산화를 따라가고 있는 대한민국 지금 대한민국이 그런 상황이다. 한마디로 작금의 대한민국은 1975년 남베트남이 공산화되는 과정과 너무나도 유사하게 닮아 있다. 월남전 당시 북베트남은 공식적으로 6천명이 넘는 남파간첩들을 보냈고, 월남사회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5만여명이 넘는 ‘민족팔이’ 종북 베트남 평화인사들로 넘쳐났다. 이들이 남파간첩들과 내통해서 벌였던 일들은 당연히 미군철수와 우리민족끼리 주창, 그리고 통일을 내세운 여러 형태의 반폭력과 평화를 가장한 폭력시위를 주동하는 것이었다. 하노이가 파견한 남파간첩들의 핵심적인 강령은 “자유민주주의가 없어질 때까지 자유민주주의를 외치면서 국론분열에 앞장서라”는 거였다. 또한 ‘민주팔이’와 ‘민족팔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