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감상문에서는 남한, 북한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겠다. 그리고 고발책을 어떻게 보게 되었는지는 여기에서 밝힐 수는 없다. 다만 책으로 만들어진 모습이 아니라 한장 한장 사진처럼 찍힌 것이라고만 이야기하겠다. 반디의 고발을 세번째로 읽어본다. 읽어볼수록 그 의미가 깊은 소설이라는게 안겨온다. 얼핏 보고나면 고발은 7편으로 된 내가 살고 있는 땅에서 일어나는 여러계층들의 단면적인 이야기를 담은 이야기로 북한 실상에 대한 고발로 느껴진다. 수령만을 위한 독재체제에 분노로 사람보다 먼저 소설을 탈북시킨 탈북 작품으로 보인다. 그러나 읽고 또 읽어 보노라면 소설에는 북한 실상에 대한 분노가 아니라 철학이 담겨져 있다. 반디의 소설을 북과 남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읽어보게 된다면 독자들의 생각은 각기 다를 것이라고 본다. 북한의 독자들인 경우 우리가 당하는 실상 그대로 담은 작품 . 목슴을 내건 탈북으로 출판된 항거의 소설로 인식될 것이다. 남한의 독자들인 경우 “사람사는 세상에 이런데도 있는가? 소설로 북한 실상을 세부적으로 알게 되는 계기가 되였다. 자유의 땅 대한민국에서 태여난걸 다시한번 감사히 생각한다.” 반디의 소설은 남한 독자들에게는 수령독재에 신음하는
8월이 되면서 이제 여름도 절정에 이르고 있다. 나이가 백년은 족히 되보이는 미국 중서부 시카고 지역에서 빼곡하게 자라있는 아름드리 나무들은 초록을 힘차게 뽑낸다. 부자나라로 상징되던 이곳 미국도 끝이날 것 같지 않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영향으로 살림살이가 무척이나 팍팍하다. 게다가 코로나 바이러스의 재확산은 미국경제와 세계경기를 불황으로 더욱 몰아가고 있다. 북한 또한 코로나 바이러스의 재확산으로 국경이 봉쇄되어 많은 주민들이 병마와 굶주림에 고통을 받는다니 마음이 너무 아프다. 이런 상황속에서 탈북은 불가피한 선택일 수도 있으나, 요즘은 강화된 경비로 그마저도 쉽지 않다고 한다. 이런 가운데에서도 최근 미국에 거주하면서 ‘북한을 바꾸다’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무궁화구조대’라는 탈북지원단체를 운영하는 탈북민 출신 허강일 대표가 있어 우리의 마음을 한껏 안심시켜 준다. 허강일 대표는 요사이 탈북이 쉽지 않아 합법적으로 나온 북한사람들을 중심으로 도움을 준다고 말한다. 허대표의 말에 따르면 지금은 탈북이 예전과 같이 쉽지 않고, 북한내부에서 나오는 사람들이 매우 적다고 한다. 그렇지만 중국이나 특히 러시아 같은 곳에 합법적으로 나온 인력은 여전히
국짐당이 휘청대고 있다. 국정을 책임지는 한축으로서의 여당이 그로키 상태다. 누구하나 책임은 지려하지 않고, 당원권 정지라는 치욕의 징계를 당한 당대표는 돌아다니면서 술판이며, 직무대행자는 스마트폰 하나로 꼴불견의 한사람으로 전락했다. 여기저기 민노총 언론과 내로남불 야당은 탄핵이니 레임덕이니, 자기들이 짜놓은 여론장난질로 100일도 안된 대통령을 난도질한다. 사기탄핵 때와 거의 흡사하다. 원래 국정동력을 가지려면 인사권을 제대로 행사하면 된다. 정권 중반기나 후반기였다면 얼마든지 관련 장관이나 사정기관장들의 목을 날리며 고삐를 바짝 쥘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안다. 그건 스스로 가스통을 들고 불난 집에 뛰어드는 격이기에 그렇다. 야당은 그런 헛발질을 노린다. 답은 하나뿐이다. 보직만 날아가는 국회의원들이 스스로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는 거다. 국정운영의 파트너로서 대통령이 가는 가시밭을 먼저 걸어가겠다고 선언하는 것, 여론에 휘둘리는 국민들은 그것이라도 원한다. 그래도 의원직은 유지되지 않는가. 젊은 여성정치인 배현진이 최고위원직을 던졌다. 참 잘했다. 계속해서 뒤를 이어야 한다. 여성들 만이라도 그래야 대한민국이 산다. 국민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이 회자된 진실·충성·거짓·배신 등의 말 가운데, 배신이라는 말은 사회에서 각자의 선택이 “정당한 사유 없이 사욕을 충족시키기 위해 물리적·정신적 인연을 맺고 있었던 지인 또는 집단을 등지는 행위”에 해당하는 경우일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배신이라 느껴는 이유는 자신의 예상과 기대에서 벗어났거나 상대에게 무엇인가 베풀었다고 여기는 오만에 의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의 오만에 의한 것이 아니라 상대의 다른 선택에 정당한 사유의 정의(正義)가 있다면, 이를 배신으로 치부하지 말고 오히려 존중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단지 시류를 좇은 염량세태(炎涼世態)에 의한 배신이라고 느낀다면, 상심하기보다 한시바삐 상대와 정리(定離)하는 것이 바른 선택이 될 수 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의 “최후의 만찬”에 엎질러진 소금그릇이 의미하듯이, 이스카리옷 유다는 은화 30냥의 탐욕을 이기지 못하고 예수님을 팔아넘겼다. 이와 같이 유다는 물리적·정신적 인연을 맺고 있었던 예수님을 등지고 사욕을 충족시키고자 하였으나, 인류가 존재하는 한 누구도 지울 수 없는 배신의 오명을 남겼다. 단테의 신곡 ‘지옥편’에서는 가장
일본에서는 1972년에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栄) 수상이 일본열도 개조론을 발표하면서 산업단지를 전국에 재배치하고, 도시와 지방을 고속철도인 신칸센(新幹線)이나 고속도로로 연결하는 구상을 발표하였다. 그리고 60년대 고도성장의 후유증으로 나타난 경제성장의 정체, 도시와 지방간의 격차의 확대, 그간 산업화에 따른 공해 등을 해결하였다. 그리고 50년이 지난 지금 일본에서는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수상이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여 데이터 센터 및 플랫폼을 기반으로 하는 인프라, 재생 에너지 전력의 공급에 적합한 에너지 인프라, 고속통신망 사용의 자동운전 및 자동배송의 물류 인프라 등을 정비함으로써, 국민에게 풍요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디지털 일본개조를 구상하고서 잃어버린 30년 극복과 재도약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970년대에 박정희 대통령이 동남 임해권을 중심으로 중화학 산업을 육성하고 고속도로를 건설·연결함으로써 산업화를 통한 경제성장을 촉진하였다. 이에 수반하여 산업화에 따른 도시로의 인구 유입에 따른 사회적 문제는 다소 있었지만,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의 과밀에 의한 문제는 그리 심각하지는 않았다. 그 이후, 1988년 올림픽을 계기로
현인은 잘못이 있으면 내게서 찾고, 우인은 잘못이 있으면 그것을 네게서 찾는다. 이와 관련하여 많은 사람들은 아시타비(我是他非)를 먼저 머리에 떠 올릴 듯하다. 특히, 우리 사회에는 어느 때부터인가 주위를 둘러보지 않는 개인주의가 팽배하면서 잘못을 내게서 찾지 않고 네게서 찾으며, 내 책임을 네 책임으로 돌리고, 내 탓이 아닌 네 탓을 하는 경향이 너무나 만연하다. 이런 아장동사(我將東徙) 하는 후안무치의 위선은 이미 그 도를 넘어 사회를 무너뜨릴 지경이다. 천주교에서는 미사 전례의 참회에서 “형제들에게 고백하오니, 생각과 말과 행위로 죄를 많이 지었으며, 자주 의무를 소홀히 하였나이다. 제 탓이요, 제 탓이요, 저의 큰 탓이옵니다(3번 가슴을 치고 자신을 돌아보며...). 그러므로 간절히 바라오니, 평생 동정이신 성모 마리아와 모든 천사와 성인과 형제들은 저를 위하여 하느님께 빌어 주소서!"라고 하며 자신에게서 잘못을 찾고 참회한다. 불교에서는 화엄경(華嚴經)의 중심 사상으로 “일체의 제법(諸法)은 그것을 인식하는 마음의 나타남이고, 존재의 본체는 오직 마음이 지어내는 것일 뿐이라는 뜻"이라 하고 있다. 실차난타(實叉難陀)가 번역한 보살설게품(菩薩設偈品)에
옛 신라 서라벌의 어느 사찰에 한 석공이 있었다. 석공장은 문하의 석공에게 작은 돌 조각이 튀어도 무의식적으로 눈을 먼저 감지 말고 망치로 정을 똑바로 치라며, 기본을 열심히 가르쳤다. 하지만 이 석공은 스승의 말과 주위 동료의 말은 듣지 않고서, 작은 돌조각이 튀어 눈에 들어갈까 두려워 망치로 똑바로 정을 치는 것보다 눈 깜박이는 것을 먼저 배웠다. 동료 석공들은 불상·연화석 등을 조각하는데, 이 석공은 불상이 정좌할 연화석을 받치는 기단을 만드는 것이 고작 그의 역할이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이 석공은 기단을 자기가 만들지 않았다면 불상을 연화석에 정좌시켜 모실 수 없었다고 큰 소리를 쳤다. 사찰에 들른 많은 불자들은 이 석공의 말이 어불성설인 것을 알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잘 하겠지 하면서 토를 달지도 않았다. 많은 국민들이 국정의 시비에 대해 시간이 지나면 잘 하겠지 하면서 토를 달지 않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다. 현재 우리 정부에 있어서 중요한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자들 중에는 이 석공과 같이 망치로 정을 똑바로 치기보다 눈 깜박이는 것부터 먼저 배운 자들이 많다는 의심이 든다. 국가와 국민만을 위해 눈을 부릅뜨고 국정을 수행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사마천의 사기에는 사람의 죽음과 관련하여 “人固有一死 或重于泰山 或輕于鴻毛 用之所趨異<인고유일사 혹중우태산 혹경우홍모 용지소추이> 사람은 누구나 한 번 죽지만, 어떤 죽음은 태산보다 무겁고, 어떤 죽음은 깃털보다 가볍다. 이는 죽음을 쓰는 바가 달라서다”라고 쓰여 있다. 이는 모두 한 번밖에 살지 못하는 삶에 있어서 헛된 죽음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경계하는 말이다. 인간은 세상에 벌거숭이로 공수래(空手來) 해서, 인연을 일기일회(一期一會) 하여, 제행무상(諸行無常) 하며, 인연을 회자정리(會者定離) 하고, 주머니 없는 수의에 공수거(空手去) 한다. 이것이 모든 인간이 겪을 수밖에 없는 삶이지만, 몇 년 전에 현직 서울시장이였던 박원순과 현직 공군대위였던 심정민의 죽음이 있었다. 서울시장 박원순은 자신의 권한을 이용하여 부하직원에게 불미스러운 일을 저지르고 스스로 목을 매어 삶을 달리 함으로써 죽음의 무게를 홍모(鴻毛)보다 가벼이 하였다. 반면에 공군대위 심정민은 자신의 권한을 이용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민가의 국민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 전투기 조종간을 움켜쥐고 삶을 달리 함으로써 죽음의 무게를 태산(泰山)보다 무겁게 하였다. 서울시장 박원
유럽의 변방에 불과하였던 척박한 섬나라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가장 먼저 일어난 것은 모두 잘 알고 있다. 프랑스 혁명시대에도 나폴레옹은 파리이공과 대학을 설립·운영하였으며, 많은 자금을 투입하면서 과학에 대한 연구를 적극 지원하였지만 프랑스는 산업혁명을 선도하지 못하였다. 영국은 옥스퍼드 대학과 캠브리지 대학에서 과학에 대한 연구의 지원을 거의 하지 않았지만 산업혁명을 선도하였다. 역사학자 알프레드 크로즈비가 “태양의 아이들”이라는 책에서 산업혁명이 영국에서 가장 먼저 일어난 이유의 하나로, “장인들이 가진 기술의 가치를 인정해 준 것에 있다”고 했듯이, 영국은 “재산권으로서 특허권”을 제도적으로 인정해 주고 있었던 것이다. 영국에서 산업혁명 초기의 과학은 아직 초보적인 수준에 불과하였거나 기술발전에 그다지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정도에 미치지 못하였다. 오히려 기술이 먼저 발전하고, 이에 자극을 받은 과학자들이 기술자들을 뒤좇아 연구를 할 정도였다. 영국의 기술혁신을 선도한 와트, 트레비식, 스티븐슨 등도 원래 과학자도 아니었다. 학교에 다닌 적이 한 번도 없거나 기초교육만 겨우 받은 기계공이었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과학자들보다 앞서 기술을
지금까지는 2개의 패권주의 국가, 미·중의 군사·경제 패권전쟁은 지정학적인 것에 바탕을 두고 있었으나 이제는 첨단과학기술 패권전쟁으로 옮아가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은 코로나 바이러스 백신과 같은 첨단과학기술을 자국존립의 전략자원으로 진단·인식하고 그 기술의 타국이전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정학적 약점을 가진 우리나라가 인류발전에 지속적인 공헌을 하면서 자주적인 존립을 보존할 수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특히, 국가 지도자를 비롯한 지도층이 첨단과학기술에 대해 냉정하고 장기적 안목을 가졌는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정확하게 진단·인식하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중국은 국가가 통제적 지도권을 가지고 첨단과학기술의 연구개발을 주도하면서, 거의 미국에 필적하는 금액을 투입하고 있으며 연구자 수는 이미 미국의 연구자 수를 넘어서고 있다. 반면에 중국이 논문·특허 등의 양적인 지표는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었으나, 아직 핵심 첨단과학기술에 있어서는 서구 선진국, 특히 미국에 비해 뒤떨어져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중국에 비해 미국은 압도적인 연구개발비를 투입하고, 많은 외국태생의 우수한 유학생과 연구자를 받아들이고 있다. 연구개발의 성과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