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십여년 전의 어느 봄날에, 배편으로 제주도 수학여행을 가던 많은 학생을 태운 세월호가 서해에서 침몰하였다. 해난사고에서 세월호와 같이 많은 희생자를 내고 사회적으로 파장을 일으킨 일은 거의 없었으며, 세월호에 대한 기억은 아직도 뇌리에 뚜렷이 남아있다.
그 후에 세상은 너무 많이 변해버렸다. 이전까지는 건전한 상식이 더 통용되었으나 그날 이후부터는 불온한 궤변이 더 통용되게 되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보다 환심의 교묘한 언사(言辭)와 아첨의 안색을 하는 교언영색(巧言令色)으로 많은 사람으로부터의 일순모면(一瞬謀免)을 하는 경향도 나타났다.
사람의 인품에 고개를 숙이고, 사람의 지위에 고개를 숙여야 하지만, 비운 밥그릇 수에 따른 사람의 나이에 고개를 숙이라고 강요하는 자만큼 어리석은 자는 없다. 하지만 근간에 정치권에서는 시정잡배들의 아수라장에서나 있을 법한 악의적 비방의 “어린 놈”으로 유발되고, 이어지는 “후진 놈”, “너, 구토” 등의 말이 난무하고 있다.
물론 과거에도 “귀태”, “대통령 풍자 누드화” 등 여러 가지 추잡한 말과 사건들이 있었지만, 지금처럼 망언을 강직한 절조라고 하고, 탐욕을 성실한 능력으로까지 둔갑시키지는 않았던 것 같다. 이런 일들로 인해 지금까지 우리 세대보다 다음 세대를 걱정하면서 살아왔으나, 지금은 다음 세대보다 상식의 기강이 무너져가는 우리 세대를 더 걱정해야 하기에 이르렀다.
삼국지에서 조조는 손권으로부터 명장 관우의 머리를 받아들고서, 제후의 예로서 장례를 치르고 유비와 도원결의를 맺은 유비의 촉(蜀)의 땅이 아닌 조조의 위(魏)의 땅인 지금의 후베이성에 안장하였다.
조조는 적벽대전에서 패하고 목숨도 잃을 뻔하게 했던 적의 맹장 관우에 대해 스스로 예를 갖춤으로써, 교활하고 간악한 인물이 아닌 영웅으로도 대우를 받고 있다는 점을 반추(反芻)해 볼 필요가 있다.
산이 높다고 명산이라 않으며 나이 많다고 인품이 있지 않는다. 산의 기품은 바위와 수목에서 찾아볼 수 있고 사람의 인품은 말과 행동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러므로 본인들 스스로 선량의 집단을 잡어 썩는 냄새가 진동하는 시궁창으로 만들어 놓고서는 남들로부터 존경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소인은 남의 나쁜 점을 보게 되면 자신의 좋은 점만을 드러내어 과시하고, 남의 좋은 점을 말하면 자신의 좋은 점만 더 드러내며 시기와 질투를 한다. 하지만 군자는 남의 나쁜 점을 보게 되면 자신에게 그런 나쁜 점이 없는지 참회와 개과를 하고, 남의 좋은 점을 보게 되면 자신도 그런 좋은 점을 가지려고 더 분발한다.
그런데 근간의 정치권을 보면, 소인배들이 한 수레의 책으로 지식은 얻었으나 생각의 깊이로 이어지는 수양은 멈춘 채로, 건전한 비판보다 불온한 비방만 일삼는 사회를 만들고 있지는 않는지 개탄스럽다.
한 수레의 책으로 얻은 지식이 자신을 누르는 등에 진 짐이 아닌 인품이 되도록 하는 첩경은, 명심보감의 준례편에서 말하듯이 “약요인중아(若要人重我) 무과아중인(無過我重人), 만약 남이 나를 존중하기를 바란다면, 내가 남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지나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深 · 思 · 翁 (심사옹) <객원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