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역사(歷史)를 살펴보면, 한민족은 수많은 외침에 시달리거나 그런 침략자들 앞에서 보여준 것은 나약한 모습뿐이었다, 이런 기록들만 보면서 “이것이 우리 민족의 자화상이다”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게 됐다. 언제부터 이런 역사가 우리에게 새겨졌을까? 정말로 우리 민족은 나약하기만 했을까? 라는 궁금증이 생기면서 한민족의 문화사상에 대한 역사서를 다시 들여다보았다. 한민족에서 전해 내려오던 선도(仙道)는 인류문명의 시원을 이루어 낸 여타 성현(聖賢)들의 가르침 내용보다 시대적으로 훨씬 앞서 있음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이처럼 선조들은 선비정신의 품성(品性)을 중시하고 올바른 예절과 학문을 바탕으로 덕행을 실천했다. 그래서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물이 흐르면 흐르는 대로’ 순리에 따라 사는 자연스러움과 멋스러움이 있었다. 고조선 3세 단군 가륵(嘉勒)은 천하의 대본은 내 마음의 중도일심(中道一心) 자리에 있다며, 중정(中正)과 일심[中一]의 도(道)를 이루기 위해서는 ‘아비는 마땅히 자애롭고, 자식은 마땅히 효도하며, 임금은 마땅히 의롭고, 신하는 마땅히 충성하며, 부부는 마땅히 서로 공경하고, 형제는 마땅히 서로 우애하고, 노인과 젊은이가 마땅히 차례를
선조들은 우주라는 공간에서 만물이 ‘생성·성장·완성·소멸’하는 과정을 아무런 지식이 없는 후손들을 위해 인간을 중심으로 알기 쉽게 설명했다. 최초 문자가 없던 시대에서는 말씀으로 전했다. 후손들이 번창하자 직접 보고 말하지 않아도 될 문자가 필요했다. 최초의 문자가 만들어지면서 한민족의 정신 철학이 문자로 기록되어 후손들에게 전해졌다. 환국-배달국-단군 시대를 거치면서 「천부경」(天符經)과 『삼일신고』와 『참전계경』이 기록으로 완성되었다. 「천부경」에는 만물의 ‘생성·성장·완성·소멸’하는 원리가 담겨있다. 『삼일신고』에는 5장으로 구분하여 「천부경」의 원리를 366자로 설명하고 있다. 『참전계경』은 「천부경」과 『삼일신고』의 원리를 실천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366가지 지혜로 제시하였다. 한민족 정신문화의 원리가 담긴 「천부경」은 환국 시대에 말씀으로, 배달 시대에 녹도문(鹿圖文)로 기록하여 전해지다가, 단군 시대에 이르러서는 전자(篆字)로 기록되었다. 최치원은 이 비석을 보고 81자 갑골문 「천부경」을 묘향산 석벽에 암각(岩刻)하였다. 일제강점기에 계연수가 묘향산 석벽에 새겨진 「천부경」을 탁본하여 단군교에 보내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81자 「천
자연계로부터 인간에게 주어진 수명은 대략 120년쯤 된다는 게 학자들의 지배적인 견해이다. 이러한 기간을 쓸 수 있도록 설계된 ‘정밀한 기계장치’가 실제로 그 기간만큼 사용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는 사실은 뭘 말하는 것일까? 그래서 선조들은 먼저 자연계의 이치를 숙지하고 나서, 인체의 속성을 충분히 숙지하면서 인체를 운용하는 마음, 즉 마음 수련을 하라고 강조한 것이다. 서양의학은 질병의 원인을 설명할 때 분석적·미시적 관점에서 파악하는 데 반해 동양의학은 종합적·거시적 경향이 짙다. 선조들은 세상 만물의 기본 바탕을 ‘수(水)·목(木)·화(火)·토(土)·금(金)’으로 구분하고, 보이지 않는 정신적 요소를 ‘성(性)·령(靈)·정(精)·기(氣)·신(神)’으로 구분하고, 이들을 짝을 지어 ‘목성(木性)·토령(土靈)·수정(水精)·금기(金氣)·화신(火神)’으로 배정(配定)했다. 서양의학은 현미경 발달로 많은 세균 존재를 발견하게 되었고, 세균의 종류와 특징에 대해 밝힌 점은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그러나 서양 의학자들이 ‘바이러스나 세균’ 때문에, 질병이 발생하는 원인이 된다는 것은 분석적인 관점일 뿐이다. 현재 매우 따른 산업화로 인구가 도시로 집중되는 상황이 가
자연은 아무 일도 하지 않으나,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자연이 ‘스스로 그러하도록’ 자연을 다스린다는 것이다. 이것을 가리켜 “자연의 섭리(攝理)”라고 한다. 그리고 자연의 섭리대로 이루어지는 원칙을 가리켜 자연의 이치(理致)라고 한다. 자연의 이치에는 균형(均衡)과 조화(調和)라는 원리가 들어 있다. 이 균형과 조화 속에서 삼라만상이 오고 가듯, 인체도 균형과 조화를 이룰 때 건강할 수 있게 된다. 불가(佛家)에서는 이쪽, 즉 인간이 온갖 고뇌 속에 사는 이 세상을 사바(裟婆)세계 라고 하고, 그리고 온갖 번뇌로부터 벗어 난 사람들이 사는 깨끗한 저쪽 언덕[彼岸]을 정토(淨土)세계 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 언덕에 도달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하였다. 그 길은 아낌없이 베푸는 ‘보시(布施) 바라밀’·재물로 베푸는 재보시(財布施)·진리로 일깨워주는 법보시(法布施)로 구분한다. 온갖 괴로움과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여섯 갈래 길은 “① 보시(布施)는 재물을 베풀거나 진리를 가르쳐주는 ② 지계(持戒)는 불교의 계율에 따라 사는 ③ 인욕(忍辱)은 온갖 욕됨과 번뇌를 참고 견디는 ④ 정진(精進)은 열심히 수행에 힘써 향상의 길로 가는 ⑤ 선정(禪定)은 마음을 가라앉혀 고
고대 철학자들이 지수화풍(地水火風) 네 가지를 주목했는데, 소우주인 인체도 이 네 가지 화합물로 이뤄졌다고 밝혔다. 그런데 과학자들이 인체에서 지(地)에 해당한 원소는 칼슘·나트륨·마그네슘·철분 등인데 2%를 차지하고, 수(水)에 해당한 원소는 수소(水素)인데 63%를 차지하고, 화(火)에 해당한 원소는 탄소(炭素)는 9.5%를 차지하고, 풍(風)에 해당한 원소는 산소(酸素)인데 22.5%를 차지한다고 밝혔다. 우주 자연의 법칙에 따라 지수화풍(地水火風)의 작용으로 만물을 생성할 때 사람도 역시 자연의 산물(產物)이기에 이 기준을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 사람이 건강하게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농사 과정에서 농약·비료의 남용과 각종 화학첨가물로 요리할 때 신중히 생각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든다면 인체에서 흙에 해당하는 살을 모래로 만드는 것과 같다. 중국 전국시대 말기 법가 사상가 한비(韓非)는 성악설(性惡說)의 제창자로 유명하다. 법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을 논한 그의 저서 『한비자(韓非子)』에서 그는 “천 길이나 되는 큰 방죽도 작은 개미집으로 말미암아 무너지게 된다”는 명언을 남겼다. 그는 방죽을 예를 들어 인체의 건강도 조그만 관리 부주의로 비롯된
서양철학에서는 ‘있으면서도 없는 존재’를 기본적으로 부정한다. 눈으로 볼 수 있는 가시권의 분야만 논하려 한다. 물증을 데이터로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영향으로 역사학에서는 철저한 문헌 고증학적 입장에서 머물러 있어, 과거 사실을 고증하는 수준, 그 이상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이런 실증주의는 인간이 ‘천지의 변화법칙’에 따라 정신문화를 주도적으로 형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외면한다. 선조들은 깨달음을 통해 우주와 내가 하나[宇我一體]라는 자연의 이치를 우리에게 알려주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우리에게 망념(妄念)으로 채워진 작은 의식을 버리고, 자연과 함께 할 수 있는 천성(天性)을 되찾으라고 강조(強調)했다. ‘천지 기운이 내 기운이고 천지 마음이 내 마음’이라는 깨달음을 이룬 상태, 즉 모든 관념에서 벗어나 우주와 일체감을 느끼는 무(無)의 경지에 도달하라는 것이다. 선조들은 우주 자연과 인간 만사(萬事)의 상호 관련성을 바탕으로 한 인과법칙(因果法則)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사람과 지구와 하늘은 자연의 원리와 법칙에 따라 운영되므로 결코 그 궤도를 벗어날 수 없다고 밝혔다. 명심보감(明心寶鑑)에도 ‘하늘이 상도(常道)를 벗어나면 큰바람이나 폭우가
이른 봄 아침 차가운 바람이 몸을 감싸 나도 모르게 눈을 뜬다. 창문 틈 사이로 찬바람이 들어오고 있다. 창문을 활짝 열고 밖을 내려다본다. 하얀 꽃잎이 눈송이처럼 날린다. 벚꽃 나뭇가지들이 나를 반긴다. 아! 봄바람이 상쾌하다. 그런데 잠시 잊었던 생각들이 마음 안으로 스며든다. 금세 욕심이 자리를 잡으면서 마음을 흔든다. 그래 ‘욕심을 버려야지, 마음을 다잡아야지’라고 가다듬어 보지만 쉽지 않다. 선생님들이 하시는 말씀 중에 ‘공부에 앞서 먼저 인간이 되자’라고 가르쳤다. 인간이 되라는 말은 마음공부를 하라는 말이다. 마음공부는 어떻게 해야 할까? 마음공부를 하지 않고 몸 수련만 하면 잘못되는 경우가 많다. 문명의 이기가 반드시 옳은 것으로 구성되어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음공부란 인간의 도리를 깨우치는 공부를 말하는 것이고, 더불어 사는 지혜를 깨우치는 공부를 말하는 것이다. 깨우침이란 ‘아! 그렇구나’ 하고 스스로 터득하는 것이다. 스스로 관(觀)을 만드는 것이다. 스스로 잣대를 만드는 것이다. 스스로 기준을 만드는 것이다. 마음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는 마음을 스스로 다스리지 않으면 잘못된 길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람직한 생활상을 정
음양(陰陽)이 조화를 이루어 근본 자리인 궁(宮)에 들어간다는 뜻 ‘짝자꿍’ 놀이는 ‘도리도리 짝자꿍 · 건지곤지 짝자꿍 · 주앙주앙 짝자꿍’ 세 가지 종류가 있다. ‘짝자꿍’은 두 손이 만나서 짝짝 소리를 내며 합궁(合宮)한다는 뜻이며, 궁(宮)은 어머니의 자궁(子宮)으로 생명이 태어나는 자리이다. 인간은 어머니 자궁에서 태어나 깨달음을 얻고 조화궁(造化宮)으로 들어가게 되어있다. ‘짝자꿍’은 두 손이 맞추어져서 짝짝이 되듯이 세상의 이치도 합궁으로 이루어진다. 하늘과 땅이 만나 ‘짝자꿍’이 되어 천지 만물이 생기고, 부부가 만나 ‘짝자꿍’이 되어 자식이 태어난다. 따라서 선도 용어로 ‘하나로 이루어짐 · 조화 · 접합’을 짝자꿍이라 한 것이다. 첫 번째 도리도리(道理道理)에 있다. ‘도리’란 사람이 마땅히 행해야 할 바른길이며, 도리와 도리가 ‘짝자꿍’이 되어야만 인간완성을 이를 수 있다는 뜻이다. 도리도리[목 운동]와 짝자꿍[박수]을 통해 두뇌가 개발되고 손바닥의 혈이 여리며 내장기관이 건강해진다. 지금은 ‘도리와 비도리’ 혹은 ‘비도리와 비도리’가 만나니 도리를 지키는 사람들은 힘들 수밖에 없다. 두 번째 건지곤지(乾指坤指)에 있다. ‘건지곤지’에서
경기 지방에는 ‘배꽃타령’이나 ‘매화타령’과 같이 꽃을 주제로 삼은 민요가 많다. 도라지(道我知) 타령도 그중에 하나로 알려져 있다. 도라지는 한자(漢字)로 ‘도아지(道我知)’라 쓰며, ‘참 나’를 아는 길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도라지(道我知) 타령의 유래를 살펴보았으나 확신한 근거를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선조들은 이 도라지 타령을 듣고, 백성들이 도리를 깨우쳐 더불어 사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담겨있다고 한다. = 도라지 타령 = 도라지 도라지 백도라지 심심산천에 백도라지 한두 뿌리만 캐어도 대바구니 철철철 다 넘는다. 에헤요 에헤요 에헤요 어여라 난다 지화자 좋다. 저기 저 산 밑에 도라지가 한들한들 백(白) 자(字)는 선(仙) 자(字)에서 인(人) 자(字)와 산(山) 자(字)는 왼쪽으로 돌려서 합쳐진 글자로 ‘희다, 밝다’ 등의 뜻이 담겨있다. 도(道) 자(字)는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 우주의 원리와 법칙이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백도(白道)는 ‘깨끗한 도로’라는 뜻으로 ‘정토(淨土)로 통하는 길’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심심(深深)은 ‘깊고 깊은’이라는 의미가 담겨있고, ‘심심산천’이란 인간 내면에 반수반신(半獸半神)이 공생하고 있는데
아리랑(我理朗)은 한민족 전통 민요로 인간완성의 철학이 담긴 노래다. 아리랑을 흔히 남자에게 버림받은 여인의 한 맺힌 슬픔을 표현한 노래라고 알고 있다. 하지만 아리랑의 참뜻은 ‘깨달은 이가 부르던 오도송(悟道頌)’으로, 그것은 본성을 아는 기쁨이며, 깨달음을 위한 노래이며, 성통(性通)의 환희를 표현한 노래다. <아리랑 타령>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고개를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임은 십 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 얼이랑 얼이랑 얼아리요 얼이랑 고개를 넘어간다. 얼을 버리고 가시는 임은 십 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 울이랑 울이랑 울아리요 울이랑 고개를 넘어간다. 울을 버리고 가시는 임은 십 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 아리랑(我理朗)의 유래를 살펴보면, ① '나는 사랑하는 임을 떠난다'라는 뜻이 담겼다는 설 ② 아랑 낭자의 억울한 죽음을 애도한 노래에서 나왔다는 설 ③ 박혁거세의 아내 알영부인을 찬미한 말에서 나왔다는 설 등이 있다. 이 밖에도 여러 발생설이 있으나 모두 확실한 근거는 없다. 아리랑이 담고 있는 의미를 살펴보면, 아(我)는 ‘참 나’를 의미하며, 리(理)는 ‘사람이 지켜야 할 길’을 뜻하며, 랑(朗)은 ‘환하고 맑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