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표 선생, 말년 국회의원 특권폐지 앞장

- '영원한 재야'로 암 투병 중 별세.. 민주화 보상 거부..

 

재야 운동의 상징이자 민주화 운동의 대부인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 원장이 78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고인은 담낭암 투병 중 이날 오전 1시 35분, 일산 국립암센터에서 숨을 거뒀다.

 

장 원장은 1945년 경상남도 밀양에서 태어난 후, 서울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했으나 전태일 열사의 분신 사건을 계기로 학생운동과 노동 운동에 뛰어들었다.

 

그는 1995년에야 졸업하며, 그 사이 민주화와 노동 운동에 헌신해 9년간의 수감 생활과 12년간의 수배 생활을 겪었다. 그는 민주화 운동에 따른 보상금을 한 푼도 받지 않았으며, 이를 "국민 된 도리"로 여겼다.

 

1980년대부터 재야 운동의 중심 인물로 활동하며, 민주통일국민회의와 민중당 창당에 기여했다. 그러나 제도권 정치에서는 7차례의 선거에서 모두 낙선하며 '영원한 재야'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최근에는 신문명정책연구원을 설립하고 국회의원 특권 폐지와 같은 운동에 집중하며 여전히 사회적 변화를 위해 힘썼다.

 

고인은 생전 "행복하게 사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고 밝히며, 국민이 행복한 사회를 만들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조무하 씨와 두 딸이 있으며, 장례식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주관으로 진행된다.

 

그의 삶은 민주화와 노동 운동에 대한 헌신으로 가득 차 있었으며, 많은 이들에게 기억될 것이다.

 

김 · 도 · 윤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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