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를 그토록 찾길 원했는데"…6·25참전 故박태인 경사

- 2007년 유해 발굴…아들 DNA 시료 채취 덕분에 신원 확인
- 벌교경찰서 순경으로 근무하다 전쟁 중 전사

 

6·25전쟁에 참전해 북한군과 유격전을 벌이다가 전사한 고(故) 박태인 경사의 신원이 확인됐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하 국유단)은 2007년 5월 전남 영광군 삼학리에서 발굴했던 유해의 신원을 박 경사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벌교경찰서에서 순경으로 근무하던 고인은 전쟁 발발 후 북한군 6사단의 호남지역 진출을 막기 위해 국군과 전남경찰국이 전개한 호남지역 전투(1950년 7월 20∼25일)에 참전했다. 이 전투에서 삼학리를 지키던 경찰 소대 병력은 영광 방면으로 진출하는 북한군 대대에 맞서 유격전을 전개하면서 영광 불갑산으로 후퇴했고, 고인은 이 작전에서 전사했다.

 

박 경사는 전남 광양시 진정리에서 4남 4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전쟁 발발 당시 슬하에 1남을 뒀는데 당시 2살이던 아들 박완근 씨는 부친에 대한 기억이 많지는 않다.

 

아들은 유해 신원 확인 소식에 "무슨 일인지 멍해서 잘 모르겠다. 옛날 같으면 생각도 못 할 일을 국방부와 대한민국 정부가 해냈다"며 "아버지를 그토록 찾기 원했던 할아버지와 어머니 옆에 고이 안장해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박 경사의 아버지는 아들의 유해를 수습하려고 보성과 벌교 일대를 헤매고 다녔지만, 뜻을 이루지 못한 채 1976년 95세를 일기로 작고했다. 고인의 신원 확인 통보 행사는 오는 13일 광양에 있는 유가족 자택에서 시행하며, 유해는 가족 의사에 따라 선산 가족묘에 안장될 예정이다.

 

이번 신원 확인은 박완근 씨가 방송에서 유해발굴 사업을 접하고 2020년 10월 광양시 보건소를 방문, 유전자 시료 채취에 참여한 덕분에 가능했다. 국유단은 유해 신원 확인에 국민 참여가 필요하다며 국유단 전화(☎ 1577-5625)나 인근 보건소·보훈병원·군병원 등으로 연락해달라고 당부했다.

 

유전자 시료 채취를 희망하나 거동 불편, 생계 등 이유로 방문이 어려우면 국유단이 직접 찾아갈 수도 있다. 6·25 전사자 유해 발굴 사업은 2000년 4월 시작됐고 지금까지 전사자 197명의 신원을 확인했다.

 

김 · 도 · 윤 <취재기자>

핫 뉴스 & 이슈

[기자생각] 518, 그늘 속의 영웅들
1980년 5월, 광주에서는 수많은 민간인의 희생을 초래했으며, 시간이 흐르면서 민주주의의 발전에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고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계엄군으로 참여했던 군인들은 역사의 어두운 그림자 속에 남겨져 있다. 이들은 역사의 죄인일까.. 당시 광주에서 계엄군으로 참여했던 군인들은 국가의 명령에 따라 행동했음은 물론이다. 그들에게 주어진 사명은 내란 진압이었으며, 이는 대한민국의 안정과 보호를 위한 것으로 여겨졌다. 이들의 선택은 단순히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니라, 그 시대 상황 속에서 내릴 수밖에 없었던 어려운 결정이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어쨌던 그들은 역사의 한 장면 속에서 피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했던 우리와 같은 국민들이었다. 역사의 재평가는 이러한 목소리를 포용하고 이해하는 과정에서 시작된다. 민주주의의 발전과 국가 안보의 중요성을 동시에 고려하는 것은, 대한민국이 직면한 도전을 헤쳐 나가는 데 있어 필수적인 요소이다. 대한민국은 지금도 여전히 북한의 지속적인 위협과 내부적인 도전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가의 안보를 지키기 위한 준비와 결단력은 한시도 미룰 수 없는 사명임에 틀림없다. 과거의 사건을 통해 얻은 교훈을 바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