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뫼의 우리역사 길라잡이] 更, 고칠 경 vs 다시 갱

- 정몽주의 '단심가' 번역에 오류
- 사람은 '고쳐' 죽을 수가 없는 법

= 그동안 우리가 잘못 알고 있었던 우리역사의 오류와 편견 등을 바로 잡아보기로 했다.  그간 이 방면에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 오신 '이영철' 교수를 필진으로 모셨다. 필자가 밝힌 바대로 "코페르니쿠스적이고 르네상스적"인 내용이 될 것이다.  <편집국> =

 

 

인구에 회자되는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1337~1392)의 '단심가'는 이러하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此身死了死了一百番更死了, 白骨爲塵土魂魄有也無, 向主一片丹心寧有改理也歟)

 

'단심가'는 이방원(후일 태종·1367~1422)의 '하여가'에 대해 포은의 고려에 대한 충절을 읊은 불후의 시조이다. 그런데 「포은집」에 수록된 한역시를 우리말로 옮길 때, ‘更’을 ‘다시’로 번역해야 옳은데 ‘고쳐’로 오역해서 비롯된 일이다. 아니 사람이 어찌 고쳐 죽을 수가 있겠는가.

 

이는 개항 이후 추진된 조선의 근대화 프로젝트인 갑오경장(甲午更張)을 보면 명확해 진다. 우리는 1894년의 이 개혁을 ‘갑오갱장’으로 읽지 않고 ‘갑오경장’으로 읽는다. ‘경장(更張)’은 거문고 줄을 조율(고쳐 맴)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항일운동기(일제강점기는 주객전도된 역사용어로 수정되어야 함) 외솔 최현배(崔鉉培·1894~1970)가 민족 계몽을 목적으로 저술한 「조선 민족 갱생의 도(朝鮮民族 更生의 道)」(1930)을 보면 ‘更生’을 ‘경생’이 아닌 ‘갱생’으로 표현하였다.

자, 이제 포은의 단심가를 소리 내어 고쳐 읊어보자.

 

 

이 영 철  <前 목원대 교수 / 선진사회만들기연대 역사포럼 운영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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