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준호 칼럼] 제자들아, 초가삼간은 태우지 말자..

- 자유가 억압되면 경제는 결코 부흥할 수 없어
- 전체주의, 한강대로 양편의 무리가 모이는 것도 사라져..

 

우리 사회가 긴장감이 도는 형국이다. 살면서 이처럼 긴장감이 엄습해 오는 총선은 없었다. 열흘 남긴 4.10 총선을 앞두고 여야, 좌우의 대립이 극한을 달리고 있다. 삼각지 큰 도로, 한강대로를 사이에 두고 주말 저녁 무렵 여당을 지지하는 국민은 대한민국을 지키자는 절규를 한다.

 

그들 대부분은 65세 이상의 노령자이다. 옷차림이 겉보이기에 허름해도 젊은 시절 한 때는 사회 각계 각 분야에서 존재감을 과시하며 날리던 어르신이다. 그런 분들이 황사가 유독 심한 주말에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의 내일을 걱정하며 연사의 연설에 박수를 보내고 깃발을 흔든다. 그러나 그 어르신들은 환호하면서 속으로는 눈물을 흘린다. 우리가 어떻게 이룩한 이 나라인데 우리가 왜 이러고 있느냐는 한탄을 하면서 말이다.

 

길 건너에는 윤 대통령을 탄핵하자는 피켓을 들고 행진을 한다. 워낙 큰 도로의 길 건너이기에 피켓 글자를 모두 확인할 수 없고, 그들의 구호 외침도 자동차 소음 소리에 들을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도로 양 사이의 주장이 정반대인 것은 분명하다. 건너편 무리들의 모습을 보아 어르신보다 한 세대 내지 1.5세대 차이가 나는 청장년층이다. 내 입장에서 보면 제자들이다. 가까이에서 본다면 아는 얼굴이 있을 수도 있다. 즉석에서 차 한잔이라도 하며 이야기 하고 싶은 충동을 갖는다.

 

그러려면 먼저 제자의 주장을 들어줘야 할 것이다. 아마도 그 제자는 토요일 오후 거리에 나선 이유를 목소리 높여 설명할 것이다. 요점은 간단할 것이다. 살기 힘든 세상 헬조선이라며 비난을 퍼부을 것이다. 또 어린 자녀의 미래에 좋은 세상을 남겨주기 위해 그러는 것이라 할 것이다. 야당의 단골 메뉴 ‘검찰독재’를 언급할 것도 충분히 예상한다.

 

나로서는 말 중간마다 하나 하나 반박하고 싶겠지만 일단은 경청을 한다. 내가 그래야 그 제자도 나의 주장을 길게 들어줄 것이니까. 세상 살기 힘들다는 주장에는 옛날에는 그보다 훨씬 심했다고 할 것이고, 지금도 다른 국가에 비해서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의 형편이 좋다고. 헬조선 언급에 대해서는 그러면 북한은 어떤 조선이냐고 질문을 해 본다. 제자가 뭐라고 답변을 할지 모르겠다.

 

나는 휴대폰에 저장되어 있는 사진 한 장을 보여 주련다. 인공위성에서 한밤중에 촬영한 한반도 사진은 빛의 대한민국과 어둠의 북한이 극명하다. 미래 세대를 위해 거리에 나섰다고 하면 나도 사실은 그래서 나왔다고 공감을 할 것이다. 실제로 그러하다. 손자 손녀가 미래에 밝은 얼굴로 살아갔으면 하는 심정은 손자 손녀의 아빠와 엄마인 아들 며느리보다 더 절실하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2세, 3세가 미래에 행복하게 산다는 것은 자유롭고 풍요로움이다. 이 두 가지는 별개의 것이 아니고 한 몸이다. 자유로워야 풍요로울 수 있다. 자유롭지 않으면 풍요로울 수가 없다.

현대역사가 완전히 증명하였다. 자유가 억압되면 자발성과 창의성이 사라져 경제가 부흥할 수 없다. 정체는 곧 퇴보를 의미한다. 전체주의가 그러하기 때문에 실패한 것이다.

 

대한민국이 무너지면 이 사회는 북한이나 중국의 지배를 받을 것이기에 한순간에 통제사회로 들어가 자유는 사라진다. 세상은 순식간에 움추려들 것이 자명하다. 외국자본은 물밀 듯이 빠져 나갈 것이다. 한강대로 양편의 두 무리가 이처럼 목소리 내는 것조차 어려워진다, 목소리를 내기는커녕 모이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목숨을 내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제자는 나의 설명에 바로 동의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제자가 돌아가는 길에 우리 둘의 대화를 복기하면 내 말에 상당 부분 긍정할 것이라 확신한다. 스승의 눈빛에 진심이 있음은 알아줄 것이라 생각한다. 기득권을 누리겠다는 것이 아님은 알 것이기 때문이다. 꼰대의 소리라고 무시하지는 않을 것이다. 교수 시절에 학생들의 목소리를 경청하며 이해하려고 노력했던 스승이기에. 또 사회 변혁에 다소 진보적인 입장임을 알고 있을 것이기에.

 

한편으로 나는 집으로 가는 길에 젊은 시절을 회상한다. 그 시절 나는 이상주의자였다. 완벽한 자유민주주의를 추구하였기에 이에 조금만 어긋나면 현실에 부정적 태도를 견지하였다. 카리스마 정치에 도전하였다. 독점자본주의에 대항하는 노동조합의 활동에 당위성을 부여하였다. 1980년 서울의 봄에 광장을 메운 시민과 학생에 공감을 표시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지금 와서 회고해 보면 나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농락당했다는 반성을 한다.

 

당시 사회 비판은 지식인의 자존감이고 심지어 의무라고까지 여겼는데, 지금에 와서 보면 그 도전장은 이상과는 전혀 달리 주적을 이롭게만 하는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결국 주적의 하수인들에게 농락당한 철없는 행동대원이었다. 그러기에 이제 과유불급이란 말이 깊이 와 닿는다.

 

독재라 하던 모습은 옥의 티였는데 당시 나는 티 그 자체로 보았다. 독재정치도 아닌 것을 독재정치라 용감하게? 단죄하였다. 독재정치가 물러나면 그 다음은 완벽한 자유민주주의가 실현될 것이라 믿었지만 실제는 인민민주주의 전체주의 사상이 주적의 앞잡이에 의해 스며들고 있었다.

 

 

집에 들어간 제자에게 한 마디 전화로 더 하고 싶은게 있다. 그 정도 하면 충분히 대통령과 여권에 경각심을 주었다고. 더 이상의 검찰독재 우려는 없을 것이라고. 만약에 지나치면 빈대 몇 마리 잡으려다가 초가삼간을 태울 것이라고. 제자 누구도 그러기를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제자의 4.10 총선에서 한 표는 빈대 몇 마리 잡으려고 초가삼간 태울 일은 없을 것이다.

 

                                                                                

                                              

                                      송 · 준 · 호  대한민국투명세상연합 상임대표

                                                              전 안양대 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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