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인터넷 캡쳐 |
북한이 ‘모란봉전설’을 국가비물질문화유산으로 내세우며 “조선인민의 애국심”과 “평양의 역사와 문화”를 강조하고 있다. 모란봉이 평양의 대표적 명승지이고, 오랜 세월 여러 전설과 이야기를 품어온 공간이라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문제는 북한 당국이 이러한 문화유산을 있는 그대로 보존하고 전승하는 것이 아니라, 체제 선전과 정치적 애국주의 교육의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 매체는 모란봉을 “수도 평양의 한복판을 흐르는 대동강 연안의 명승지”로 소개하며, 봉우리 모양이 피어나는 모란꽃을 닮아 모란봉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또한 모란봉에 전해오는 전설들이 “평양 인민들의 아름답고 고상한 인정세태”, “우리 인민의 애국정신”을 반영한다고 주장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지역의 역사와 구전문화를 소개하는 글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문장 속에는 북한식 문화정치의 전형이 드러난다. 자연과 전설, 민속과 역사까지도 결국 “애국심”이라는 이름 아래 하나의 정치적 메시지로 수렴된다. 전설은 원래 민중의 삶과 상상력, 두려움과 소망, 공동체의 기억이 자유롭게 축적된 문화적 산물이다.
그런데 북한의 설명에서는 전설 자체의 다양성과 인간적 깊이보다, 국가가 요구하는 애국정신과 체제 충성의 의미가 앞세워진다.
문화유산은 특정 정권의 소유물이 아니다. 모란봉의 전설 역시 평양 사람들의 삶, 한반도의 역사, 민간의 구전 전통 속에서 형성된 것이다. 그 안에는 자연을 바라보는 감수성, 도시 공동체의 기억, 세대를 이어 내려온 이야기의 힘이 담겨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북한 당국은 이를 “조선인민의 애국심”이라는 정치적 틀에 가두고 있다. 이는 문화유산의 보존이 아니라 문화유산의 정치적 점유에 가깝다.
특히 주목할 점은 북한이 평양의 문화와 역사를 반복적으로 국가 정체성의 중심에 놓는 방식이다. 모란봉은 평양의 명승지이고, 평양은 북한 체제의 상징 공간이다. 따라서 모란봉전설을 국가비물질문화유산으로 강조하는 일은 단순한 향토문화 소개를 넘어, 평양 중심의 국가 서사를 강화하는 효과를 갖는다.
지방 주민들의 고난과 소외, 북한 전역의 다양한 민속과 생활문화는 뒤로 밀리고, 수도 평양의 이미지가 ‘국가의 얼굴’처럼 포장된다.
더 큰 문제는 북한 주민들이 문화유산을 자유롭게 해석하고 향유할 권리를 갖지 못한다는 현실이다. 전설과 민속은 다양한 해석을 허용할 때 살아 있는 문화가 된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와 학문의 자유가 억압된 사회에서 문화유산은 주민의 것이 아니라 당국이 승인한 해석만 허용되는 선전물로 변질되기 쉽다.
북한에서 ‘비물질문화유산’이라는 이름은 아름답지만, 그 안에 담기는 내용은 결국 체제가 허락한 이야기일 뿐이다.
문화유산을 보존한다는 것은 과거를 미화하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전승 과정의 다양한 목소리를 인정하고, 역사 속의 인간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일이다. 모란봉전설도 마찬가지다.
그 전설이 진정한 문화유산이라면, 그것은 국가가 강요하는 애국주의의 교재가 아니라 평양 사람들과 한반도 민중이 남긴 삶의 기억으로 존중되어야 한다.
북한 당국은 모란봉의 아름다움과 전설을 말하기 전에, 그 아름다운 산과 강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주민들이 과연 자유롭게 말하고, 기억하고, 믿고, 기록할 수 있는지를 먼저 돌아봐야 한다. 문화유산은 체제를 찬양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삶과 공동체의 기억을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
모란봉전설을 국가비물질문화유산으로 선전하는 북한의 태도는 결국 한 가지 사실을 보여준다. 북한은 자연도, 전설도, 역사도 있는 그대로 두지 못한다. 모든 것을 체제의 언어로 바꾸고, 모든 기억을 충성의 서사로 재편하려 한다. 그러나 문화는 명령으로 살아나지 않는다. 전설은 선전문이 되는 순간 생명력을 잃는다.
모란봉이 진정 아름다운 이유는 권력이 붙인 구호 때문이 아니라, 그곳에 깃든 사람들의 자유로운 기억과 삶의 흔적 때문일 것이다.
김·성·일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