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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A 가톨릭 497] 영국의 음란물 금지가 드러내는 성 해방의 거짓

2026-10-20 08:04 | 입력 : 리베르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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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얼 구치 Niall Gooch is a public sector worker and occasional writer who lives in Kent. 공공 부문 종사자


필립 라킨은 성 혁명을 반어적으로 성찰한 시 「경이로운 해」에서 이렇게 익살을 부렸다. “성관계는 시작되었다 / 1963년에…… / 『채털리』 금서 조치가 끝난 때와 / 비틀스의 첫 음반 사이에.”

여기서 말하는 『채털리』는 물론 D. H. 로런스의 『채털리 부인의 연인』이다. 1960년, 이 소설의 영국 최초 무삭제판을 출간한 펭귄북스를 상대로 새로 제정된 음란출판물법에 따라 제기된 소송은 배심원 전원일치의 무죄 평결로 끝났다. 이 재판은 때로 성적으로 관대한 사회의 여명을 알린 사건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다소 미온적이었던 검찰의 기소는 구체제 기득권층의 도덕적 권위와 자신감이 쇠퇴하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 주었다. 훗날 은밀한 무신론을 담은 『신에게 솔직히』를 집필해 악명을 얻은 성공회 주교 존 로빈슨은 진보적인 학자들과 함께 피고 측 증인으로 출석했다.

그 뒤로 매체에 등장하는 성과 폭력, 상스러운 언어에 대한 규제를 유지하려던 사람들은 줄곧 수세에 몰렸다. 1968년 제정된 극장법은 궁내장관이 오랫동안 행사해 온 연극 검열권과 공연 금지권을 폐지했다. 정면 전라 노출이 등장하는 뮤지컬 『헤어』는 이 법이 발효된 바로 다음 날 런던에서 개막했다. 단명한 풍자 잡지 『오즈』를 둘러싸고 1971년에 열린 또 하나의 악명 높은 외설 재판에서는 유죄 판결이 내려졌지만, 이 판결들은 항소심에서 뒤집혔다.

로널드 드워킨을 비롯해,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부상하던 반문화 진영의 여러 유명 인사가 피고 측에 섰다. 선진국 전역에서 동시에 일어나던 변화를 고려하면, 메리 화이트하우스 같은 운동가들이 간혹 거둔 승리는 허리케인 속에서 외치는 소리나 다름없었다. 신성모독과 공중도덕에 관한 법률은 법전에 남아 있었지만 조용히 무시되었다.

1990년대 이후 인터넷의 확산은 노골적인 성적 자료와 정체성을 중심으로 형성된 온라인 집단에 거의 즉각 접근할 수 있게 함으로써 성 혁명의 승리를 굳혔다. 그 결과 가족과 교회, 지역 공동체의 유대에서 지적으로나 도덕적으로 거리를 두기가 훨씬 쉬워졌다.

그러나 성공한 모든 혁명은 결국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직면해야 한다. 영국의 엘리트와 지식인들이 지난 60여 년 동안 해 왔듯이, 성을 둘러싼 기존의 법과 도덕, 금기와 관습의 체계를 무너뜨리는 일까지는 좋다. 어려운 일은 일관성 있는 새로운 체계를 짜 맞추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최근 영국 정부의 발표를 살펴보게 된다. 11월 6일부터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는 목 조르기나 근친상간을 묘사한 음란물을 소지하거나 발행하는 행위가 불법이 된다. 『퍼스트 싱스』 독자 대부분은 외설적 자료에 대한 규제라면 대체로 지지할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그러나 특정한 ‘장르’만 골라 금지하면서 ‘정상적인’ 음란물은 암묵적으로 용인하는 것은 많은 문제를 제기한다.

그 밑바탕의 논리는 이렇다. 관련된 모든 사람이 동의하는 성인인 한, 음란물을 보거나 제작하는 행위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특정 유형의 음란물은 사람들에게 악한 습관을 형성해 현실 세계에서 타인에게 나쁘게 행동하도록 부추길 가능성이 있으므로, 이를 규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취지에서 한 정부 장관은 BBC에 “무해한 성적 취향을 범죄로 규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여성에 대한 폭력을 정상화하고 미화하는 행위는 “현실에서 무엇이 용인될 수 있는지에 관한 경계를 흐릴” 수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는 나름의 논리가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음란물은 현실에 미치는 영향 면에서 무해하다는 그 바탕의 전제는 결코 자명하지 않다. 더 넓게 보면, 성 해방이라는 이념적 기획 전체는 유지하면서 그 막대한 폐해를 관리하려는 여러 시도에는 엄청난 긴장과 모순이 내재해 있다. 성행위 중 목 조르기 자체가 흥미로운 사례이다. 일부 익명 설문조사에 따르면, 이는 남성이 여성에게 강요하기보다는 여성들이 실제로 스스로 원하는 행위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문제가 없는 것인가? 아니면 인간의 성적 욕망에 깃든 모방적 요소 때문에 여성들이 어떤 의미에서는 그것을 좋아하도록 기만당하고 있는 것인가? 혹은 목 조르기가 본질적으로 성적 친밀함의 의미에 정면으로 어긋나기 때문에, 어느 쪽이든 중요하지 않은 것인가? 오늘날의 윤리는 이러한 질문에 명확한 답을 제시하지 못한다. 이 질문들은 훨씬 더 깊고 광범위한데도, 오늘날의 윤리는 특정 순간에 특정 개인이 한 동의를 기준으로 질문의 틀을 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네 뜻대로 하라”는 근본 교리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으면서 성적 방종의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시도에서는 온갖 기이한 현상이 나타난다. 적극적 동의라는 개념은, 성에는 본래의 목적이나 가치가 없다고 공식적으로 여기는 문화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모호함과 상충하는 기대에 대응하려는 노력이다.

특히 코넬 사건 이후, 일부 논평가들은 ‘동의 이상의 것’을 요구하는 성 윤리를 정립하려 했다. 성관계를 맺으려는 이들에게 서로의 장기적인 건강과 안녕을 고려하고, 기대와 이해를 공유하는 맥락 안에서만 성관계를 맺도록 요구하는 윤리이다. 물론 보수주의자들은 이것이 기본 원리에서 출발해 혼인 제도를 거꾸로 재구성하는 일처럼 들린다고 타당하게 지적할 수 있다. 남녀 간 성관계라는 지뢰밭을 헤쳐 나가기 위한 사회적 장치는 이미 존재한다. 그 안에서는 관계의 헌신적이고 영속적이며 배타적인 성격이 객관적으로 규정되고, 당사자들이 이에 공개적으로 동의한다.

더욱 인간다운 성 윤리를 옹호하는 이들에게는 희망이 있다. 모든 세대에 걸쳐 대다수 사람은 여전히 성적 부정행위에 극도로 부정적이다. 이는 사람들이 어떤 차원에서는 성의 깊은 의미를 이해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그리스도교로 회심한 이들의 증언에는 오늘날 성적 만남의 시장이 보여 주는 잔혹함에 대한 혐오가 공통된 주제로 등장하며, 이러한 혐오는 비관적인 보수주의자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널리 퍼져 있을지도 모른다.

라킨으로 돌아가 보자. 평생 종교에 회의적이었던 그조차도 오래된 유대가 해체되는 일을 두고 양가적인 감정을 품었다. 피임약이 등장한 이후의 새로운 세계를 성찰하면서, 그는 공허와 권태를 불러일으키는 불안한 이미지로 시 「높은 창문들」을 끝맺었다.

“말 대신 떠오르는 것은 높은 창문들에 대한 생각이다.
햇빛을 품은 유리,
그리고 그 너머, 아무것도 드러내지 않는 짙푸른 대기,
어디에도 없고, 끝도 없는.”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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