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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캡쳐 |
육·해·공군 사관학교 통합 논의에 급기야 “쿠데타 주역 육사의 흑역사를 끊을 계기”라는 주장까지 등장했다. 참으로 어이가 없는 발상이다.
대한민국의 미래 안보를 책임질 육사 생도들이 과거 쿠데타의 책임자들인가. 지금 화랑대에서 교육받는 청년들은 군사정권 시대에 태어나지도 않았다. 북한 핵과 미사일, 무인기와 사이버전, 급변하는 동북아 안보환경 속에서 앞으로 대한민국을 지켜야 할 예비 장교들이다.
그런 청년들에게 육사를 마치 ‘쿠데타의 산실’인 양 취급한다면 이는 개혁이 아니라 모독이다. 더구나 육사의 강력한 조직적 영향력을 약화시키는 것이 3군 사관학교 통합의 숨은 논리라면 더 근본적인 질문에 답해야 한다.
육사를 약화시키겠다며 3군 사관학교를 하나로 묶는다면 권력이 분산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장교 양성체계가 하나의 거대한 조직으로 집중될 가능성도 있다. 육사라는 하나의 결집력이 걱정돼 육·해·공군의 전통과 교육체계를 통째로 합쳐버린다면 그것이 과연 ‘분산’인가, 아니면 더 큰 ‘집중’인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안보다. 육군과 해군, 공군은 작전환경도, 무기체계도, 지휘문화도 다르다. 육군 장교에게 필요한 전장 감각과 해군·공군 장교에게 요구되는 전문성은 결코 동일하지 않다. 수십 년을 넘어 축적해온 각 군의 교육체계와 전통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그런데 정치적 명분을 앞세워 이를 한꺼번에 뜯어고치다가 교육과 지휘체계에 혼선이 발생한다면 누가 책임질 것인가. 교육과정 하나를 바꾸는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미래 지휘관을 길러내는 국가안보의 근간을 재설계하는 일이다. 기업 구조조정에는 시행착오가 있을 수 있어도 국가안보에는 단 한 치의 시행착오도 허용될 수 없다.
통합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군별 전문성 약화, 지휘체계 혼선, 장교 양성의 공백과 정체성 충돌을 무엇으로 보상할 것인가. 한번 무너진 군의 지휘문화와 교육체계는 돈 몇 푼으로 복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특히 북한이 핵무력을 고도화하고 북·러 군사협력이 강화되는 엄중한 시기에 대한민국 군의 장교 양성체계를 정치적 실험대에 올리는 것은 위험천만하다. 또한 12·3 비상계엄 사태를 겪었다고 해서 대한민국 군 전체를 잠재적 쿠데타 세력처럼 바라봐도 된다는 논리 역시 성립하지 않는다.
더 황당한 것은 그토록 ‘무소불위의 권력’을 걱정하면서 정작 눈앞에서 거대해지는 경찰권력에는 놀라울 만큼 조용하다는 점이다.
오늘의 경찰은 단순한 치안조직이 아니다. 수사하고, 체포하고, 압수수색하며, 집회와 시위를 관리하고, 경제·사이버·정보·생활안전 등 국민 일상의 거의 모든 영역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대한민국 국민 누구도 경찰권력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 여기에 검찰 수사권 축소와 형사사법체계 개편까지 더해지면서 경찰의 권한과 역할은 더욱 커지고 있다.
군은 총을 가진 권력이다. 그래서 철저한 문민통제를 받는다. 그렇다면 국민을 직접 수사하고 체포할 수 있는 경찰은 어떤가. 경찰 역시 군 못지않게 강력한 견제와 통제를 받아야 한다.
검찰권력이 너무 강하다며 축소하고, 육사의 영향력이 강하다며 3군 사관학교까지 통합하려 하면서 정작 비대해지는 경찰권력에 대해서는 별다른 견제장치도 없이 권한을 계속 얹어준다면 이것을 어떻게 권력기관 개혁이라 부를 수 있는가.
권력기관 개혁은 한쪽의 힘을 빼앗아 다른 쪽에 몰아주는 일이 아니다. 권력을 분산시키고, 서로 견제시키며, 국민 앞에 책임지게 만드는 것이 민주주의다.
대한민국은 지금 국민의 안보를 가지고 사회실험을 할 만큼 한가한 나라가 아니다. 화랑대의 청년들에게는 수십 년 전 쿠데타의 그림자를 씌우면서 군 교육체계의 대수술이 가져올 안보 혼란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동시에 국민 5천만 명을 상대로 막강한 강제력을 행사하는 경찰권력의 팽창에는 눈을 감는다면 심각한 자기모순이다.
화랑대를 피하려다 경찰대를 만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이 경계해야 할 것은 육사라는 이름도, 특정 제복도 아니다. 견제받지 않는 권력, 그리고 안보를 정치적 실험 대상으로 삼는 현 집권여당이야말로 대한민국의 가장 큰 리스크다.
<論 說 委 員 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