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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천 꺼먹다리 앞에서 이범식 박사와 도보단 일행 모습 |
‘왼발박사’ 이범식 박사가 분단의 현장인 비무장지대(DMZ)를 따라 평화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시작한 510㎞ 대장정이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이범식 박사와 ‘평화와 희망의 길 잇기 도보단’은 지난 7월 15일 강원도 고성군청을 출발해 광복절인 오는 8월 15일 강화도 평화전망대에 도착하는 것을 목표로 걷고 있다. 지난 6일 현재 도보 거리는 이미 400㎞를 넘어섰다. 특별한 변수가 없다면 당초 계획대로 광복절에 대장정을 마무리할 전망이다.
이번 도전은 단순한 장거리 도보가 아니다. 양팔이 없고 오른쪽 다리에 의족을 착용한 중증장애인인 이 박사가 자신의 신체적 한계를 넘어 분단의 땅을 직접 걸으며 평화와 화합의 의미를 알리는 여정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 박사는 이미 여러 차례 장거리 도전에 성공했다. 2024년 서울 광화문에서 경북 경산까지 약 460㎞를 걸었고, 2025년에는 경주 엑스포의 성공 개최를 기원하며 광주에서 경주까지 약 400㎞를 완주했다.
올해 2월에는 대구·경북 통합 캠페인을 위해 대구시청에서 경북도청까지 140㎞를 걸었다. 지난 5월에는 한쪽 다리에 의지해 한라산 백록담 등정에도 성공하며 인간의 의지가 신체적 한계를 어디까지 극복할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그러나 이번 DMZ 510㎞ 종주는 이전의 도전보다 훨씬 혹독하다.
도보단에 따르면 이 박사는 매일 15~20㎞를 걷고 있다. 온몸의 하중을 사실상 왼쪽 다리와 발바닥으로 견뎌야 하는 탓에 도보 초반부터 발바닥에 큰 물집이 생겼다. 물집이 터지고 다시 아물기를 반복했고, 의족과 맞닿는 오른쪽 정강이에도 심한 상처가 생겼다.
특히 의족과 피부가 지속적으로 마찰하면서 상처 부위가 짓무르는 상황까지 이어졌다. 도보 3일째부터 나타난 통증은 시간이 흐를수록 심해져 한때는 1㎞가량 걸은 뒤 상처를 소독하고 다시 출발해야 할 정도였다는 것이 도보단의 설명이다. 그럼에도 이 박사는 걷기를 멈추지 않았다.
폭우가 쏟아지면 비를 맞으며 걸었고, 폭염이 덮치면 뜨겁게 달아오른 길 위를 다시 걸었다. 잠시 의족을 벗고 상처를 치료한 뒤에도 다시 몸을 일으켜 목적지를 향했다.
그의 한 걸음 한 걸음이 ‘평화와 희망의 길’이라는 이름에 무게를 더하고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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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더위를 피해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도보단 모습 |
백마고지에서 되새긴 ‘피로 지켜낸 자유’
도보단은 강행군 도중 6·25전쟁의 대표적인 격전지인 철원 백마고지전승기념관을 찾아 호국영령들을 추모했다.
백마고지는 1952년 10월 국군 제9사단과 중공군이 치열한 전투를 벌인 곳이다. 열흘가량 계속된 전투에서 고지의 주인이 수차례 바뀔 정도로 격전이 이어졌고, 엄청난 포격으로 산의 모습까지 달라졌다.
포탄에 산등성이가 하얗게 깎인 모습이 마치 흰 말이 누워 있는 것처럼 보였다는 데서 ‘백마고지’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진다.
도보단의 방문 소식을 접한 군 장병들과 철원군 관계자들도 이 박사 일행을 맞아 격려했다. 현장을 찾은 군산지역 중학생 태권도부 학생들은 이 박사와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북녘을 바라보며 애국가를 부르기도 했다.
이 박사는 백마고지 전적비 앞에서 이번 대장정을 계속하는 이유를 분명히 밝혔다.
그는 “처절한 고통과 악천후 속에서도 발걸음을 멈출 수 없었던 것은 호국영령들의 피로 지켜낸 이 땅에 평화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기 때문”이라며 “백마고지 전투에서 보여준 불굴의 의지와 투혼을 가슴에 새기고, 어떤 난관이 있더라도 끝까지 완주하겠다”고 말했다.
도보단은 철원평야와 한탄강 일대도 지나며 분단의 역사를 되새겼다. 전쟁과 분단의 상흔이 남아 있는 지역을 직접 걷는 이들은 과거의 비극을 기억하는 데 머물지 않고, 갈등을 넘어 평화와 화합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DMZ를 분단의 길 아닌 평화의 길로”
도보단을 이끄는 최성덕 단장은 이번 대장정이 한 개인의 도전을 넘어 국민들에게 화합과 평화의 의미를 되새기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최 단장은 “연일 이어지는 폭우와 폭염, 신체적 한계를 뛰어넘어 묵묵히 희망의 길을 이어온 이범식 박사와 대원들의 모습에 철원의 호국 정신까지 더해져 깊은 울림을 준다”며 “분단의 상징인 DMZ를 평화와 희망의 길로 바꾸는 한 걸음 한 걸음이 새로운 역사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도전의 상징성과 관광·평화 콘텐츠로서의 가치에 비해 관계 기관과 일부 지방자치단체의 관심이 부족하다며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당초 도보단은 강화도 마니산 참성단에서 해단식을 열 계획이었다. 하지만 산세가 가파른 데다 이 박사의 오른쪽 정강이 상처가 심해 하산 과정에서 안전사고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해 최종 목적지를 강화평화전망대로 변경했다.
해단식은 오는 8월 15일 오후 3시 강화평화전망대에서 열릴 예정이다. 도보단은 관계자들과 함께 이 박사의 완주를 격려하고 한반도 평화에 대한 염원을 모을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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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주 율곡습지공원에 도착한 이범식 박사 |
상처 위에 새기는 510㎞의 희망
고성에서 출발한 길은 이제 강화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러나 이범식 박사가 지금까지 걸어온 400여㎞를 단순히 거리의 숫자로만 설명하기는 어렵다.
터진 물집을 소독하고 다시 신발을 신은 시간, 의족에 쓸려 짓무른 상처를 견디며 다시 몸을 일으킨 순간, 장대비 속에서도 한 발을 내딛고 폭염 속에서 다시 한 발을 보탠 시간들이 모여 만들어진 거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길 한편에는 백마고지에서 나라를 지키다 쓰러진 이름 없는 장병들의 희생과 아직 끝나지 않은 분단의 현실이 함께 놓여 있다.
광복절인 8월 15일, 그가 강화평화전망대에 도착한다면 이번 510㎞ 종주는 한 장애인의 ‘인간 승리’에만 머물지 않을 것이다.
전쟁의 상흔이 남은 DMZ를 따라 이어온 그의 발걸음은 과거의 희생을 기억하면서도 미래에는 더 이상 전쟁과 분단의 고통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라는 하나의 메시지가 될 수 있다.
상처는 깊어지고 있지만 발걸음은 멈추지 않는다. 왼발박사 이범식이 걷고 있는 길은 지금, 분단의 길 위에 평화와 희망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한 걸음씩 새겨가고 있다.
김·희·철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