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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캡쳐 |
북한 풍계리 핵실험장 인근 지역 출신 북한이탈주민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검사에서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결과가 나왔다. 지난 5년간 염색체 검사를 받은 214명 가운데 64명, 무려 29.9%에게서 방사선 피폭으로 발생할 수 있는 염색체 이상이 관찰된 것이다.
검사 대상자 10명 가운데 3명꼴이다. 이 정도 규모라면 단순한 우연이나 개인적 생활 습관만으로 치부하기 어려운 중대한 공중보건·인권 문제다. 연구진 역시 핵실험에 따른 피폭 가능성을 떠올리는 것이 “과학적으로 합리적인 의심”이라고 밝혔다. 그런데도 정부는 또다시 “인과관계가 확인되지 않았다”는 말만 앞세우고 있다.
물론 염색체 변이가 흡연이나 의료 방사선 등 다른 요인으로 발생할 가능성을 과학적으로 배제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인과관계가 아직 입증되지 않았다는 사실과 피폭 가능성이 없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오히려 지금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인과관계가 확인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인과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 것이다.
약 800명에 이르는 풍계리 인근 8개 시·군 출신 북한이탈주민 가운데 지금까지 염색체 검사를 받은 사람은 214명에 불과하다. 올해 신규 검사 목표도 50명에 그치고 있다. 이런 속도라면 전수검사에만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그동안 피폭 가능성이 있는 주민들은 제대로 된 설명과 보호도 받지 못한 채 불안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이것은 행정의 신중함이 아니라 사실상 직무유기다.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정부와 관계기관이 풍계리 일대의 환경 시료 확보를 사실상 불가능한 일처럼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핵실험장 내부에 직접 들어가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조사를 포기할 수는 없다. 풍계리 인근에서 탈북한 주민들의 의복·생활용품·토양 반출물, 식수원과 하천의 흐름에 관한 정보, 주변 지역의 농축산물과 생물학적 시료, 위성자료와 지질·수문 분석 등 활용 가능한 방법은 적지 않다.
북한과 인접한 지역의 대기·강수·토양·하천 퇴적물 등을 지속적으로 채취해 방사성 핵종의 이동 가능성을 추적하는 일도 결코 불가능하지 않다. 국제기구 및 해외 연구기관과 협력해 시료를 수집하고 교차 검증하는 방안도 적극 추진할 수 있다. 풍계리 출신 탈북민들의 증언을 체계적으로 축적하고, 거주지·식수원·질병 이력·핵실험 시기별 노출 가능성을 정밀하게 지도화하는 작업 역시 당장 시작할 수 있다.
그런데 정부는 왜 가능한 조사 방법을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기보다 “환경정보 확보가 어렵다”는 말부터 되풀이하는가. 진실을 밝히려는 의지가 있다면 방법을 찾아야 한다. 반대로 방법이 없다는 말만 반복한다면, 진실이 드러나는 것을 꺼리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자초할 수밖에 없다.
특히 최근 3∼6개월 사이의 방사선 노출 가능성을 보여주는 불안정형 염색체 이상이 일부 검사자에게서 나타났다는 사실도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국내 입국 이후의 의료 방사선이나 다른 환경 요인에 의한 것인지, 기존 손상의 연장선인지, 별도의 노출원이 존재하는지 즉각적인 추적조사가 필요하다. 암 발병자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안심할 수도 없다. 방사선 피폭의 건강 영향은 오랜 잠복기를 거쳐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풍계리 핵실험은 단순한 군사 행위가 아니다. 핵실험장 주변 주민들에게는 생명과 건강을 위협하는 국가적 범죄가 될 수 있다. 북한 정권은 주민들에게 핵실험의 위험을 알리지 않았고, 대피나 보호조치를 제대로 시행했다는 증거도 없다. 오염 가능성이 있는 지하수와 식수, 토양과 농산물에 대한 정보도 철저히 차단해 왔다. 주민을 핵무기 개발의 소모품으로 취급한 것이다.
그러나 책임은 김정은 정권에만 있지 않다. 북한의 핵개발을 알면서도 이를 축소하거나 묵인한 세력, 제재 완화와 경제적 지원을 주장하며 핵개발에 필요한 시간과 자원을 벌어준 세력, 북한 정권의 책임보다 대한민국과 국제사회의 대응을 비난하는 데 앞장섰던 세력도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북한 핵무기를 “협상용”이라고 두둔하고, 북한 비핵화 의지를 근거 없이 신뢰하라고 강요했으며, 대북 지원 물자와 자금이 어디에 사용되는지 제대로 검증하려 하지 않았던 정책 결정자와 정치세력은 이제 답해야 한다. 그들이 외면하거나 미화했던 핵개발의 대가를 힘없는 북한 주민들이 염색체 손상과 질병의 공포로 치르고 있는 것은 아닌가.
결론적으로 북한 핵개발을 묵인·방조·지원한 세력은 정치적 책임을 넘어 역사적·도덕적 책임까지 져야 한다. 선의였다는 변명이나 평화를 위한 선택이었다는 미사여구로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핵개발에 제공된 시간과 자원, 잘못된 정책 판단이 북한 주민의 생명과 건강을 파괴하는 데 기여했다면 그 책임은 반드시 기록되고 규명돼야 한다.
<論 說 委 員 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