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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A 가톨릭 418] 고전 v. 고전

2026-08-02 07:12 | 입력 : 리베르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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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J. 레이하트 Peter J. Leithart is president of the Theopolis Institute, Birmingham, Alabama. He posts regularly at his Substack, Notes from Beth-Elim. 테오폴리스 연구소 소장


크리스토퍼 놀런의 《오디세이》를 둘러싼 격렬한 논쟁은 뜻밖의 사실 하나를 드러냈다. 많은 사람이 호메로스(고대 그리스 시인)를 진지하게, 그것도 대단히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고전 전통으로 자리 잡은 이 서사시의 세부를 조금이라도 변경하는 순간, 우리 문명 전체가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듯하다.

내가 보기에 어떤 이들에게 이러한 진지함은 최근에야 생겨난 태도이며,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일종의 포즈에 가깝다. 적어도 그들은 자신들이 옹호한다고 주장하는 고전 전통보다 호메로스를 훨씬 더 진지하게 대한다. 호메로스를 수정하고 재해석하는 관행을 할리우드가 처음 만들어 낸 것은 아니다. 베르길리우스는 호메로스의 두 서사시 순서를 뒤집고, 《일리아스》의 무대를 라티움으로 옮겼다.

단테의 율리시스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우스가 아니다. 무엇보다도 그는 그리스도교의 지옥에 있다. 그렇다면 테니슨이 그린 빅토리아 시대의 모험가 율리시스나, 호메로스의 에크프라시스를 20세기적으로 다시 쓴 오든의 「아킬레우스의 방패」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조이스의 더블린판 오디세이는 말할 것도 없다.

가장 심한 위반자는 셰익스피어다. 그가 호메로스의 세계에 유일하게 뛰어든 작품인 《트로일러스와 크레시다》는 중세에 널리 유행했던 트로이 이야기를 익살스럽게 뒤튼 작품이다. 트로일러스와 크레시다는 그리스군에 포위된 트로이에서 살아가는 비운의 연인이다.

크레시다의 숙부 판다루스의 계략으로 두 사람은 하룻밤을 함께 보낸다. 그러나 셰익스피어의 작품이니만큼, 그들의 사랑이 순탄하게 흘러갈 리 없다. 그리스 진영으로 전향한 트로이의 사제이자 크레시다의 아버지인 칼카스는 포로 교환을 주선해 딸을 자신의 곁으로 데려온다. 트로일러스는 몰래 그리스 진영에 잠입하지만, 크레시다가 디오메데스에게 몸과 사랑의 서약을 내어주는 장면을 목격하고 만다.

그동안에도 트로이 전쟁은 비틀거리며 계속된다. 헥토르는 파트로클로스를 죽인다. 율리시스는 슬픔에 빠진 아킬레우스를 다시 전장으로 끌어내기 위해 아이아스와 헥토르의 일대일 결투를 마련한다. 그러나 헥토르와 아이아스가 서로 친족임을 알게 되면서 결투는 승부 없이 끝난다. 아킬레우스의 위협과 카산드라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헥토르는 다시 전투에 나갔다가 죽임을 당한다. 《일리아스》와 마찬가지로 이 희곡도 트로이인들이 쓰러진 영웅을 애도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셰익스피어는 작품 전체에 걸쳐 호메로스의 영웅 세계에서 바람을 빼 버린다. 서막은 영웅적 행동을 예고하지만, 극은 전쟁이 어째서 교착 상태에 빠졌는지를 두고 끝없이 말하고, 말하고, 또 말할 뿐이다. 헥토르와의 마지막 싸움에서 아킬레우스는 뒤로 물러앉아, 무장을 하지 않은 트로이의 영웅을 자기 부하들이 집단으로 공격하고 난도질하게 한다.

헬레네는 파리스와 함께 오로지 성적인 욕망만 생각하는 어리석고 경박한 여인이다. 크레시다는 너무나 빠르게 디오메데스를 받아들여 트로일러스를 광분하게 만든다. 극의 마지막에서 판다루스는 관객들을 “배신자들과 뚜쟁이들”이라고 부르며, 그들에게 “내 질병들”을 유산으로 남기겠다고 약속한다.

셰익스피어는 성 아우구스티노적 관점에서 호메로스적 명예의 실체가 교만임을 폭로한다. 헥토르는 파리스가 헬레네를 납치한 일이 잘못임을 알고 있고, 전쟁을 계속하는 것이 무익하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그런데도 그는 헬레네를 계속 붙잡아 두고 싸움을 이어가겠다고 맹세한다.

“나는 여러분에게 뜻을 밝히겠소. 헬레네를 계속 붙잡아 두기로 결심했소. 이는 우리 공동의, 그리고 각자의 존엄과 결코 가볍지 않게 결부된 일이기 때문이오.”

양측의 영웅들은 모두 자살을 향해 돌진하는 듯하다. 그들은 폭력과 복수를 가리기 위해 “명예”를 이용하고, 욕정과 매춘을 감추기 위해 “사랑”을 이용한다. 인류는 “식욕, 곧 만인을 집어삼키는 늑대”의 지배를 받으며 서로를 잡아먹는 존재로 변한다.

아이아스의 노예 테르시테스는 이러한 영웅주의 해체의 중심에 서 있다. 그가 보기에 그리스의 영웅주의란 “누더기 기워 붙이기요, 속임수요, 악행”일 뿐이다. 그는 트로이 전쟁을 추잡한 부부싸움으로 여긴다.

“모든 논쟁의 전부는 창녀 하나와 오쟁이 진 남편 하나뿐이다.”

삐치고 허세를 부리는 아킬레우스는 “바보 숭배자들이 받드는 우상”이다. 테르시테스가 곧 작가의 목소리는 아니지만, 셰익스피어가 자신의 원전에 압도되지 않았음은 분명하다. 그는 고대 세계의 위대한 서사시도 한쪽 각도에서 보면 천박한 “전쟁과 음란”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볼 만큼 충분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셰익스피어의 관심사는 르네상스 시대의 관심사, 곧 변화와 질서다. 시간은 명예와 사랑을 모두 녹여 버린다. 위대한 업적은 잊히고, 뜨거운 열정은 식는다. 시간과 변화는 인간의 영혼을 분열시킨다. 트로일러스는 “더 이상 자기 자신이 아니며”, 크레시다는 “트로일러스의 크레시다”와 “디오메데스의 크레시다”로 갈라진다.

“뭐라고, 내 업적이 잊혔단 말인가?”라는 아킬레우스의 분노 어린 질문에 율리시스는, 시간은 선한 행위가 이루어지는 즉시 그것을 집어삼킨다고 대답한다. 위계와 질서와 등급은 혼돈과 자멸로 향하는 인류의 성향을 막아 주는 요새다. 그러나 질서 역시 위태롭다. 위계가 가면을 쓰고 모습을 감추면, 사랑과 명예와 절개, 심지어 정체성마저 함께 죽는다. 질서라는 악기의 현을 풀어 버리면, 그 뒤에 어떤 불협화음이 뒤따르는지 보라.

크리스토퍼 놀런보다 훨씬 오래전에, “워크”한 윌 셰익스피어는 서구 문명의 건국 신화 가운데 하나를 해체했다. 그러나 바로 그것이 “고전들”이 하는 일이다. 고전은 앞선 고전을 약탈하고, 다시 쓰고, 전복하고, 비튼다. 세르반테스는 중세 기사도 문학을 무너뜨렸고, 헨리 필딩은 고상한 새뮤얼 리처드슨을 패러디했다. 오스틴은 자신이 즐겨 읽던 고딕 로맨스를 부드럽게 조롱했고, 마크 트웨인은 미국 남북전쟁의 책임을 월터 스콧에게 돌렸다.

해럴드 블룸은 적어도 한 가지는 정확히 보았다. 서구 전통의 위대한 작가들은 결점 없는 선배들에게 엄숙한 경의를 바치는 사람들이 아니다. 서구 문학은 오히려 호메로스의 영향력이라는 유령을 몰아내기 위해 벌인 투쟁을 기록한 문서에 가깝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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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명 |2024.11.14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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