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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중공 정보전에 공개 반격

2026-06-08 20:23 | 입력 : 장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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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코서 중국 관영매체 기자 기소.. 새 국가보안법 첫 사례
- 대만 우호 정치권 겨냥한 정보수집 의혹.. 프랑스·그리스도 잇단 적발

독자 제공
독자 제공

유럽이 중국 공산당의 정보전과 영향력 공작에 대해 더 이상 조용한 대응에 머물지 않고 있다.

체코에서 중국 관영매체 기자가 외국 세력을 위한 무허가 활동 혐의로 기소된 데 이어, 프랑스와 그리스에서도 중국 연계 의심 간첩 사건이 공개되면서 유럽 각국의 대중 안보 인식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 사건의 핵심은 단순한 개인 간첩 혐의가 아니다. 기자, 유학생, 학자, 민간단체 관계자, 지역사회 인사 등 비전통적 신분을 활용해 정보를 수집하고 여론을 조작하며 민주국가 내부에 영향력을 확대해 온 중국 공산당식 ‘회색지대 정보전’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는 데 있다.

체코 법정에 선 중국 관영매체 기자

체코 검찰은 중국 관영매체 《광명일보》 프라하 주재 기자 양이밍을 “외국 세력을 위한 무허가 활동” 혐의로 기소했다. 이 혐의는 체코의 새 국가보안법 시행 이후 적용된 첫 사례로 알려졌다.

체코 당국은 양이밍이 단순한 언론 활동을 넘어 중국 정보기관과 연계된 정보수집 활동을 벌였다고 보고 있다. 특히 체코 내 친대만 정치인과 학계 인사들의 동향, 정치적 입장, 취약점 등을 파악하려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주요 대상에는 체코 상원의장 마일로시 비스트르칠과 전 하원의장 마르케타 페카로바 아다모바 등 대만에 우호적인 정치인들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두 사람은 유럽 내에서 대만과의 의회 외교를 적극적으로 추진해 온 대표적 인물들이다.

이 사건이 주목되는 이유는 체코가 최근 수년간 유럽에서 대만과 가장 적극적으로 교류해 온 국가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대만은 공식 외교 관계가 제한된 상황에서도 의회 외교를 통해 유럽 민주국가들과 관계를 넓혀 왔다. 중국 공산당 입장에서는 체코의 움직임이 다른 유럽 국가들로 확산되는 것을 차단할 필요가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언론’과 ‘정보활동’의 경계 흐린 중공식 침투

중국 공산당은 오래전부터 관영매체를 대외 선전과 정보수집의 도구로 활용해 왔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해외 특파원이라는 직함은 현지 정치권, 학계, 언론계, 시민사회에 접근하기 쉬운 신분이다.

공식 인터뷰와 취재를 명분으로 민감한 인물과 정보를 접촉할 수 있고, 수집된 정보는 중국의 외교·선전·압박 전략에 활용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활동이 전통적 의미의 간첩 행위와 단순 취재 활동 사이의 회색지대에서 이뤄진다는 점이다. 기밀문서 탈취나 군사기밀 전달처럼 명백한 간첩죄로 입증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그러나 특정 국가의 정치인, 외교노선, 대만 관련 입장, 중국 비판 인사의 동향을 체계적으로 수집한다면 이는 민주국가의 주권과 정치과정에 대한 외국 권력의 개입으로 볼 수밖에 없다.

체코가 새 법률을 통해 이를 처벌 대상으로 삼은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전통적 간첩죄의 높은 입증 문턱만으로는 현대 정보전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반영된 것이다.

프랑스·그리스서도 군사정보 관련 사건 잇따라

체코 사건은 고립된 사례가 아니다. 최근 유럽 각국에서는 중국 연계 의심 간첩 사건이 잇따라 공개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중국을 위해 스파이 활동을 한 혐의로 여러 명이 체포됐다. 이들은 위성통신 장비와 관련 기술을 이용해 프랑스 정부 및 군 관련 민감 정보를 수집하려 한 혐의를 받고 있다.

프랑스 당국이 군사·위성·통신 분야를 겨냥한 정보수집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는 점에서 사건의 파장은 작지 않다.

그리스에서도 군사정보 유출 의혹이 제기됐다. 현지 보도에 따르면 군 관계자가 제3자에게 기밀 정보를 넘긴 혐의로 체포됐고, 중국과의 연계 가능성이 거론됐다. 앞서 그리스 군사시설 인근에서 중국인들이 전투기와 항공우주 시설을 촬영한 사건도 있었다.

이처럼 중국 공산당의 정보활동은 정치권과 언론계를 넘어 군사시설, 위성통신, 항공우주, 방위산업 등 전략 분야로 확산되고 있다.

유럽의 변화, ‘조용한 처리’에서 ‘공개 경고’로

과거 유럽은 중국과의 경제 관계를 의식해 중국 관련 간첩 사건을 조용히 처리하는 경우가 많았다. 무역, 투자, 시장 접근, 외교 마찰을 우려해 공개적 충돌을 피하려는 기류가 강했다.

그러나 최근 흐름은 달라졌다. 중국 공산당의 침투와 정보활동이 정치권, 학계, 언론, 군사기술, 민간단체에까지 확산되면서 더 이상 이를 개별 사건으로 덮을 수 없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

체코가 관영매체 기자 사건을 공개적으로 사법 절차에 올린 것은 상징적이다. 이는 중국 공산당의 정보활동을 단순한 외교 문제나 언론 문제로 보지 않고, 국가안보와 민주주의 방어의 문제로 다루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통일전선 조직과 비전통 정보망

중국 공산당의 해외 침투는 전문 정보요원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통일전선 조직, 동향회, 문화단체, 유학생 조직, 기업 네트워크, 학술 교류, 언론 협력 등 다양한 형태가 동원된다.

이들 조직과 인물은 현지 사회에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다. 공개적으로는 문화교류, 친선, 경제협력, 학술활동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중국 공산당의 입장을 확산시키고 비판 인사를 압박하며 민감한 정보를 수집하는 역할을 맡을 수 있다.

이 방식은 전통적 간첩보다 더 은밀하고, 더 넓고, 더 오래 지속된다. 정보기관이 직접 움직이는 경우보다 추적이 어렵고, 합법 활동과 불법 공작의 경계도 모호하다. 바로 이 점이 민주국가의 방첩 체계에 큰 부담을 주고 있다.

서방 정보동맹도 공동 경고

유럽뿐 아니라 미국, 호주, 캐나다, 영국 등도 중국 공산당의 침투 활동에 대한 경고 수위를 높이고 있다. 파이브아이즈 정보동맹은 중국 정보기관이 온라인 구인 플랫폼과 전문직 네트워크를 이용해 정부·군·외교·언론·싱크탱크 관계자를 겨냥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중국 정보기관은 직접적인 스파이 접촉 대신 연구용역, 자문, 보고서 작성, 취업 제안, 컨설팅 명목으로 접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처음에는 평범한 정보 제공을 요구하다가 점차 민감한 자료를 요구하고, 금전적 보상을 통해 협조 관계를 강화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수법은 민주사회 내부의 개방성을 악용한다. 자유로운 학술 교류, 언론 활동, 시민사회 네트워크, 온라인 전문직 플랫폼이 외국 권위주의 정권의 정보수집 통로로 변질될 수 있는 것이다.

한국도 예외일 수 없다

이번 유럽 사례는 한국에도 중요한 경고를 던진다. 한국은 중국과 지리적으로 가깝고, 북한 문제와 대만해협 문제, 한미동맹, 반도체·배터리·조선·방산 등 전략산업이 얽혀 있는 핵심 국가다. 중국 공산당 입장에서 한국은 정보전과 영향력 공작의 중요한 대상일 수밖에 없다.

특히 한국 사회는 언론, 학계, 지방자치단체, 경제단체, 문화교류, 유학생 네트워크 등 대외 접촉면이 넓다. 이 공간이 투명성과 책임성 없이 운영될 경우 외국 권력의 영향력 공작이 침투할 여지가 커진다.

중국을 포함한 어떤 국가와도 정상적인 외교·경제·문화 교류는 필요하다. 그러나 교류와 침투는 구분되어야 한다. 우호와 종속도 구분되어야 한다. 민주국가는 개방성을 지켜야 하지만, 그 개방성이 권위주의 세력의 공작 통로가 되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 방어는 ‘음모론’이 아니라 제도 문제

중국 공산당의 정보전 문제를 제기하면 일부에서는 이를 과도한 의심이나 반중 정서로 치부하려 한다. 그러나 유럽 각국의 최근 조치는 이 문제가 더 이상 추상적 우려가 아님을 보여준다. 실제 사건이 발생했고, 실제 기소가 이뤄졌으며, 실제 군사정보와 정치권 정보가 표적이 됐다.

민주주의를 지키는 일은 외국인을 배척하는 일이 아니다. 특정 민족이나 국민 전체를 의심하는 일도 아니다. 문제는 중국 국민이 아니라 중국 공산당의 국가적 정보전 체계다. 자유사회는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보호해야 하지만, 동시에 외국 권력의 조직적 침투와 영향력 조작에는 단호해야 한다.

유럽의 반격은 이제 시작이다. 체코의 양이밍 사건은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사건을 통해 유럽 민주국가들이 마침내 중국 공산당의 회색지대 정보전을 공개적으로 문제 삼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한국도 이 흐름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국가보안, 방첩, 외국대리인 투명성, 통일전선 조직 감시, 전략산업 보호, 학술·언론 교류의 투명성 강화가 시급하다. 자유민주주의는 선의만으로 지켜지지 않는다. 개방사회일수록 더 정교한 방어 장치가 필요하다.

중국 공산당의 정보전은 조용히 들어오지만, 그 결과는 결코 조용하지 않다. 유럽의 공개 반격은 한국에 보내는 경고이기도 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막연한 공포가 아니라 냉정한 현실 인식과 제도적 대응이다.

장·춘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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