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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자 제공 |
한때 아시아 언론 자유의 상징으로 불렸던 홍콩에서 또 한 명의 독립언론 인사가 감옥으로 향했다. 홍콩기자협회 전 회장 론슨 챈이 경찰관 업무방해 혐의에 대한 항소심에서 패소하고 5일간의 징역형 집행에 들어갔다.
사건의 형량만 놓고 보면 5일은 짧아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번 판결이 던지는 정치적·사회적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문제의 본질은 한 기자가 신분증 제시 과정에서 경찰과 마찰을 빚었다는 단순한 절차적 사건이 아니다.
홍콩에서 취재 현장의 질문, 경찰 신원 확인 요구, 기자의 기본적인 방어권마저 ‘공권력 방해’로 처벌될 수 있다는 위험한 신호가 확인됐다는 점이다.
취재 현장에서 시작된 사건
론슨 챈은 2022년 9월 홍콩 몽콕 지역에서 주민 관련 행사를 취재하러 가던 중 경찰의 제지를 받았다. 당시 그는 사복경찰의 신원을 확인하려 했고, 곧바로 신분증을 제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체포됐다. 이후 법원은 그가 경찰관의 직무 수행을 방해했다며 유죄를 인정했고, 2023년 5일 징역형을 선고했다.
챈은 이에 불복해 항소했지만, 홍콩 고등법원은 5월 29일 항소를 기각했다. 그는 법원 밖에서 ‘언론의 자유’라는 문구가 적힌 검은색 옷을 입고 등장했다. 항소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수감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는 홍콩의 기본법이 약속한 언론 자유를 끝까지 언급했다.
그 장면은 오늘의 홍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과거 홍콩의 기자들은 권력을 감시하고, 경찰과 행정권력을 질문하며, 시민의 알 권리를 대변했다. 그러나 이제 기자가 경찰에게 신원을 묻는 행위조차 처벌의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업무방해’라는 이름의 언론 통제
홍콩 당국은 이번 사건을 법 집행의 문제라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국제 언론단체들의 시각은 다르다. 이들은 이번 판결이 독립언론을 위축시키는 또 하나의 사례라고 보고 있다.
특히 취재 현장에서 기자가 공권력의 신원과 근거를 확인하는 것은 민주사회에서 매우 기본적인 행위다. 기자는 단순한 구경꾼이 아니라 공공의 감시자다. 경찰이 현장에서 어떤 권한으로 시민과 언론을 제지하는지 묻는 것은 취재의 일부이며, 시민의 알 권리를 위한 최소한의 절차다.
그럼에도 홍콩 법원이 이를 유죄로 판단했다면, 앞으로 현장의 기자들은 경찰의 요구 앞에서 사실상 침묵을 강요받게 된다. 질문하면 방해가 되고, 확인하면 불응이 되며, 항의하면 처벌이 되는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권위주의 체제에서 흔히 나타나는 법의 무기화다. 법은 시민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권력을 감시하는 이들을 침묵시키는 수단으로 변질된다.
국가보안법 이후 급속히 좁아진 홍콩의 언론 공간
이번 사건은 홍콩 언론 자유 붕괴의 긴 흐름 속에서 봐야 한다. 2019년 대규모 민주화 시위 이후 홍콩에서는 베이징의 통제가 급격히 강화됐다. 2020년 국가보안법 시행 이후 독립언론과 민주파 인사들에 대한 압박은 더욱 노골화됐다.
대표적인 사례가 《빈과일보》 창립자 지미 라이 사건이다. 홍콩 민주화와 언론 자유를 상징했던 그는 국가안보 관련 혐의로 중형을 선고받았다. 《빈과일보》는 폐간됐고, 《스탠드뉴스》 등 독립언론도 압박 속에 문을 닫았다. 언론사의 폐쇄, 기자 체포, 편집자 기소, 자기검열의 확산은 이제 홍콩 언론계의 일상이 됐다.
론슨 챈 역시 과거 《스탠드뉴스》에서 활동했던 언론인이다. 그가 홍콩기자협회 회장을 지냈다는 점에서 이번 수감은 단지 개인 사건이 아니라 홍콩 독립언론 전체에 보내는 경고로 읽힌다. 권력은 한 사람을 처벌하지만, 그 효과는 현장 기자 전체에게 미친다.
국제사회 “위험한 선례” 경고
국경없는기자회는 이번 수감에 강한 분노를 표명했다. 이 단체는 홍콩 당국이 독립언론을 억압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국제기자연맹 역시 론슨 챈과 연대한다며 그에 대한 혐의를 즉각적이고 무조건적으로 취소할 것을 촉구했다.
국제 언론단체들이 우려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이번 판결은 경찰 현장 취재의 기준을 크게 후퇴시킬 수 있다. 앞으로 홍콩의 기자들은 경찰이 어떤 신분으로, 어떤 법적 근거로 취재를 제지하는지 묻는 것조차 조심해야 한다. 이는 언론의 자유뿐 아니라 시민의 알 권리에 대한 직접적인 침해다.
언론 자유는 기자만의 권리가 아니다. 언론 자유가 무너지면 시민은 권력의 행위를 제대로 알 수 없고, 공권력의 남용을 감시할 통로도 잃게 된다. 언론이 침묵하면 시민도 어둠 속에 놓인다.
홍콩의 오늘은 자유세계에 대한 경고다
홍콩의 변화는 단기간에 일어난 일이 아니다. 처음에는 질서 회복이라는 명분이 등장했고, 이어 국가안보가 강조됐으며, 그 다음에는 법 집행이라는 이름으로 반대 목소리와 독립언론이 하나씩 사라졌다. 그리고 이제는 취재 현장의 기자가 경찰에게 질문한 행위마저 처벌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 과정은 자유사회가 반드시 경계해야 할 권위주의의 전형적인 방식이다. 언론을 직접 폐쇄하는 것만이 탄압은 아니다. 취재를 어렵게 만들고, 소송 위험을 높이고, 기자 개인에게 형사처벌의 부담을 지우는 것만으로도 언론은 충분히 위축된다.
홍콩의 언론 자유는 더 이상 과거의 홍콩이 아니다. 중국 공산당의 통제 아래 홍콩은 ‘일국양제’의 약속에서 멀어지고 있으며, 자유로운 정보 공간은 빠르게 축소되고 있다.
론슨 챈의 5일 수감은 짧은 형량일 수 있다. 그러나 그 5일은 홍콩 언론 자유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긴 그림자다. 기자가 질문했다는 이유로 감옥에 가는 사회라면, 그곳의 시민도 더 이상 자유롭게 질문할 수 없다.
홍콩의 문제는 홍콩만의 문제가 아니다. 자유민주주의 세계는 이 사건을 권위주의가 언론을 어떻게 길들이는지 보여주는 경고로 받아들여야 한다. 언론의 자유가 무너지면 민주주의의 감시 장치가 무너지고, 감시 장치가 무너지면 권력은 더 이상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장·춘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