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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캡쳐 |
북한 매체가 “정치사상적 위력은 조선특유의 힘”이라며 수령과 당, 대중의 일체화를 체제 성과의 근본 바탕으로 선전하고 나섰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정치사상적 위력’은 자유로운 시민의 자발적 결속이 아니라, 수령 독재와 당의 지시에 대한 무조건 복종을 강요하는 전체주의적 통치 논리에 지나지 않는다.
북한은 최근 선전문에서 사회주의 건설이 “새로운 높은 단계”에 들어섰으며, “비약적 발전상과 변혁상”이 다련발적으로 도출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이러한 성과가 “조선특유의 절대력”인 정치사상적 위력에 근본 바탕을 두고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북한 주민의 현실은 이와 정반대다. 식량난과 경제난, 이동의 자유 제한, 정보 통제, 강제 동원, 사상 검열이 일상화된 사회에서 ‘정치사상적 위력’이라는 말은 주민의 고통을 가리는 체제 선전 구호일 뿐이다.
“수령·당·대중의 일체화”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전체주의의 핵심
북한 선전의 핵심은 “수령, 당, 대중이 하나로 굳게 뭉쳤다”는 주장이다. 얼핏 보면 국민적 단결을 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실체는 다르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 통합은 다양한 의견과 비판, 선거와 법치, 시민의 자유를 전제로 한다. 반면 북한이 말하는 단결은 수령과 당의 노선에 한 치의 이견도 허용하지 않는 사상적 예속이다.
북한은 “전체 인민이 당과 국가의 결정과 지시를 무조건적으로 지지한다”고 주장한다. 이 대목이야말로 북한 체제의 본질을 드러낸다. 정상적인 국가라면 국민은 국가 정책을 지지할 수도 있고 반대할 수도 있다. 정부의 결정은 국민의 감시와 비판을 받아야 하며, 잘못된 정책은 선거와 여론을 통해 교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북한에서 ‘무조건적 지지’는 미덕으로 포장된다. 반대는 배신이 되고, 침묵은 충성이 되며, 고통은 혁명정신으로 미화된다. 이것은 정치적 힘이 아니라 정치적 폭력이다.
“국가의 무거운 짐을 함께 걸머진다”는 말의 실제 의미
북한 매체는 주민들이 “국가의 무거운 짐을 열 가지든 백 가지든 함께 걸머진다”고 선전했다. 그러나 이 표현은 주민 희생을 당연시하는 체제의 사고방식을 그대로 보여준다.
북한에서 국가의 짐은 곧 정권의 짐이다. 핵·미사일 개발, 군사 우선 노선, 수령 우상화 사업, 대규모 건설 동원, 각종 충성 과제의 부담은 결국 주민에게 전가된다. 정권은 실패의 책임을 지지 않는다. 대신 주민에게 더 많은 충성, 더 많은 인내, 더 많은 희생을 요구한다.
주민의 삶이 어려워지는 이유가 체제의 잘못된 정책 때문임에도, 북한은 이를 “시련과 난관”이라는 추상적 표현으로 돌린다. 외부의 압박과 제재만을 탓하면서도, 정작 주민의 생활을 개선할 자유화·개방·개혁은 거부한다. 결국 “국가의 짐을 함께 걸머진다”는 말은 주민에게 정권의 실패 비용을 떠넘기겠다는 선언과 다르지 않다.
정치사상적 위력이 아니라 공포와 감시의 체제
북한이 자랑하는 정치사상적 결속은 자유로운 선택의 결과가 아니다. 북한 주민은 수령과 당을 공개적으로 비판할 수 없다. 다른 정치 세력을 만들 수 없고, 자유로운 언론을 가질 수 없으며, 외부 정보를 자유롭게 접할 수도 없다. 정치적 선택권이 봉쇄된 사회에서 “온 인민이 하나로 뭉쳤다”고 주장하는 것은 기만이다.
진정한 단결은 선택의 자유가 있을 때 의미가 있다. 반대할 자유가 없는 지지는 충성이 아니라 강요다. 비판할 자유가 없는 박수는 찬양이 아니라 생존 방식이다. 북한이 말하는 정치사상적 위력은 결국 주민의 내면까지 통제하려는 사상 독재의 다른 이름이다.
더구나 북한은 이러한 사상 통제를 세대와 세대를 이어 강화해왔다. 어린 학생들에게까지 충성의 편지, 충성의 노래, 충성의 행사를 강요하며 수령 숭배를 생활화한다. 주민 개개인의 존엄과 양심은 사라지고, 오직 수령과 당을 위한 인간형만이 강요된다.
“존엄”을 말하지만 정작 주민의 존엄은 없다
북한은 국가의 “존엄과 위상”이 높아졌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한 국가의 진정한 존엄은 핵무기나 열병식, 선전 구호에서 나오지 않는다. 국민이 굶주리지 않고, 자유롭게 말하고, 이동하고, 일하고, 신앙을 갖고,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을 때 국가의 존엄도 세워진다.
북한 정권은 국가의 존엄을 말하면서도 주민의 존엄은 외면한다. 수령의 권위는 절대화하면서 주민의 기본권은 억압한다. 국익을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김씨 세습정권의 이익을 국익으로 포장한다. 그 결과 북한 주민은 국가의 주인이 아니라 체제 유지의 도구로 취급되고 있다.
북한 선전문은 “국익을 고수하기 위함이라면 목숨도 서슴없이 바쳐 싸운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주민에게 필요한 것은 목숨을 바치라는 구호가 아니라 생명을 보호받을 권리다. 정권을 위해 희생하라는 명령이 아니라,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자유와 권리다.
북한 체제의 강점이 아니라 약점의 고백
북한이 “정치사상적 위력”을 거듭 강조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체제의 불안을 보여준다. 경제적 성과가 충분하고 주민 생활이 안정되어 있다면, 정권은 끊임없이 사상 무장을 강조할 필요가 없다. 국민의 신뢰를 받는 정부라면 무조건적 지지를 요구하지 않는다. 자유로운 사회라면 충성을 증명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북한이 정치사상적 결속을 외칠수록 드러나는 것은 체제의 자신감이 아니라 두려움이다. 외부 정보 유입을 두려워하고, 주민의 자율적 판단을 두려워하며, 자유로운 비교를 두려워하는 체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북한은 주민에게 생각하지 말고 따르라고 요구한다. 의심하지 말고 믿으라고 강요한다. 질문하지 말고 충성하라고 명령한다.
이것은 강한 국가의 모습이 아니다. 오히려 자유로운 국민의 판단을 견딜 수 없는 취약한 독재체제의 모습이다.
북한 주민에게 필요한 것은 사상동원이 아니라 자유다
북한이 말하는 정치사상적 위력은 주민의 힘이 아니다. 그것은 주민을 수령과 당에 묶어두기 위한 통제의 언어다. 북한 정권은 이를 “조선특유의 힘”이라고 포장하지만, 실상은 세계 어느 전체주의 체제에서도 반복되어온 낡은 독재의 수법이다.
진정한 국가 발전은 주민의 자유와 창의, 법치와 책임, 개방과 투명성 위에서 가능하다. 무조건적 복종으로는 일시적 동원은 가능할지 몰라도, 지속 가능한 번영은 만들 수 없다. 강제된 충성은 국가를 강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병들게 한다.
북한 주민에게 필요한 것은 더 강한 사상교육이 아니다. 더 많은 충성 맹세도 아니다. 필요한 것은 수령과 당이 아닌 인간의 존엄을 중심에 놓는 자유로운 삶이다.
북한 정권이 아무리 “정치사상적 위력”을 외쳐도, 그 구호는 주민의 고통을 덮을 수 없으며, 자유를 향한 인간의 본능을 영원히 가둘 수도 없다.
김·도·윤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