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교황청 신앙교리성은 “교회의 삶과 지도력에서 여성의 참여”에 관한 시노드 연구 그룹의 최종 보고서를 발표하였다. 교회의 먼 과거에서 여성들이 수행해 온 다양한 역할을 연구해 온 역사학자로서, 나는 이 문서가 오늘을 위한 지혜의 원천으로서 가톨릭의 과거와 어떻게 대화할지를 기대하고 있었다. 이는 목차에서도 풍부하게 다루어질 것처럼 보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 보고서가 기본적인 역사적 토대를 결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을 때 나는 더욱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문서의 주요 부분인 “시노드 심화 과정에서 드러난 주제들에 대한 상세 종합”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한다. “여성의 공적 삶으로의 진입은—20세기 동안 발전하고 공고화되었으며 서구 국가들에만 국한되지 않았던—시민 사회와 교회 모두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현상이다.”
이와 같은 문서를 작성한 교회 성직자들과 평신도들이 충분히 교육받은 이들이라면, 20세기 이전에도 수많은 여성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어느 정도의 시대착오를 감수하더라도) “공적 삶”이라 부를 수 있는 영역에서 활동해 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비록 그들이—그리고 사실 대부분의 남성들 또한 오랜 기간 동안—민주적으로 선출되는 공직에 출마하거나 투표하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그러나 어쩌면 그들은 이 사실을 알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문서의 두 번째 부록인 “교회사에서 중요한 여성들”은 기껏해야 희미한 인식만을 보여준다. 이 부록은 성스러운 신비가들, 수도회 창립 여성들, 사회적 자선 활동에 참여한 여성들을 다수 포함하고 있지만, 가톨릭의 깊은 역사 속에서 “공적”—혹은 “정치적”—인물이라 할 수 있는 여성은 단 두 명만을 포함한다.
즉, 스무 살도 되기 전에 가톨릭 당국에 의해 화형을 당한 성녀 잔 다르크와, 대제 콘스탄티누스의 어머니로서 황후의 지위와 일정한 제국 재정 권한을 부여받은 성녀 헬레나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이 긴 부록에는 가톨릭의 풍부하고 장구한 역사 속에서 실질적인 정치적·교회적 권력을 행사했던 여성은 단 한 명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그러한 인물들은 역사 속에 풍부하게 존재한다.
다음은, 성직자의 직무(전적으로 남성적 성격을 나는 온전히 받아들이고 존중한다)와 관련하여 여성의 지도력에 대해 논의할 때 충분히 참고될 만함에도 불구하고, 이 보고서에서 제외된 교회사 속 여성들에 대한 나의 예비적 목록이다.
* 아테네의 여제 이레네 - 평신도 타라시오스를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로 선출하고 그와 함께 제2차 니케아 공의회를 소집함
* 이탈리아의 성녀 아델라이데 - 교황의 도유를 받은 최초의 신성로마제국 황후이자 클뤼니 수도개혁의 주요 후원자
* 노르망디의 성녀 아델라 - 블루아의 섭정이자 잉글랜드 왕 스티븐의 어머니로서 수도원 후원과 교회 개혁 및 평신도, 성직자 협력을 촉진
* 예루살렘의 멜리상드 여왕 - 십자군 왕국 최초의 여성 통치자들 가운데 한 명으로 제2차 십자군을 촉진
* 카노사의 마틸다 - 토스카나 변경백으로서 교황 그레고리오 7세를 위해 신성로마제국 황제 하인리히 4세를 굴복시킴
* 카스티야의 블랑슈 - 아들 성 루이 9세가 십자군에 참여하는 동안 프랑스의 섭정 여왕
* 폴란드의 성녀 야드비가 - 중세 폴란드의 군주로 때때로 “왕”이라 불림
* 덴마크·노르웨이·스웨덴의 마르그레테 1세 - 스웨덴의 성녀 브리짓의 시성에 관여
* 칠리의 바르바라 황후 - 콘스탄츠 공의회의 개회에 참석하고 남편 지기스문트 황제와 함께 이를 주최하는 데 기여 (이 공의회에서는 주교들과 함께 평신도들도 투표하여, 대서방 분열을 종식하기 위해 정통 교황 1명과 대립 교황 2명을 폐위함)
* 오스트리아의 마르가레타 - 합스부르크령 네덜란드 총독으로서 개신교에 맞서 싸우고 조카인 훗날의 황제 카를 5세를 교육
* 카스티야의 이사벨라 여왕 - 세 명의 교황으로부터 광범위한 주교 임명권을 부여받고 스페인 교회 개혁을 주도
* 잉글랜드의 메리 1세 여왕 - 부친 헨리 8세(그리고 종종 간과되는 나약한 영국 가톨릭 성직자들)의 로마와의 단절을 되돌리려 노력
* 나바라의 마르그리트 여왕 - 성직자 임명을 통해 개신교와 가톨릭 간 화해 시도
* 오스트리아의 후아나 - 스페인의 섭정으로서 예수회 보호
* 이사벨라 클라라 에우헤니아 대공비 - 트리엔트 공의회의 개혁을 도입하고 주교를 임명
*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 - 18세기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가톨릭 군주 중 한 명
* 스페인의 이사벨라 2세 여왕 - 반성직주의 자유주의자들에게 왕위를 잃은 주요 가톨릭 군주
* 포르투갈의 마리아 2세 여왕 - 빅토리아 여왕 시대에 군주로서 통치하며 동시에 많은 자녀를 양육
이 외에도, 그리스도교 초기부터 19세기에 이르기까지 교회사에는 공적 삶 또는 교회 내외의 중요한 지도적 역할에 참여한 수많은 여성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그들의 유산—특히 교회 안에서 여성뿐 아니라 더 나아가 평신도의 역할에 대한 통찰—은 시노드 연구 그룹의 최종 보고서에서 사실상 배제되어 있다.
아마도 우리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60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보고서가 비판하는 “성직주의”를 진정으로 극복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것은 교회 의사결정의 고위 수준에서 여성의 참여를 역사적으로 진지하게 논의할 경우, 그것이 여성의 부제 서품 가능성과는 큰 관련이 없을 수도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은 오늘날 교황이나 고위 성직자들이 임명하는 바티칸이나 교구청 직책과도 그다지 관련이 없을 수 있다.
오히려 그것은 훨씬 더 넓은 역사—즉 교회 통치와 규율의 고위 영역에 평신도가 참여해 온 역사—와 더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 예컨대, 아직 세례도 받지 않은 상태에서 니케아 제1차 공의회를 소집하여 우리가 고백하는 신경을 낳게 한 성녀 헬레나의 아들 콘스탄티누스의 사례에서부터 말이다.
오늘날 많은 가톨릭 신자들은 역사적 맥락, 복잡성, 미묘함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오늘날 많은 가톨릭 기관과 교육 프로그램에서 역사적 토대가 부족한 현실의 결과이자 동시에 그 원인이기도 하다. 역사라는 학문은 종종 신학, 철학, 평화와 정의 연구의 “성가신 사촌”처럼 취급되며, 의식적으로 가톨릭적 환경에서 배제되곤 한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최종 보고서의 작성자들이 적어도 가톨릭 여성들이 교회 안팎에서 일정한 지도적 역할을 수행해 온 역사를 가지고 있음을 진지하고 부분적으로나마 인식한 점은 평가한다.
아울러 그것은 20세기에 이르러서야 본격적으로 시작된 역사도 아니며, 여성주의자들과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시대의 교황들과 주교들이 자신들의 선호하는 규범적 언어로 이를 설명하기 시작한 이후에야 비로소 존재하게 된 역사도 아니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