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널명: 뉴스홈 > 오피니언 > 종교 기사 제목:

[USA 가톨릭 512] 가톨릭 글래스고의 죽음

2026-11-04 08:23 | 입력 : 리베르타임즈
  • 페이스북 공유
  • 트위터 X 공유
  • 카카오톡 공유
  • 링크 복사
  • 페이스북 공유
  • 트위터 X 공유
  • 카카오톡 공유
  • 링크 복사

스티븐 데이즐리 Stephen Daisley is a columnist for the Scottish Daily Mail. 칼럼니스트


10월, 스코틀랜드 최대 도시 글래스고의 가톨릭 신자들이 오랫동안 두려워하던 소식이 전해졌다. 미사 참례자 감소로 도시 곳곳의 본당이 공동화되었고, 성소 위기로 이 대교구의 사제는 금세기 중반이면 여덟 명만 남을 것으로 전망된다. 신자들도 본당 폐쇄와 통폐합을 예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규모까지 예상한 것은 아니었다.

윌리엄 놀런 대주교는 “본당은 너무 많지만 사람은 너무 적다”고 인정하며, 자신의 관할 아래 있는 본당 절반의 폐쇄를 발표해야 했다. 지난 50년 동안 벨라휴스턴 공원에서 교황 집전 미사가 두 차례나 거행된 이 도시에서, 한때라면 상상조차 할 수 없었을 발언이다.

글래스고 가톨릭의 역사는 이주와 종교적 분파주의의 역사와 얽혀 있다. 19세기 초부터 중반까지 아일랜드인들이 스코틀랜드 서부와 중부로 이주하면서, 개혁교회인 스코틀랜드 교회의 따가운 시선 아래 살아가던 지역 사회들에 새로운 가톨릭 공동체가 뿌리내렸다.

뒤이어 일어난 공동체 간의 긴장은 본질적으로 신학적인 것이 아니라 민족적·문화적인 것이었다. 이주민과 그 후손들은 영국의 지배에 맞선 아일랜드의 혁명 투쟁과 오늘날 아일랜드 국가의 탄생 진통, 그리고 북아일랜드의 장래를 둘러싸고 가톨릭계 공화주의자들과 개신교계 영국 잔류파 사이에서 벌어진 무력 분쟁을 거치는 내내 아일랜드에 대한 강한 유대감을 간직했다.

스코틀랜드의 토착 개신교도들은 이런 사안에서 가톨릭 이웃들에게 가장 적대적인 쪽이라면 어느 쪽이든 편들었다. 20세기에 이르러 아일랜드계 가톨릭은 스코틀랜드의 독자적인 문화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 그것은 종교적 실천인 동시에, 점점 더 많은 스코틀랜드인의 삶을 규정하는 제도와 관습, 신념의 집합이었다.

같은 하느님과 성경을 믿고 서로 밀접한 역사적 유산을 공유하는 두 집단을 갈라놓은 문화적 심연은, 마리스타회 수사가 창단한 셀틱 FC와 영국 애국주의 및 완고한 개신교 신앙의 보루인 레인저스 FC의 팬들 사이에서 벌어진 격렬하고 때로는 폭력적인 축구 대립으로 가장 유명하게, 또 가장 악명 높게 드러났다. 이러한 집단적 소속감은 너무나 강렬해서, 시간이 흐르면서 일부 가톨릭 신자와 개신교도에게는 미사나 스코틀랜드 교회 예배에 참석하는 것보다 파크헤드나 아이브록스 경기장에 가는 것이 으뜸가는 종교적 의무가 되었다.

오늘날 스코틀랜드 주교회의 통계에 따르면, 스코틀랜드 가톨릭 신자 가운데 매주 미사에 참례하는 비율은 고작 14%다.

글래스고 대교구가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지만, 이 대교구가 직면한 어려움은 스코틀랜드 전역과 서유럽의 다른 지역에서도 마찬가지다. 그 부족함 때문에 질책받아 마땅한 부분이 있다면, 거의 보편적으로 같은 부족함을 드러내는 더 큰 교회의 일부로서 그러하다.

스코틀랜드는 납세자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가톨릭 학교가 있고, 자신을 가톨릭 신자라고 밝히는 인구의 비율도 2001년 인구 조사 당시 16%에서 2022년 13%로 소폭 감소했을 뿐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된 나라다. 그런데도 스코틀랜드 가톨릭교회는 여러 세대에 걸쳐 신자들을 잃었다. (반면 개신교인 스코틀랜드 교회의 신자 비율은 같은 기간 42%에서 20%로 급락했다.)

그 원인으로 흔히 꼽히는 것은 대학 교육 기회의 확대, 가톨릭 신자에 대한 차별의 감소, 다른 신앙을 가진 이들과의 혼인, 출생률 하락, 국내 인구 이동, 그리고 정치와 문화 영역의 공격적인 세속주의다.

스코틀랜드의 가톨릭은 신자들이 공공연히 차별받던 때에 가장 왕성했다. 미국의 유대인과 그리스도인에 관한 어빙 크리스톨의 오래된 경구를 바꾸어 말하자면, 오늘날 스코틀랜드 가톨릭 신자들이 직면한 위험은 비가톨릭 신자들이 그들을 박해하려 한다는 데 있지 않고, 그들과 결혼하려 한다는 데 있다. 그렇다 해도 신자들을 그릇된 길로 이끈 일부 흐름은 교회 자체의 실패로 거슬러 올라간다.

1960년대와 1970년대의 전례 혁신은 대부분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요구한 범위를 급진적으로 넘어선 것이었으며, 미사를 신자들에게 열어 주려는 취지에서 이루어졌다. 사제는 하느님께 등을 돌리고 대신 신자석을 향했다. 축성의 말씀은 더 이상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데 쓰이던, 시대를 초월한 언어인 라틴어로 발화되지 않았다. 대신 거실과 술집, 빙고장에서 날마다 들을 수 있는 일상어인 영어로 발화되었다. 천사 같은 그레고리오 성가의 선율과 경건한 성가의 장엄한 경외감은 당시의 포크 음악 부흥 운동을 본뜬 현대적인 기타 곡들에 자리를 내주었다.

이러한 변화는 틀림없이 그 시대의 정신을 포착하고 베이비붐 세대의 영적 욕구를 채워 주었다. 그러나 모닥불 곁에서 함께 노래하는 듯한 분위기 속에서 성찬의 희생 제사를 봉헌하는 것은 그들의 자녀들에게는 영적 양식을 거의 주지 못했고, 손주들에게는 그보다도 더 적게 주었다. Z세대 가톨릭 신자들 사이에서는 경외심과 전통, 아름다움, 그리고 영성체 때뿐 아니라 전례 전체를 통해 거룩함과 만나는 체험을 바라는 목소리가 높다. 나이 들어 가는 교회의 급진주의자들에게는 몹시도 분한 일이겠지만, 젊은이들은 가장 급진적인 것을 원한다. 바로 가톨릭 신앙이다.

안타깝게도 글래스고에서는 가톨릭 공동체의 다른 대부분 집단과 마찬가지로 가톨릭 청년들의 수도 훨씬 줄어들었다. 가톨릭 학교 교육은 성인이 된 뒤의 신앙적 헌신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너무나 많은 성직자가 피임과 이혼에 관한 받아들이기 어려운 교리를 설교하기를 꺼렸고, 그 결과 가톨릭 가정은 규모가 줄고 깨어졌다. 교회는 교도권의 가르침과 어긋나는 법안에 여전히 목소리를 내지만, 때로는 스코틀랜드의 진보적 정치 합의에 거의 도전이 되지 않는 대의에 가장 열성적인 듯 보인다.

복음의 사회적 가르침, 특히 가난한 이들에 대한 봉사는 신앙의 근본이다. 그러나 팔레스타인과 빈곤, 무기 확산 문제에서 시작해 거기서 끝나는 미지근한 가톨릭은 성사만 곁들인 국제앰네스티일 뿐이다.

성직자 성학대라는 가증스러운 일을 빼놓고서는 교회의 양심 성찰이 온전할 수 없다. 스코틀랜드도 이러한 고통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세인트앤드루스·에든버러 대교구장이었던 키스 오브라이언 추기경은 시어도어 매캐릭보다 여러 해 앞서 실각했다. 성학대 사실의 폭로는 많은 스코틀랜드 가톨릭 신자들의 신앙을 질식시켰다. 한편 신앙을 지킨 이들 가운데 일부는 교회의 잘못을 자신의 잘못을 정당화하는 구실로 삼았다.

주교들을 규탄하는 것만으로는 문제의 일부만 다룰 뿐이다. 교회가 겪는 어려움의 책임을 따질 때마다 평신도들은 주교단을 손가락질하는 데 너무나도 열심이다. ‘메아 쿨파’(mea culpa, 제 탓입니다)에는 자기 성찰과 자책이 필요하다. 반면 ‘에오룸 쿨파’(eorum culpa, 그들 탓입니다)는 신자들이 교회의 쇠퇴에 자신도 한몫했음을 직시해야 할 책임에서 벗어나게 해 준다.

교회는 살아 있는 유기체다. 모든 가톨릭 신자는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하며, 그분께서 세우신 것을 소홀히 하거나 무관심하게 대한 데 대해 모두가 책임져야 한다.

아버지가 미사 참례를 어머니와 자녀들만의 일로 내버려 둘 때, 부모가 자녀에게 교리를 가르칠 의무를 회피할 때, 바로 그러한 소홀함과 무관심이 생겨난다. 사제와 가톨릭 학교 교사는 영적인 아이 돌보미가 아니다. 신앙이 뿌리내리려면 신앙 교육은 가정에서, 일찍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가톨릭 평신도들은 성품성사에 무관심한 모습을 보여 왔다. 교계는 수십 년 전부터 가톨릭 가정이 아들들을 사제직으로 이끌어 기르지 않으면, 머지않아 사제직을 이어 갈 이가 없어질 것이라고 경고해 왔다. 본당을 닫는 것은 주교들이 아니다. 사제 부족이다.

이 가운데 많은 부분은 세계 어디의 가톨릭 신자들에게나 적용될 수 있지만, 글래스고에는 신앙을 세속적인 정체성으로 취급하는 이 도시 특유의 집단적·문화적 차원이 있다. 그러나 가톨릭 신앙은 정체성이 아니다. 문화적으로 내세우는 모습도, 대물림된 피해 의식을 나타내는 표지도 아니다.

파크헤드 시즌 입장권을 가지고, 자동차 계기판 위에 성 크리스토포로 메달을 붙여 놓고, 영성체 예식이나 장례식 때만 글래스고 사람들의 표현대로 “성당에 가는 것”이 아니다. 레지오 마리애의 묵주 기도 대회나 가톨릭 어머니 연합회의 빙고 모임을 그리워하는 것도 아니며, 성모 성월 제대에 가장 아름다운 꽃들을 가져다 바치던 어린 시절의 추억이나, 주마다 할머니에게 사제의 제의 색깔이 무엇이었는지 질문받던 기억도 아니다.

신실한 가톨릭 신자는 불완전하게나마 끈기 있게, 그리스도 안에서 살기 위해 세상에 대해 죽고자 한다. 문화적 가톨릭 신자는 세상과 세상의 인정을 원하지만, 세상은 그의 교회도, 그 교리도, 그 본당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신실한 가톨릭 신앙은 글래스고에서 살아남을 것이다.

그리고 독실한 사제들과 주교들의 훌륭한 사목 아래, 언젠가는 다시 번성하여 새로운 본당을 세워야 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 건물은 생겨나고 사라지지만 영은 신앙 안에서 살아간다. 정체성에 불과한 가톨릭 안에서는 오직 세속성만이 살아 있으며, 그것이 곧 영적인 죽음이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
Copyrights ⓒ 리베르타임즈 & www.libertimes.kr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 더보기 리베르타임즈
댓글 :0
댓글 등록
0/400
  • 작성자명 |2024.11.14 10:30
    이곳은 댓글 작성한 내용이 나오는 자리 입니다.
1 2 3 4 5
리베르타임즈로고

신문사소개 | 찾아오시는 길 | 개인정보처리방침 | 이메일무단수집거부 | 청소년보호정책(책임자:도희윤) | 기사제보 | 문의하기


서울시 서초구 반포대로 5길 12 타운빌 2층 | 이메일: libertimes.kr@gmail.com | 전화번호 : 02-735-1210
등록번호 : 415-82-89144 | 등록일자 : 2020년 10월 7일 | 발행/편집인 : 도희윤
기사제보 및 시민기자 지원: libertimes.kr@gmail.com
[구독 / 후원계좌 : 기업은행 035 - 110706 - 04 - 014 리베르타스협동조합]
Copyright @리베르타임즈 Cor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