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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A 가톨릭 503] 프란시스코 데 수르바란의 참된 세계

2026-10-26 07:44 | 입력 : 리베르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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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스프리트 싱 보파라이 Jaspreet Singh Boparai is writing a book on Classics in British India. 고전학 집필가


여름 내내 나는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런던 내셔널 갤러리를 찾았다. 평소의 습관은 아니었지만, 뜻밖에도 8월 말에 막을 내린 수르바란 전시회에 마음이 끌렸다. 그 그림들에는 나를 거듭 불러들이는 무언가가 있었다.

프란시스코 데 수르바란(1598~1664)은 아마도 17세기 최고의 종교화가일 것이다. 그는 영적 갈등과 영혼의 드라마에 매료되었다. 이러한 것들은 궁극적으로 물리적 세계에서 벌어지는 그 어떤 사건보다도 중요하다. 그렇다고 그가 감각적 즐거움에 초연했다는 뜻은 아니다. 어쨌든 그는 적어도 아홉 자녀의 아버지였다. 그러나 그의 삶 어느 면에서도 무절제하게 쾌락에 빠졌다는 인상은 받지 않는다. 색채와 빛에 대한 사랑에서조차 그러하다.

옛 거장들이 그린 성인들의 생애와 복음 속 장면은 대개 비신앙인의 관점에서도 감상할 수 있다. 니체는 『비극의 탄생』 제4절에서 라파엘로의 〈그리스도의 거룩한 변모〉를 탁월하게 끌어와 아폴론적 문화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설명한다. 라파엘로라면 자신의 작품이 이렇게 오용되는 데 경악했을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그림 자체에는 니체의 반그리스도교적 해석을 효과적으로 물리칠 만한 것이 없다. 성스러운 주제에 접근하는 수르바란의 방식은 근본적으로 달랐다. 니체라 하더라도 그의 종교화를 진실한 신심의 표현이 아닌 다른 무엇으로 다시 읽어 낼 수 있었을지는 상상하기 어렵다.

물론 그렇다고 수르바란의 그림이 오독에서 자유롭다는 뜻은 아니다. J.-K. 위스망스는 19세기의 가장 통찰력 있는 미술 비평가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다만 가톨릭 신앙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한 1890년 성탄절 이후로 그의 미적 판단은 갈수록 기이해졌다. 그는 『대성당』에서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리옹의 미술관에 있는 수르바란의 그림 한 점……. 회색 자루옷을 입고 머리에 후드를 뒤집어쓴 채 똑바로 서 있는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의 초상화였다. 그의 양손은 소매 속에 감춰져 있었다…… 뼈만 남을 정도로 쇠약해진 이 시체가 어떻게 스스로 몸을 지탱할 수 있는지 신기할 따름이었으며, 이 몸을 쇠약하게 만들고 이 얼굴에 슬픔과 황폐함이 가득한 표정을 새겨 넣은 극심한 자학 행위와 끔찍한 고행에 대한 생각에 공포가 밀려왔다. 이 그림은 분명히 성 요한 크로스의 무자비하고 끔찍한 신비주의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것은 고문실의 예술이었고, 이 땅 위에서 경험하는 신성한 황홀경에 의한 진전성 정신착란이었다. 그렇다. 그러나 이 캔버스에서 솟아오르는 경배의 음조, 고통에 짓눌린 사랑의 외침은 얼마나 강렬한가.”

위스망스의 묘사는 전적으로 정확하지는 않았다. 아마도 수르바란이 실제로 무엇을 그리려 했는지 몰랐기 때문일 것이다. 교황 니콜라오 5세는 1449년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의 무덤을 방문했으며, 지하 묘실에서 부패하지 않은 성인의 시신이 똑바로 서 있는 모습을 기적적인 환시로 보았다고 전해진다. 수르바란은 이 주제를 적어도 세 차례 그렸다.

위스망스가 리옹에서 본 최초의 작품 외에도 보스턴 미술관에는 그보다 못한 모사본이, 카탈루냐 국립미술관에는 제법 훌륭한 모사본이 있다. 이 장면을 묘사한 수르바란의 세 그림은 모두 관람객에게 실제로 환시를 보는 듯한 기묘한 감각을 준다. 그 환영은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이라는 본래 의미에서 참으로 경외스럽다.

위스망스라면 코네티컷주 하트퍼드의 워즈워스 애서니엄 미술관이 소장한 수르바란의 충격적인 1628년 작품 〈성 세라피온〉을 보고 틀림없이 기뻐했을 것이다. 메르체데스 수도회 수사였던 성 세라피온은 노예가 된 그리스도인들을 해방하려다 1240년에 참혹하게 순교했다. 수르바란은 아직 살아 있지만 의식을 잃은 성인을 그린다. 그는 심하게 구타당했다. 얼굴은 부어 있으며, 밧줄과 사슬로 손목이 매달려 있기에 겨우 몸을 세우고 있을 뿐이다.


이 그림은 수르바란의 가장 뛰어난 작품들이 지닌 역설을 보여 준다. 인체의 해부학적 표현과 원근법에 눈에 띄는 오류가 흔히 드러나는데도, 그의 그림은 더없이 설득력이 있다. 수르바란은 단축법을 적용한 아래팔을 정확하게 그리지 못한다. 실제로 순교자의 뻣뻣한 흰 수도복 아래에는 몸통이 있다는 느낌조차 없다. 그는 직물에 빛이 닿아 생기는 효과를 묘사하는 데 거장이었으며, 묵직한 자수와 다마스크 비단을 즐겼듯 거칠고 때 묻은 삼베의 질감도 사랑했다.

다만 얇고 가벼운 직물을 그리는 데에는 그만큼 능숙하지 못했다. 극적인 조명 효과를 만들어 내는 솜씨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림 속 광원이 어디에 있는지, 그림자가 어디에 드리워져야 하는지를 제대로 설정하지 못했다. 루브르 박물관의 〈성 보나벤투라의 매장〉처럼 가장 야심 찬 작품들조차 이러한 결함을 안고 있다. 그러나 전체적인 효과가 워낙 강렬하기에 관람객 대부분은 이런 결함을 좀처럼 알아차리지 못하며, 알아차려도 개의치 않는다.

수르바란의 가장 큰 약점은 인체의 해부학적 표현이었던 듯하다. 손, 특히 손가락은 충분한 주의를 기울여 그려지는 일이 드물다. 무릎을 꿇은 성인들을 묘사할 때면 정강이와 발이 빠져 있는 경우도 흔하다. 런던 내셔널 갤러리가 소장한 훌륭한 작품 〈묵상하는 성 프란치스코〉가 그 예다. 마찬가지로 수르바란의 구도는 어색할 수 있으며, 건축을 다루는 감각은 그야말로 아마추어 수준이다. 되풀이해서 나타나는 몇몇 요소는 때때로 눈에 거슬린다. 특히 포탄처럼 쌓여 있는 듯한 케루빔들의 머리가 그렇다. 그는 여성의 아름다움에도 거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전반적으로 그의 작품 상당수에는 안일한 구석이 있다. 그런데 왜 이 모든 것이 별로 중요하지 않게 느껴지는 것일까?

기술적 결함을 들어 수르바란을 비판하려는 관람객이라면 그의 작품 〈나자렛 집 안의 그리스도와 성모〉를 자세히 살펴보아야 한다. 그는 1630년대에 이 주제를 여러 차례 그렸다.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은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 미술관에서 볼 수 있다. 수르바란은 이 주제를 스스로 창안한 듯하다. 아마 열한 살쯤 된 예수는 무릎 위에서 엮고 있던 가시관에 손가락을 찔린다. 성모 마리아는 탁자 맞은편에서 슬픔에 지친 채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본다. 결함들을 낱낱이 열거하고 나면, 이 작품이 어떻게, 또 왜 이토록 감동적인 예술작품인지 설명하기가 어려워진다. 분별 있는 감식가라면 누구도 이것이 걸작임을 부인하지 않을 것이다.

수르바란은 예수 성심에 특별한 신심을 지녔던 예수회 평수사 성 알론소 로드리게스에게 각별히 마음이 끌렸던 듯하다. 마드리드의 산페르난도 왕립 미술아카데미에 있는 수르바란의 그림은 소박하기 그지없지만, 예수와 성모가 순박한 로드리게스에게 사랑을 쏟는 모습을 뜻밖에도 설득력 있는 환시로 보여 준다. 수르바란은 관람객의 시선을 위로, 예수 자신에게로 이끄는 색채의 조화를 만들어 낸다. 여기에 그의 위대함의 비밀이 있다.

수르바란은 고된 삶을 살았다.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고 일찍 성공을 거두었지만, 첫 번째와 두 번째 아내는 각각 1623년과 1639년에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 자체로도 이름난 정물화가였던 사랑하는 아들 후안은 1649년 흑사병으로 죽었다. 실제로 수르바란의 자녀 대부분은 아버지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1630년대 중반부터 그는 점점 커지는 실망과 화가로서의 좌절, 경제적 곤궁과 개인적인 굴욕을 겪었다. 이 모든 일은 자화상일 수도 있는 한 작은 그림의 배경을 이룬다. 이 그림은 수르바란이 모든 것을 잃은 듯했던 시기 이후인 1650년경에 그려졌을 것이다.

수르바란은 미술사에서 가장 강렬한 십자가형 그림을 적어도 여섯 점 그렸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 앞의 화가 성 루카〉는 그중에서도 가장 깊이 뇌리에 남는 작품이라 할 만하다. 예술가들의 수호성인인 성 루카는 왼손에 팔레트와 붓을 들고 오른손을 가슴에 댄 채, 십자가 위의 예수를 올려다보며 사랑으로 관상한다. 예수는 화가에게 고개를 숙이는 듯하기까지 하며, 화가는 그리스도 자신에게서 나오는 빛을 받고 있다. 수르바란이 살아가며 어떤 고통을 겪었든, 그것은 그에게 중요하지 않았던 듯하다.


수르바란을 전폭적으로 찬탄하는 우리도 그의 재능이 여러 면에서 다듬어지지 않은 채 남았다는 사실은 인정할 것이다. 그의 독창성이 어떤 식으로든 기술적 결함이나 정규 교육의 부족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거짓일 것이다. 그가 창조한 작품의 힘은 우리가 실재를 보게 하고, 실재하는 것이 언제나 눈에 보이는 것은 아님을 기억하도록 돕는 능력에 있다.

그의 예술은 단지 관상이나 기도를 돕는 수단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 자체로 기도였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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