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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캡쳐 |
북한이 개성시 장풍군에서 고려시대 벽화무덤을 새로 발굴했다며 대대적인 ‘연구성과’ 선전에 나섰다.
북한 매체와 김일성종합대학 발표에 따르면 역사학부 연구진은 장풍군 읍지구에서 고려시대 석관 형태의 벽화무덤을 발굴했으며, 무덤 동·서벽에는 산봉우리와 바위벼랑, 나무, 개울, 새 등을 먹으로 그린 풍경화가 남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북쪽 벽의 검은색 판석에는 피장자의 생애와 가문을 기록한 글이 새겨졌다고 한다.
북한 측은 특히 피장자가 11세기 전반 활동한 무관으로 사후 상장군에 추증됐으며, 이번 벽화가 당시의 실재 풍경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사례로서는 처음 알려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발굴 내용이 사실이라면 학술적 가치는 결코 가볍지 않다. 고려시대 회화와 장례문화, 군사제도, 사회구조를 연구할 새로운 자료가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개성 일대는 고려 왕조의 정치·문화적 중심지였고, 오늘날에도 고려의 역사와 문화를 보여주는 다수의 유적이 남아 있다. 개성역사유적지구는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도 등재돼 있다.
문제는 북한이 문화유산을 다루는 방식이다. 북한 보도는 발굴의 구체적인 학술적 검증 절차나 외부 전문가들의 평가보다 “우리 인민의 문화유산을 풍부히 하는 가치 있는 연구성과”라는 표현을 앞세운다. 무더위와 폭우 속에서도 연구자들이 발굴을 계속했다는 내용까지 강조하며 이번 발견을 또 하나의 체제적 성취처럼 포장한다.
문화유산 연구에서 중요한 것은 누가 먼저 ‘성과’를 선언했느냐가 아니다. 출토 위치와 층위, 묘실 구조, 안료와 석재의 성분, 묘지명의 정확한 판독, 보존상태, 주변 유적과의 관계, 연대 측정 방식이 객관적으로 공개돼야 한다.
더구나 북한 측은 이번 벽화를 11세기 전반의 풍경화로 규정하고 상당한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그렇다면 더욱 필요한 것은 독립적인 검증이다.
고려 벽화고분은 동북아시아 중세 미술과 장례문화를 연구하는 중요한 자료이며 이미 한국과 해외 학계에서도 지속적으로 연구돼 온 분야다. 따라서 ‘처음 발견됐다’거나 ‘고구려 벽화와 공통점이 많다’는 식의 판단은 북한 내부 연구기관의 발표만으로 확정할 사안이 아니다. 관련 사진과 실측도, 묘지명 전문, 판독문, 과학적 분석 결과를 국내외 연구자들에게 공개해 교차 검증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북한의 문화재 발굴은 좀처럼 이러한 길로 나아가지 않는다. 역사유적이 발견될 때마다 북한은 이를 ‘민족의 우수성’과 ‘우리식 사회주의의 성과’를 과시하는 소재로 소비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역사와 고고학마저 체제선전의 언어 속에 가두다 보니 귀중한 유물이 발견돼도 외부 세계는 발표 내용을 그대로 신뢰하기 어려운 구조가 반복된다.
이번 유적도 마찬가지다. 무덤에 1천 자가 넘는 금석문이 남아 있고, 그것이 10세기 말부터 11세기 전반 고려의 정치·경제·문화·군사상을 밝히는 자료라면 그 내용 전체를 공개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북한 측 발표대로라면 오히려 한민족 전체가 공유해야 할 귀중한 역사자료다.
문화유산에는 휴전선도, 체제의 경계도 없다. 고려는 오늘날 북한만의 역사도, 남한만의 역사도 아니다. 남북한 모두가 공유하는 역사이며 세계사 속에서 연구돼야 할 인류의 문화유산이다. 특히 개성의 고려 유적은 국제사회도 그 가치를 인정하고 있는 만큼 북한이 이를 체제의 독점적 성과처럼 다룰 이유가 없다.
북한이 진정 이번 발굴을 ‘귀중한 연구성과’라고 평가한다면 해야 할 일은 선전문구를 늘어놓는 것이 아니다.
발굴조사보고서를 공개하고, 벽화와 묘지명의 고화질 자료를 학계에 제공하며, 필요하다면 남북 공동조사와 국제기구·해외 연구기관의 참여까지 허용해야 한다. 보존처리 과정 역시 국제적 기준에 따라 투명하게 진행할 필요가 있다.
특히 벽화는 발굴 순간부터 온도와 습도 변화, 미생물, 빛 등에 노출돼 급속히 훼손될 수 있다. ‘발견했다’는 성과보다 어떻게 보존하고 후대에 물려줄 것인가가 훨씬 중요하다.
북한은 문화유산을 ‘체제의 업적’으로 먼저 포장하는 오래된 습관에서 벗어나야 한다. 산과 계곡, 흐르는 물과 날아가는 새를 1천 년 전 고려인이 그렸다면, 그 그림은 오늘의 정치체제를 선전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당시 사람들이 바라본 세상과 미의식을 오늘의 우리에게 전해주는 역사 그 자체다.
천 년을 견뎌낸 벽화 앞에서 필요한 것은 구호가 아니라 학문이고, 과장이 아니라 검증이며, 독점이 아니라 공개다.
북한이 이번 발견의 역사적 가치를 진정으로 존중한다면 ‘우리의 성과’라고 외치기 전에 세계가 함께 보고 연구할 수 있도록 문부터 열어야 한다.
김·성·일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