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의 레지널드 폴 추기경은 자신의 『카를 5세에게 바치는 변론』에서, 토머스 크롬웰이 1529년 자신에게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헨리 8세 국왕으로 하여금 로마와 결별하도록 영감을 주었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의심스럽다. 『군주론』은 마키아벨리가 죽은 뒤인 1532년에야 출간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주장은 이 이탈리아 정치철학자를 혐오했던 폴 추기경의 생각과는 분명 잘 들어맞는다.
폴은 『군주론』이 “인류의 적이 쓴 책이다. 이 책은 종교와 정의, 그리고 덕을 향한 모든 성향을 파괴할 수 있는 온갖 수단을 설명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같은 1530년대 후반, 제10대 몰리 남작 헨리 파커는 크롬웰에게 이 책 한 권을 보내며 이렇게 썼다. “이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라는 책은 각하께 참으로 특별히 유익한 책입니다.”
역사가 A. F. 폴라드는 헨리를 “행동으로 구현된 마키아벨리의 군주”라고 묘사했다. 정적들을 제거하고, 정치적 이익을 위해 종교를 이용하며, 영광과 부를 과시하는 자신의 대외적 명성을 강박적으로 관리했던 모습을 생각하면, 침대 곁에 『군주론』을 놓아둔 잉글랜드 국왕의 모습을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전 백악관 관리 마이클 안톤의 신간 『마키아벨리 정치철학 연구』를 읽는 동안 헨리의 그림자가 책장 가장자리마다 어른거렸다. 이 책은 마키아벨리 사상에 대한 인상적인 분석이다. 안톤은 마키아벨리가 탈종교적 근대성을 예고했을 뿐만 아니라, 특히 그리스도교와 맺은 냉소적이고 적대적인 관계 속에서 그의 사상이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사회정치적 병폐를 이해하는 데 핵심적이라고 주장한다.
안톤은 이렇게 쓴다.
“마키아벨리는 그리스도교의 약속이 단순히 거짓인 것보다 더 나쁘다고 암시한다. 그리스도교에 속은 사람들은 약속받은 것을 얻지 못할 뿐 아니라, 처음보다 더 나쁜 처지에 이르게 된다.”
마키아벨리는 그리스도교 신앙이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에게 의지하기보다 외부의 힘에 의존하도록 설득함으로써 나약함을 낳는다고 생각했다.
더 나아가 마키아벨리는 그리스도교가 고대인들이 오직 영광스러운 소수에게만 허락된다고 믿었던 초월적 평화와 개인적 성취를 누구나 얻을 수 있다고 대중을 속인다고 보았다. 안톤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무엇보다 나쁜 것은 그리스도교가 모든 신자에게 마음의 평온, 혹은 운명을 초월하는 경지를 약속한다는 점이다. 고전 철학자들은 이러한 경지는 오직 가장 뛰어난 사람들만이 큰 노력을 통해 획득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 그리스도교는 그러한 정신 상태를 단순화한 형태로 모든 사람에게, 어쩌면 아무 노력도 없이, 제공하려 한다. 결국 영원한 천국이 약속되어 있는데 죽는 것이 얼마나 어렵겠는가?”
마키아벨리에게 이러한 단순화는 ‘참된’ 철학을 희석시킬 뿐 아니라 철학에서 힘과 정교함, 고귀함을 빼앗는다. 그리스도교는 인간을 안일하게 만들고, 인간적 영광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겸손한 삶에 순응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기도 외에는 별다른 일을 하지 않게 하는, 마키아벨리 자신의 표현을 빌리면 “야심찬 게으름(ambitious idleness)”을 조장한다. 또한 ‘경건한 잔혹함’을 통해 영원한 단죄라는 위협으로 사람들에게 신앙을 강요한다.
최근 『워싱턴 포스트』 기고문에서 안톤은 『군주론』이 “실제로는 성경과 고대 철학에 맞서고, 그것들을 대체하기 위한 영적 전쟁의 무기”라고 주장한다.
“마키아벨리의 야망은 자신의 저서를 통해 사후에도 인류를 지배하는 ‘새로운 군주’가 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일부 사람들은 안톤이 마키아벨리의 반교회적 유산으로 평가하는 “공화주의의 부활, 현대 자유주의 체제, 현대 자연과학”이 전체적으로 보아 인류에게 이익을 가져왔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안톤은 마키아벨리가 “엄청난 단순화”를 저질렀고 인류의 “지평을 축소했다”고 비판한 레오 스트라우스의 견해에 동의한다.
안톤은 이렇게 쓴다.
“마키아벨리는 비극을 망각하고, 철학을 물질적 욕망에 봉사하는 시녀로 전락시키며, 더 높은 형이상학에 대한 모든 호소를 논의의 범위 밖으로 몰아낸다.”
더 도발적으로 안톤은 마키아벨리가 반유신론적 세계를 조장했으며, 그것이 텅 빈 교회 좌석뿐 아니라 중독성 강한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에서 음란물, 그리고 “메마른 학계”에 이르기까지 근대성의 온갖 병폐에 책임이 있다고 비판한다. 그리스도교에 적대적인 근대성은 인류를 고대인의 찬란한 열망으로 되돌려 놓았을 뿐 아니라, 그들의 수많은 파괴적 악덕으로도 되돌려 놓았다. 고대 로마인들은 그 많은 탁월함에도 불구하고 적들에게, 심지어 자기 자녀들에게까지 끔찍한 비인간성을 자행한 사람들이었다.
마키아벨리가 살던 시대에는 제도적 교회가 모든 권력을 쥐고 있었다. 오늘날 안톤은 그의 비전이 대학과 주류 언론, 그리고 연예·오락 산업에서 실현되었다고 본다. 그는 마키아벨리 시대의 수도원이 오늘날의 대학이라고 주장한다.
“언론은 그들의 교회이며, 그 사상을 대중에게 퍼뜨리는 수단이다.”
우리 영혼을 향하게 할 종말론적 완성이 사라진 상황에서, 성스러움을 잃은 우리의 제도들은 피해자 의식을 하나의 종교로 만들어 버린다.
그렇다면 현대인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안톤은 이렇게 쓴다.
“그렇다면 우리의 과제는 어떤 의미에서 마키아벨리가 했던 일의 정반대다. 즉, 사람들에게 다시 하느님을 알게 하고, 지적 엘리트에게는 다시 ‘선(善)’을 알게 하는 것이다. 우리가 현명하고 훌륭하게 우리의 일을 수행한다면, 신중함은 여전히 간접적으로 지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보다 더 낫고 더 참된 신중함일 것이다.”
그는 마키아벨리의, 인정하건대 매우 효과적이었던 정치적 프로그램을 마키아벨리에 반대되는 목적을 위해 차용하자고 제안한다. 영리한 책략이다. 그러나 과연 좋은 책략인가?
예컨대 안톤은 마키아벨리의 조언을 받아들여야 할 가능성을 제시한다. 안톤의 표현을 빌리면 이렇다.
“조국을 지키기 위해 죄를 짓는 것으로 보이는 한, 죄인이라는 비난을 받아들여라.”
거짓되고 인간성을 훼손하는 이른바 ‘워크(woke)’ 이데올로기에 맞서는 것이 ‘죄를 짓는 것’으로 간주된다면, 실제로 선하고 참되고 아름다운 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러한 의미에서 ‘죄를 지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마키아벨리의 사상을 따르면서 안톤은 이렇게 단언한다.
“우리의 적은 회심시킬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반드시 패배시켜야 할 존재다.”
어떤 이념주의자들은 실제로 설득이 불가능한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을 ‘패배시킨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그들에게 어떤 결함이 있든, 우리의 적들 역시 여전히 하느님의 모상(imago Dei)을 지닌 같은 인간이다.
마키아벨리와 동시대를 살았던 가장 위대한 인문주의자 가운데 한 사람인 토머스 모어는 이와는 대조적인 흥미로운 사례를 보여준다. 모어 역시 16세기 초에 영향력 있는 저작 『유토피아』를 집필했다. 이 책은 타락한 그리스도교 세계를 비판하면서도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손쉬운 이혼과 안락사, 성직자의 혼인과 같은 그의 여러 제안이 그 자신이 소중히 여기고, 실제로 목숨까지 바쳐 지킨 가톨릭의 가르침과 모순되었기 때문이다.
『유토피아』가 인문주의적 정치이론을 풍자한 작품인지 여부와 관계없이, 모어는 마키아벨리와 정반대되는 인물이다. 정치가를 인도해야 하는 것은 권력이 아니라 원칙이며, 인간의 성공은 효과적인 성취뿐 아니라 그의 덕에 의해서도 판단되어야 한다.
모어는 자신의 『에피그램(Epigrams)』에서 이렇게 썼다.
“왕을 안전하게 만드는 것은 졸개가 아니라 덕이다.”
유물론적 관점에서 보면 덕 있는 삶과 공직을 결합하려 했던 모어의 선택은 실패처럼 보인다. 1534년 그는 헨리와 앤 불린의 혼인을 인정하는 왕위계승선서를 거부했고, 국왕을 잉글랜드 교회의 최고 통치자로 인정하는 것도 거부했다. 그 거부로 모어는 자신의 경력과 목숨을 잃었다. 반면 헨리는 수도원들을 해산하고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부를 나누어 주면서 잉글랜드를 완전히 새롭게 바꾸어 놓았다.
헨리는 어차피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으려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모어의 원칙이 무슨 소용이 있었단 말인가? 오늘날의 잉글랜드는 모어의 잉글랜드가 아니라 헨리의 잉글랜드다.
그러나 더 고귀한 길은 모어의 길이다.
사람들은 음모를 꾸미고 다른 사람을 이용하여 야망을 성취한 정치가가 이 세상에서 거둔 성공을 인정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런 정치가는 대체로 사랑받기보다는 미움을 받으며, 그의 영광은 파괴적인 유산으로 얼룩진다.
반면 모어의 빛은 지금도 밝게 빛난다. 그는 원칙이 있었고 용감했을 뿐 아니라 신중한 사람이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공직 임무를 수행했고, 국왕을 존중했으며, 가족의 생계를 마련하기 위해 자신의 재산을 팔았다.
1535년 처형대에서 한 그의 선언은 오늘날까지도 사람들에게 영감을 준다.
“나는 왕의 충실한 신하로 죽지만, 하느님의 신하가 먼저입니다.”
마키아벨리를 본받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반(反)마키아벨리적인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것은 오늘날 공직사회에 아직 남아 있는 덕마저 더욱 훼손할 위험이 있다.
그리고 우리가 단지 정치 공동체의 안녕뿐 아니라 우리 영혼의 구원까지 염려한다면, 우리가 따라야 할 사람은 마키아벨리가 아니라 토머스 모어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