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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A 가톨릭 451] 위대한 스승과 반가운 선언문

2026-09-04 07:33 | 입력 : 리베르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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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바이겔 George Weigel is Distinguished Senior Fellow of the Ethics and Public Policy Center, where he holds the William E. Simon Chair in Catholic Studies. 윤리·공공정책센터 선임연구원


미국 헌법을 이리저리 손대는 일에는 썩 내키지 않는 나이지만, 노동절(미국의 노동절(Labor Day)은 매년 9월 첫째 월요일) 이전에는 어떠한 초등학교도 개학하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헌법 수정안이라면 한번 검토해 볼 용의가 있다.

내가 볼티모어에서 소년 시절을 보내던 때에는 바로 그랬다. 당시 나는 노동절 전에 학교에 간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었는데, 그것은 내가 뉴욕 양키스를 응원하는 모습을 상상할 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노동절은 여름방학의 끝을 알리는 날이었다. 메릴랜드의 오션시티는 이미 며칠 전부터 피서객들이 빠져나가 한산해졌고, 어머니는 나와 동생을 데리고 볼티모어 시내의 스튜어트 백화점에 가서 새 교복을 사주셨다. 물론 그 교복 바지는 대개 10월이면 무릎 부분이 다 닳아 구멍이 나곤 했다. 맥크로리스 잡화점에서는 새 도시락통을 골랐다. 

로이 로저스가 좋을까? 슈퍼맨이 좋을까? 그리고 우리는 어느 노트르담 학교수녀회 수녀님이 이듬해 6월까지 우리 교실을 지배하게 될 것인지 숨을 죽이고 기다렸다. 그 순진했던 시절에는 이런 일들이 마치 중력의 법칙처럼 변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또 한 번의 새 학년이 시작되는 지금—아무리 생각해도 터무니없이 일찍 시작되는 새 학년이지만—나는 1959년 9월과 대성당 학교(Cathedral School) 3학년 첫 몇 주를 떠올린다. 

당시 학교는 웨스트 멀버리 스트리트 7번지에 있었으며, 미국에서 가장 역사적인 가톨릭 건축물 가운데 하나인 복되신 동정 마리아 승천 대성당에서 불과 돌을 던지면 닿을 만큼 가까운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나는 우리가 2학년 때 특별히 떠들썩한 학급이었다고 기억되지는 않는다. 당시 우리는 단호하면서도 다정한 메리 프랜시스 보르자 수녀님(SSND)의 지도 아래 첫 고해성사와 첫영성체를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실 우리는 상당히 다루기 힘든 아이들이었던 모양이다. 원래 3학년 담임을 맡기로 했던 연로한 수녀님이 병이 나자, 수도회 수련자였던 바버라 수녀님이 대신 오셨는데, 우리는 그 가엾은 젊은 수녀님을 완전히 진이 빠지게 만들었던 것 같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그분은 겨우 2주를 버티셨다. 그러고 나서 마침내 ‘철퇴’가 떨어졌다. 

그 철퇴는 더욱 풋내기였던 노트르담 학교수녀회 수도자, 플로렌스 수녀님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당시 그분은 수도회 지원자였다. 그리고 나는 그 일을 하느님께 감사드린다. 훗날 미리엄 주드 수녀(SSND)로 서원한 플로렌스 스위니는 수녀원에 들어오기 전에 필라델피아의 공립학교에서 여러 해 동안 교사로 일했다. 

‘형제애의 도시’에서 어린 악동들을 상대하며 보낸 세월은 우리를 제대로 길들이는 데 더없이 훌륭한 준비였던 셈이다. 원문 표현을 빌리면, 그곳은 차라리 ‘서로 떠미는 형제들의 도시(City of Brotherly Shove)’였다. 플로렌스 수녀님은 조금도 허튼짓을 용납하지 않았다. 

당시의 우리는 그분을 조금 무시무시하게 느꼈지만, 그분의 엄격한 사랑은 내게 큰 도움이 되었다. 그분이 고함을 지르는 교사였던 것으로 기억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 목소리의 어조만으로도 누가 이 교실의 책임자인지는 충분히 분명했다. 그것은 우리가 구구단을 외울 때도 마찬가지였고—끝도 없이, 진저리가 날 만큼 되풀이해서 암송했다—주님의 기도를 올바르게 바치는 법을 배울 때도 마찬가지였다. 

영어로 주님의 기도를 바칠 때 trespass라는 단어의 첫 음절에 강하게 악센트를 두도록 배웠는데, 나는 오늘날까지도 그 습관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내가 교실 뒤쪽 자리에서 칠판에 적힌 숙제를 읽을 수 없어 옆 통로로 몰래 앞으로 나아가고 있을 때 나를 붙잡은 사람도 플로렌스 수녀님이었다. 그 일로 내가 근시라는 사실이 발견되었고, 나는 생애 처음으로 안경을 쓰게 되었다.

역사에 대한 나의 싹트기 시작한 관심을 격려해 준 사람도 플로렌스 수녀님이었다. 수녀님은 내가 선배 학생들과 실력을 겨뤄볼 수 있도록 8학년 학생들이 치르는 제2차 세계대전 시험지를 한 부 슬쩍 가져다주시기까지 했다. 그 옛날 등사기에서 막 찍혀 나온 시험지의 젖은 잉크가 풍기던 달콤한 냄새를 나는 지금도 기억한다. 그리고 여름철이면 백과사전 판매원으로 일한 경험이 있던 플로렌스 수녀님은 우리 부모님을 설득해 19권짜리 『월드 북 백과사전』 전집을 사게 했다. 

나는 그 책 속을 여러 해 동안 더없는 즐거움으로 누비고 다녔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그 백과사전과 헤어져야 했을 때에도 나는 참으로 아쉬워하며 좀처럼 손에서 놓지 못했다. 훨씬 뒤, 그분이 이미 미리엄 주드 수녀님이 된 이후의 일이다. 아내와 나는 메릴랜드 노트르담 대학에서 열린 동문 모임에서 우연히 수녀님을 다시 만났다. 

어느 여름 저녁, 우리는 함께 찐 게를 먹으며 옛 추억을 나누었다. 수녀님은 오래전에 주님의 품으로 돌아가셨다. 그러나 최근 「프런트 로열 선언(Front Royal Statement)」을 읽으면서 나는 그분을 떠올렸다. 이 선언문은 가톨릭 초·중등교육이 지켜온 일곱 가지 고전적 원칙을 다시 확인하는 동시에 교육 개혁을 촉구하는 선언문이다. 

나는 미리엄 주드 수녀님도 이 선언에 기꺼이 동의하셨으리라 생각한다. 1884년 볼티모어의 옛 대성당—내가 그토록 애틋한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바로 그 대성당—에 모여 미국의 모든 본당마다 가톨릭 학교를 세우도록 결정했던 주교들 역시 이 선언에 동의했을 것이다. 

오늘날에는 그렇게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 남아 있는 가톨릭 학교들만큼은 진정으로, 그리고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가톨릭다워야 한다. 젊은 영혼들을 위해서, 그리고 우리 국가 문화의 쇄신을 위해서, 가톨릭 학교는 신앙과 함께 예술과 과학을 포괄하는 위대한 서구 문명의 전통을 전수해야 한다.

「프런트 로열 선언」은 여기에서 읽을 수 있다. 새 학년을 제대로 시작하고 싶다면, 여러분이 알고 지내는 모든 가톨릭 학교의 본당 사제들과 교장들에게 이 선언문을 전해 주기 바란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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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명 |2024.11.14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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