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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돋보기] 공구함 하나도 ‘당원의 영예’

2026-08-17 13:53 | 입력 : 김도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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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 선전이 감춘 노동 현장의 빈곤

인터넷 캡쳐
인터넷 캡쳐

노동신문이 작업장에 공구함을 마련하고 동료 노동자를 도운 사례를 내세워 “당원의 영예는 오직 실천 속에 있다”고 선전했다.

그러나 미담의 외피를 한 겹 걷어내면 오히려 북한 산업현장의 만성적인 자재 부족과 낙후된 노동환경, 그리고 모든 일상적 선행마저 노동당의 정치적 성과로 포장하는 체제의 속성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보도에 따르면 락원기계종합기업소 감속기직장의 한 작업반장은 노동자들이 사용할 공구가 부족하자 직접 나무 공구함을 만들고 예비공구와 수리공구를 모았다. 이후 다른 작업반 노동자들까지 그의 공구를 빌려 사용하게 되면서 더 큰 공구함을 마련했고, 작업반원들도 공구 마련에 동참했다고 한다.

신문은 이를 “집단주의적 인생관”과 “참된 당원의 성실성”으로 칭송했다. 하지만 정상적인 산업현장이라면 생산에 필요한 기본 공구와 예비부품을 기업이 체계적으로 공급하고 관리하는 것이 당연하다.

노동자가 개인적으로 공구를 마련하고, 다른 작업반까지 찾아와 이를 빌려야 했다는 사실은 미담이라기보다 생산현장의 물자 부족과 관리체계의 취약성을 보여주는 대목에 가깝다.

특히 “예비공구가 부족하고 공구함도 작아” 노동자가 스스로 해결책을 마련했다는 설명은 국가와 기업이 담당해야 할 생산 기반의 책임을 개인 노동자의 충성심과 헌신으로 떠넘기고 있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개인의 선행까지 ‘당적 분공’으로 포장

북창화력발전련합기업소 노동자의 사례도 마찬가지다. 보도는 한 노동자가 작업장에 적응하지 못하던 동료를 지속적으로 돕고, 같은 작업조에서 일하며 기술을 가르쳐 결국 “혁신자”로 성장시켰다고 소개했다. 동료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고 돕는 행위 자체는 어느 사회에서나 긍정적으로 평가받을 일이다.

문제는 노동신문이 이 인간적인 배려마저 “스스로 받아안은 당적 분공”으로 규정한다는 점이다.

아픈 동료를 돌보고, 적응하지 못한 직원을 격려하며, 재능을 발견해 자신감을 갖게 해주는 일까지 노동당에 대한 정치적 충성의 증거로 환원한다. 개인의 선의와 동료애가 그 자체로 존중받기보다 반드시 ‘당원다운 행동’이라는 정치적 의미를 부여받아야 하는 것이다.

더욱 눈길을 끄는 것은 집단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노동자를 두고 “사람들의 말밥에 올랐다”, “집단에 몸을 잠갔다”고 표현한 부분이다.

북한 사회에서 노동자는 단순한 직장인이 아니라 조직생활에 철저히 편입돼야 하는 존재이며, 집단에서 벗어나거나 적응하지 못하는 행위 자체가 정치적·사회적 압박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혁신자’라는 이름의 끊임없는 동원

북한 선전에서 빠지지 않는 단어가 바로 ‘혁신자’다. 공구를 마련해도 혁신, 동료를 도와도 혁신, 생산량을 높여도 혁신이다. 그리고 그 성과는 곧바로 노동당의 지도력과 당원의 충성심으로 연결된다.

하지만 노동현장의 진정한 발전은 개인의 희생과 정신력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충분한 설비와 공구, 안정적인 전력과 원자재, 합리적인 임금과 노동시간, 노동자의 권리와 안전이 보장되어야 한다.

북한이 수십 년째 ‘자력갱생’, ‘집단주의’, ‘충성의 실천’을 반복해서 강조하는 이유도 역설적으로 국가가 노동자들에게 제공하지 못하는 것을 개인의 헌신으로 메워야 하는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공구 하나 부족한 문제조차 국가와 기업의 시스템 개선보다 모범 당원의 충성심으로 해결하고, 직장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노동자의 문제도 복지나 상담 제도보다 동료 당원의 헌신으로 해결하도록 요구한다.

필요한 것은 ‘당원의 영예’가 아니라 노동자의 권리

신문은 이 두 사례를 통해 “당원의 영예”를 강조했지만, 정작 기사 어디에서도 노동자 개인의 권리나 생활수준, 보상에 대한 언급은 찾아보기 어렵다.

누가 더 많이 희생하고, 누가 더 많이 집단을 위해 헌신했으며, 누가 당이 요구하는 모범을 충실히 실천했는지가 평가의 기준이다.

그러나 정상적인 사회라면 노동자가 기본 공구를 직접 마련해야 하는 현실부터 개선해야 한다. 동료를 돕는 선행 역시 정치적 충성으로 포장할 필요가 없다.

공구함 하나를 놓고도 ‘당원의 영예’를 이야기해야 하는 사회. 그 선전의 이면에서 정작 읽어야 할 것은 당원 개인의 미담이 아니라, 기본적인 생산조건마저 노동자의 희생과 충성심에 의존해야 하는 북한 경제의 구조적 한계다.

노동자의 선행은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 선행을 이용해 체제의 결함까지 미화하는 순간, 미담은 선전이 된다.

김·도·윤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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