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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A 가톨릭 433] 추락하는 이카루스

2026-08-17 08:10 | 입력 : 리베르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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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런 케리아티 Aaron Kheriaty is director of the Bioethics, Technology, and Human Flourishing Program at the Ethics and Public Policy Center. 윤리·공공정책센터 생명윤리·기술·인간 번영 담당


“그녀는 하늘에서 추락하는 그 소년을 결코 보지 못하리라.” Mumford & Sons는 「Icarus」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태양이 시야에서 사라져가던 순간, 이카루스는 적어도 자신의 날개가 녹아내렸고 자신이 땅을 향해 곤두박질치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깨달았다.

그러나 앤서니 파우치는 이 모든 광경을 보고도 자신이 여전히 태양을 지나, 평범한 인간은 범접할 수 없는 어떤 지고천(至高天)의 영역을 향해 상승하고 있다고 믿는 듯하다. 그는 하늘에서 추락하는 소년을 결코 보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땅에 부딪히는 순간에는 필경 큰 고통이 따를 것이다.

지난주 파우치는 미국 상원 국토안보·정부업무위원회에 출석해 증언하라는 소환장을 받았으며, 위원장 랜드 폴 의원과 다른 공화당 의원들로부터 세 시간 동안 집중적인 질의를 받았다. 질의 주제에는 코로나19 팬데믹의 기원, 기능획득(gain-of-function) 연구, 봉쇄조치, 백신 피해, 억제되었던 코로나19 치료법, 기록 폐기, 그리고 파우치가 자신을 위해 총 100만 달러가 넘는 현금 포상을 확보하려고 공공 자원과 인력을 이용했다는 의혹 등이 포함되었다.

짧은 모두발언 뒤, 파우치는 상원의원들이 던진 111개의 질문 모두에 똑같이 답했다. “저는 미국 헌법 수정 제5조에 따른 권리를 근거로, 정중히 답변을 거부합니다.”

파우치는 현장에 함께 나온 여섯 명가량의 변호사들과 수시로 귓속말을 나누었다. 그 가운데 한 명은 상원의 허가를 받지 않은 채 거듭 발언하려다가 퇴장당했다. ‘미국의 의사’ 파우치는 조시 홀리 상원의원이 그를 조롱하듯 “오늘이 무슨 요일입니까?”, “지금 매고 있는 넥타이는 무슨 색입니까?”라고 물었을 때조차 완강하게 수정 제5조상의 묵비권을 행사했다. 상원 청문회는 이미 하나의 정치적 연극이 되어버렸고, 특히 소셜미디어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이 초현실적인 장면은 그 장르를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렸다.

파우치의 변호인단은 이제 식은땀을 흘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그에게 실제로 수정 제5조를 원용할 법적 권리가 있었는지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의 의뢰인은 바이든 대통령에게서 11년에 걸쳐 저질렀을 수 있는 명시되지 않은 연방 범죄들에 대해 포괄적 사면을 받았다. 이는 전례가 없고 법적으로도 의문이 제기될 만한 형태의 면책이다.

그 사면이 유효하다고 가정한다면, Brown v. Walker(1896) 판결에 따르면 사면은 일반적으로 수정 제5조에 따른 자기부죄 거부 특권을 소멸시킨다. 따라서 당사자는 법정이나 대배심, 또는 의회 청문회에서 그 행위들에 관해 강제로 증언하도록 요구받을 수 있다. 증언을 거부할 경우 의회모독 절차로 이어질 수 있으며, 랜드 폴은 이미 이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러한 책략이 초래할 수 있는 법적 결과와는 별개로 - 그리고 의회의 전반적인 무기력함을 생각하면 실제로는 아무 결과도 없을 가능성이 크지만 - 이번 장면은 파우치라는 인물의 성품을 들여다볼 수 있는 창을 제공했다.

청문회를 앞둔 며칠 동안 폴 상원의원은 파우치의 이른바 ‘일기’를 공개했다. 이는 개인적인 일기장이 아니라, 연방 공무원이 정부 컴퓨터를 사용해 작성한 정부 기록이다. 그 내용은 놀라울 정도다. 예컨대 이 기록들은 파우치가 코로나19의 기원, 봉쇄조치, 백신의 효능, 그리고 세계적으로 중대한 다른 공중보건 문제들에 대해 단지 틀렸을 뿐만 아니라, 대중을 알고도 기만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필자는 주장한다.

코로나19 기간 자신의 행위에 관해 파우치가 처음으로 선서 아래 증언을 강요받은 것은 상원에서가 아니라, 내가 원고 중 한 명으로 참여했던 Missouri v. Biden 사건에서였다. 우리는 연방정부가 온라인 검열을 통해 시민들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주장했으며, 최근 정부와의 합의는 그 주장을 확인해주었다고 필자는 본다.

2022년 11월 23일자 파우치 기록에는 우리 사건에서 이루어진 자신의 증언 녹취에 대한 회고가 담겨 있다. 그의 기록 거의 모든 페이지에서 그렇듯, 파우치는 자신의 눈부신 성과를 스스로 칭찬했다. “말하지 않을 수 없지만, 나는 대단히 잘했다. 법무부 변호사들도 자신들이 지금까지 본 증언 가운데 최고의 수행 중 하나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상원 청문회에서의 모습과 마찬가지로, 실제 그의 증언은 공개적인 굴욕의 연습이나 다름없었다. 파우치는 마음에 들지 않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똑같이 틀에 박힌 무응답으로 일관했다. 그는 증언 과정에서 무려 178번 “기억나지 않는다”고 답했다. 마치 원인불명의 급성 기억상실증이라도 발병한 듯, 코로나19 기간 자신이 내렸던 사실상 모든 중대한 결정의 과학적 근거나 논거에 관한 기본적인 기억조차 손상된 모습을 보였다. 그는 자신의 기록에서 우리 측 변호사가 감히 그런 질문들까지 했다고 불평했다.

과거의 행동이 미래의 행동을 예측해주는 것이라면, 파우치는 최근 상원 청문회에서 보여준 자신의 훌륭한 활약을 두고도 틀림없이 스스로를 칭찬했을 것이다. 국민이 선출한 공직자들을 향한 그의 거만한 묵묵부답은, 그가 지혜와 권력, 영향력, 명성, 외모와 카리스마에서 그들보다 너무나 월등하기 때문에 그들의 하찮은 질문에 응답하기 위해 자신을 낮출 필요조차 없다고 믿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그는 제정신인 미국인이라면 누구든 그 영상들을 보고, 자신에게 끝없이 몰두한 무한한 자만심의 소유자, 그러면서도 수많은 사람의 삶과 건강에 막대한 영향력과 권력을 행사한 뒤에도 자신의 행동에 대해 답하기를 거부하는 한 남자만을 보게 되리라는 사실을 태연하게도 깨닫지 못하는 듯하다.

파우치가 뉴스에 등장할 때마다 일론 머스크는 X에 “내 대명사는 Prosecute/Fauci(기소하라/파우치다)”라고 올리곤 한다. 재게시 횟수를 보면, 심지어 일론 머스크의 기준으로도 엄청난 수의 환멸한 미국인들이 이에 동의하는 듯하다.

학교 폐쇄로 수년의 교육 기회를 잃은 사람들, 강제로 맞아야 했던 주사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 또는 나처럼 접종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직장을 잃은 사람들, 병원에서 죽어가는 사랑하는 가족의 곁을 지키는 것을 금지당했던 사람들, 장기간의 봉쇄로 우울증이나 약물 재발, 자살 충동을 겪었던 사람들은 이제 누구든 마음만 먹으면 확인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문서화된 파우치의 기만과 조작 행위에 대해 법적 책임이 뒤따라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파우치의 ‘일기’에 대한 논평은 주로 그의 놀라운 허영심과, 새롭게 나타나는 과학적 증거나 자료와 진지하게 씨름하려 한 흔적이 눈에 띄게 없다는 사실에 집중되어 왔다. 그는 세계적인 위기 한복판에서도 각각의 언론 출연, 유명 인사들의 지지, 상류층의 칵테일파티 초청을 강박적으로 기록했다. 여기에는 자신을 ‘현존하는 가장 섹시한 남성’으로 선정해달라는 아첨 섞인 청원과, “나에게 반한 할머니들”에 관한 이야기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처럼 유독한 수준의 자기애는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을 낳은 듯하다. 즉, 가장 기초적인 자기인식마저 가로막는 정도의 눈멀음이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죄 자체가 이미 그 죄에 대한 벌이라고 말했다. 파우치의 기록에는 언론이 자신을 이용한 만큼 자신도 언론을 이용하고 있었다는 사실, 또는 자신이 생물안보와 제약산업 체계가 위기를 활용해 자기들의 정치적·경제적 목적을 달성하는 과정에서 하나의 종이인형 같은 상징물로 이용되었으며 이제는 희생양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흔적이 없다.

그는 왜 그토록 많은 미국인이 자신을 경멸하는지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듯하다. 추락하고 있으면서도 파우치는 자신이 상승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마땅히 느껴야 할 수치심이나 정당한 굴욕감을 더 이상 경험할 수 없는 상태 - 그런 경험이 아무리 불쾌하다 하더라도 - 는 이미 일종의 개인적 지옥에 들어가 있는 것과 같다. 자기 정신이라는 감옥에 갇힌 채, 자신을 가두고 있는 쇠창살조차 볼 능력을 잃어버린 상태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것이 연방교도소보다도 더 가혹한 형벌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감옥에 갇힌 사람에게는 적어도 너무 늦기 전에 자기 자신에 관한 진실을 직시하고 그것과 화해할 기회라도 있기 때문이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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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명 |2024.11.14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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