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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캡쳐 |
북한 김정은이 광복절을 계기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답전을 보내 북러관계의 “보다 훌륭한 미래”를 강조했다. 그러나 북한이 말하는 ‘정의의 공동투쟁’ 뒤에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병력과 무기를 투입하며 급속히 군사동맹화하고 있는 북러관계의 불편한 현실이 자리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김정은은 15일 푸틴에게 보낸 답전에서 러시아 대통령을 ‘친근한 벗’이라고 부르며 “정의를 위한 공동의 투쟁사와 친선의 고귀한 전통을 이어온 조러관계를 당신과 함께 인도하여 양국관계의 보다 훌륭한 미래를 확고히 내다볼 수 있게 된 데 대해 자긍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김정은은 특히 러시아가 “나라의 주권과 안전이익, 영토완정을 수호”하기 위한 사업을 반드시 성취할 것이라는 확신도 거듭 나타냈다. 문제는 북한이 말하는 ‘주권 수호’가 누구의 주권을 의미하느냐는 점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유엔총회는 2022년 압도적 다수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침략’ 결의를 채택하고 러시아군의 철수를 요구했다. 그런 전쟁을 지원하면서 ‘정의’와 ‘주권’, ‘영토완정’을 말하는 것은 스스로의 논리를 뒤집는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영토와 주권은 외면하면서 러시아의 군사행동만 ‘주권 수호’라고 주장하는 선택적 논리에 불과하다.
‘친선’ 넘어 피로 맺어진 군사협력
오늘의 북러관계는 단순한 외교적 친선 수준을 이미 넘어섰다. 김정은과 푸틴은 2024년 6월 평양 정상회담에서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을 체결했고, 이 조약에는 한쪽이 무력침공을 받아 전쟁상태에 처할 경우 다른 쪽이 군사적 지원을 제공할 수 있는 상호지원 조항이 포함됐다.
이후 북한군은 실제 러시아에 투입됐다. 러시아와 북한은 2025년 4월 북한군이 쿠르스크 지역에서 우크라이나군과 전투를 벌였다는 사실을 공식 확인했다. 한국과 우크라이나 측 추산으로 2024년 러시아에 보내진 북한군은 약 1만4천~1만5천 명에 달한다.
무기 지원도 이어지고 있다. 로이터가 정리한 우크라이나 및 독립기관들의 분석에 따르면 북한은 러시아에 수백만 발의 포탄과 박격포탄, 탄도미사일, 장거리 포병 및 방사포 체계를 공급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런 현실을 놓고 보면 김정은이 말한 ‘보다 훌륭한 양국관계의 미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경제와 문화교류의 확대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병력·탄약·미사일과 전장 경험까지 주고받는 군사협력의 장기화를 포함할 가능성이 크다.
광복의 역사까지 현재의 전쟁에 끌어들여
더욱 주목되는 것은 북한이 8·15 해방의 기억을 오늘날의 북러 군사협력과 연결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김정은은 답전에서 일제 패망 당시 소련군의 역할을 강조하며 과거의 ‘공동투쟁’을 현재의 북러관계로 이어지는 역사적 근거처럼 제시했다. 김정은이 올해까지 3년 연속 광복절을 전후해 평양 해방탑을 찾은 것도 이러한 정치적 메시지와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1945년의 역사와 2026년의 우크라이나 전쟁은 전혀 다른 문제다. 일제의 패망과 한반도의 해방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러시아가 현재 벌이고 있는 전쟁에 대한 북한의 군사지원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연결하는 것은 역사에 대한 정치적 편집이다.
과거 소련군의 대일전을 기리는 것과 오늘날 북한 청년들을 러시아 전장에 보내는 것은 같은 차원의 문제가 될 수 없다.
광복의 의미가 외세로부터 주권을 되찾는 데 있다면 오히려 다른 나라의 영토와 주권 역시 동일한 원칙으로 존중해야 한다. 그런데 북한은 ‘자주’와 ‘주권’을 끊임없이 외치면서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을 지원하고 있다.
자신의 주권만 절대적이고 다른 나라의 주권은 강대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식이라면 그것은 원칙이 아니라 편의적 선전이다.
‘전략적 관계’ 표현 빠졌지만 북러 밀착 변화로 보기는 어려워
이번 김정은의 답전에서는 최근 북러관계를 설명할 때 빈번하게 사용했던 ‘전략적 관계’라는 표현이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북러 밀착에 이상기류가 생겼다고 판단하기는 어렵다.
푸틴은 이번 광복절 축전에서 양국 관계가 높은 수준의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도달했다는 취지로 평가했고, 실제 양국의 군사협력 역시 계속되고 있다. 표현 하나의 유무보다 병력과 무기, 조약으로 연결된 구조를 보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결국 김정은의 이번 답전이 보여주는 것은 북러관계의 ‘아름다운 미래’라기보다 국제적 고립을 돌파하려는 북한과 장기전을 지속하려는 러시아 사이의 이해관계가 얼마나 깊게 결합됐는가 하는 현실이다.
북한은 이를 ‘정의의 공동투쟁’, ‘형제적 친선’, ‘주권 수호’라고 포장한다. 하지만 그 말 뒤에서는 북한군이 타국의 전장에서 싸우고 북한산 포탄과 미사일이 전쟁에 투입되고 있다. 유엔에서도 북한의 대러 병력·무기 지원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해방을 기념하는 날에 필요한 것은 새로운 전쟁동맹을 찬양하는 일이 아니다. 다른 민족의 전쟁에 북한 주민과 청년들의 생명까지 투입하면서 이를 ‘정의’라고 부르는 순간, 광복의 역사마저 체제와 전쟁을 위한 선전도구로 전락한다.
김정은이 말하는 북러관계의 ‘보다 훌륭한 미래’가 평화와 주민의 삶이 아니라 더 많은 무기와 병력, 더 깊은 군사적 결속을 의미한다면, 그것은 북한 주민에게도 한반도에도 결코 훌륭한 미래가 될 수 없다.
김·성·일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