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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오늘] 8·15에 되풀이된 북한의 항일신화

2026-08-15 20:46 | 입력 : 김도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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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은, 대성산혁명열사릉·항일혁명열사추모비 참배
- 광복 81주년에도 ‘조선혁명군이 조국해방 이룩’ 서사 반복

인터넷 캡쳐
인터넷 캡쳐

북한이 광복 81주년을 맞아 다시 한번 ‘항일혁명 전통’을 전면에 내세웠다. 그러나 그 중심에는 일제 식민지배에서 벗어난 한민족 전체의 해방사가 아니라 김일성과 이른바 ‘항일빨치산’을 조국해방의 주역으로 부각시키는 북한 특유의 혁명신화가 자리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8월 14일 대성산혁명열사릉과 항일혁명열사추모비를 찾아 참배했다. 노동당과 정부, 군부 고위 간부들이 대거 참석했고 김정은 명의의 화환과 노동당 중앙위원회·국무위원회·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내각 명의의 화환이 잇달아 진정됐다.

김정은은 이 자리에서 항일혁명투사들이 “나라와 민족을 구원하고 존엄을 되찾았다”고 주장하고, 이들의 정신을 “후손만대에 이어가야 할 사상정신적 재보”라고 규정했다. 또 “백두의 혁명전통”을 계승하는 북한의 사회주의 위업이 “영원히 필승불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표면적으로는 항일투쟁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행사다. 그러나 북한의 8·15 기념행사는 오랫동안 단순한 역사 추모를 넘어 김일성 일가의 통치 정통성을 재확인하는 정치의식으로 기능해 왔다.

광복의 복합적 역사는 사라지고 ‘김일성 항일혁명’만 남았다

한반도의 해방은 어느 한 개인이나 한 조직의 군사행동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국제사적 사건이다.

일제 식민통치에 맞선 국내외 독립운동가들의 오랜 투쟁이 있었고, 중국 대륙과 만주, 연해주 등지에서 다양한 계열의 항일운동이 이어졌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광복군을 비롯해 수많은 독립운동 세력도 존재했다. 여기에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연합국에 패배하고 소련이 대일전에 참전하면서 일본 제국이 붕괴한 국제정치적 상황이 맞물려 1945년 8월 해방이 찾아왔다.

그런데 북한 선전에서 이러한 복합적인 역사는 극도로 축소된다. 대신 김일성과 그를 중심으로 한 항일무장투쟁이 사실상 조국해방을 완수한 결정적 세력이었던 것처럼 묘사된다. 이번 보도에서도 김정은은 이른바 ‘조선혁명의 개척세대’가 조국과 인민의 존엄과 자유를 되찾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위대한 수령님의 사상과 영도를 충성으로 받들어 조국해방의 역사적 위업 실현에 공헌한 항일혁명열사들”이라는 표현은 북한이 8·15를 어떤 시각으로 해석하는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독립운동의 역사가 김일성을 중심으로 재편되고, 수많은 독립운동 세력은 주변부로 밀려난다.

‘민족의 해방’보다 ‘백두혈통의 정통성’

북한이 광복절마다 항일혁명 전통을 강조하는 이유는 현재의 권력구조와 직접 연결돼 있다.
북한에서 ‘백두의 혁명전통’은 단순한 역사용어가 아니다. 김일성에서 김정일,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3대 세습을 정당화하는 핵심 정치서사다.

김일성이 항일무장투쟁을 통해 나라를 해방했고, 김정일이 그 혁명을 계승했으며, 김정은이 다시 그 유업을 완성한다는 구조다.

따라서 항일혁명사의 강조는 과거를 기념하는 동시에 현재의 김정은 체제에 충성해야 한다는 정치적 메시지로 연결된다.

이번 행사에서도 항일투쟁에 대한 추모는 곧바로 “우리식 사회주의의 전진발전”과 “필승불패”로 이어졌다. 80여 년 전 항일투쟁과 오늘날 김정은 체제를 하나의 연속된 혁명사로 묶는 전형적인 북한식 역사서술이다.

역사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권력의 정통성을 증명하는 도구로 사용하는 셈이다.

독립운동의 다양성을 지운 ‘독점적 항일사관’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역사관이 한민족 독립운동사의 다양성을 사실상 지워버린다는 점이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은 특정 이념이나 특정 인물의 독점물이 아니었다. 민족주의자와 사회주의자, 종교인, 학생, 노동자, 농민, 해외 교포들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독립을 위해 싸웠다.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의열투쟁, 외교독립운동, 광복군 활동 등 한국 근현대사는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으로 이루어졌다.

그럼에도 북한에서는 이러한 독립운동의 다원적 역사를 김일성 중심의 ‘혁명전통’ 아래에 종속시켜 왔다.

북한 주민들이 접하는 역사에서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은 단순한 독립운동의 한 부분이 아니라 사실상 조선 해방사의 출발점이자 완성점으로 제시된다. 이는 역사교육이라기보다 지도자 숭배를 위한 정치서사에 가깝다.

8·15를 체제선전의 날로 만드는 북한

광복절의 의미는 어느 정권이나 어느 특정 정치세력의 소유가 될 수 없다. 일제 식민통치에서 벗어나 민족의 자유를 되찾은 날이며, 독립을 위해 희생한 수많은 사람들을 함께 기억하는 날이다.

그러나 북한에서 8·15는 ‘민족 전체의 해방’보다 ‘김일성 항일혁명의 승리’를 강조하는 정치적 기념일로 변질돼 왔다.

이번 김정은의 혁명열사릉 참배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 “항일혁명투사들의 공산주의적 이상”과 “백두의 혁명전통”, “우리식 사회주의의 필승불패”를 하나의 서사로 연결한 것은 광복의 역사적 의미보다 현재 체제의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한 메시지에 가깝다.

더욱 역설적인 것은 ‘자주’와 ‘해방’을 강조하는 북한이 오늘날 주민들에게 정치적 선택과 표현의 자유를 허용하지 않은 채 최고지도자에 대한 절대적 충성을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과거의 항일투쟁을 아무리 반복해 강조해도 그것이 오늘날 주민들의 자유를 대신할 수는 없다. 진정으로 항일 선열을 기리는 길은 그들의 희생을 특정 가문의 통치 정당성을 위한 신화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독립운동의 복잡하고 다양한 역사를 사실 그대로 인정하고, 그들이 목숨을 걸고 되찾고자 했던 인간의 자유와 존엄을 오늘의 주민들에게 돌려주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광복 81주년에도 북한이 내놓은 것은 새로운 역사 성찰이 아니라 또다시 ‘백두혈통’으로 귀결되는 오래된 혁명신화였다.

김·도·윤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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