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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A 가톨릭 432] 치유주의는 어떻게 학문적 기준을 무너뜨렸는가

2026-08-16 08:07 | 입력 : 리베르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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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R. 트루먼 Carl R. Trueman is a professor of biblical and religious studies at Grove City College and a fellow at the Ethics and Public Policy Center. 성서학·종교학 교수, 윤리·공공정책센터 연구원


데럴 폴이 『First Things』에 쓴 제이슨 아데이 스캔들에 관한 훌륭한 글은 오늘날 학계에 만연한 여러 문제를 정확히 짚어낸다. 내가 직접 증언할 수 있듯이, 이러한 문제들은 너무나 오랫동안 뿌리내려 있어, 그것들이 그토록 부도덕하지만 않았다면 ‘유서 깊은’ 문제라고 불러도 될 정도다. 부패의 뿌리는 수십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30년 전, 나는 영국의 명문 러셀 그룹 대학 가운데 한 곳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었다. 학과에서 가장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었던 나는 아무도 맡고 싶어 하지 않는 행정 보직을 떠맡게 되었다. 바로 시험 담당관이었다. 시험 일정에서부터 채점에 이르기까지 모든 시험 업무를 감독하는 자리였다.

어느 날 한 동료가 한 학생의 과제가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의 내용을 한 글자도 빠짐없이 표절한 것이라고 내게 알려왔다. 당시에는 학생들이 이런 자료를 온라인으로 손쉽게 구할 수 있던 시대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 학생은 직접 손으로 베껴 썼던 모양이다. 그 결과 묘한 일이 벌어졌다. 본문은 문자 그대로 원문과 똑같았지만, 구두점에는 여러 오류가 생겨 있었다.

대학 규정에 따라 나는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했고, 대학 내 최고 수준의 교수 몇 명으로 구성된 학문적 기준 위원회 앞에 출석했다. 나는 학생의 과제와 백과사전 원문 사본을 나눠준 뒤, 다음과 같이 간단히 말하며 문제 제기를 시작했다.

“학생의 과제와 백과사전의 글을 비교해 보시면, 이것이 문자 그대로 베낀 것임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용납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그 순간, 내 인생은 영원히 바뀌었다. 위원회의 한 고위 위원이 내 말을 끊고 물었다.

“왜 그것을 용납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까?”

나는 그 순간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학자로 살아오면서 완전히 할 말을 잃었던 몇 안 되는 순간 가운데 하나였기 때문이다.

곧이어 또 다른 질문이 날아왔다.

“이 학생을 문제 삼기로 결정하는 데 그의 인종이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닙니까?”

나는 이 학생을 가르친 적도 없고, 만난 적도 없으며, 단지 동료 교수로부터 받은 신고에 따라 행동했을 뿐이고, 그의 인종적 배경이 무엇인지도 전혀 몰랐다고 설명했다. 징계 청문회가 내가 그 학생을 처음 본 자리였다.

그러자 다음 질문이 이어졌다.

“그렇다면 소수 인종 학생들의 이름조차 알아둘 생각이 없었다는 말입니까?”

이제 피고석에 앉은 사람은 내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제 학생이 아닙니다.”

나는 더듬거리며 말했다.

청문회는 사실상 그것으로 끝이었다. 나는 내가 늘 학문에서 가장 심각한 잘못이라고 배워왔던 행위, 곧 ‘표절’을 다루기 위해 그 방에 들어갔다. 증거도 명백했다. 그러나 그 방을 나설 때 나는 정말 내가 인종차별주의자인 것은 아닌지 스스로 의심하고 있었다. 이후 그 학생은 부정행위를 내게 알려준 동료 교수에게도 인종차별 혐의를 제기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동료는 토니 벤을 지지하는 사회주의자였고, 그 사실이 결국 그가 이 악의적인 비난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되었다.

표절은 학계에서 가장 심각한 범죄다. 자기 아내를 살해한 사람도 그의 학문적 저작 자체는 여전히 진지하게 평가받을 수 있다. 루이 알튀세르를 생각해 보라. 그러나 다른 사람의 저작을 훔쳐 자기 공로로 돌린 사람은 학자로서 진지하게 받아들여질 수 없다.

하지만 나는 그날, 진리가 그 시대의 치유주의적 취향에 종속되는 학계에서는 일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사실을 배웠다. 그런 학계의 목적은 사람을 긍정해 주고 안심시키는 데 있다.

전통적인 진리 개념은 개인에게 어떤 요구를 한다. 현실 앞에서 자신을 진리에 맞추도록 요구하며, 때로는 희생까지 요구한다. 그러나 치유주의적 진리 개념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그것은 현실 자체를 희생시키기를 요구한다. 현실을 억압적인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저작을 훔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과 같은 학문적 기준이 그런 목적을 방해한다면, 학문적 기준이야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식이다. 아니, 모든 객관적 기준이 그렇다.

이런 현상이 학계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진리에 대한 치유주의적 관념과 정치 영역 사이의 긴밀한 연관성은 이른바 ‘워크(woke)’ 문화가 절정에 달했던 2018년에서 2022년 무렵 분명하게 드러났다. 평생 비판이론 책 한 권 펼쳐보지 않았을 법한 수많은 사람이 갑자기 비판이론에 동의하는 것을 공적 덕목의 정통성을 판별하는 표지(shibboleth)처럼 선언했다. 그리고 그것을 부정하거나, 심지어 그것에 대해 침묵하는 것조차 폭력 행위로 간주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다.

왜 이런 소셜미디어의 주민들은 비판이론을 일종의 정통 교리처럼 받아들였을까?

그 이유는 비판이론의 상투적 문구들이 그들을 형성해 온 치유주의 문화의 정서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피해자 의식, 특권, 억압, 책임 전가라는 언어는 이제 터무니없을 정도로 과장되었지만, 치유주의 문화의 통화와도 같은 것이다. 정체성 정치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분류 체계로 환원할 수 있는 비판이론적 접근법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정적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그 반대편 역시 자신들이 싫어하거나 불신하는 사람들을 배척하기 위해 유사한 치유주의적 방식을 사용했다. 예를 들어 많은 사람은 ‘워크’나 ‘문화 마르크스주의’라는 용어의 의미를 지나치게 확대하여, 자신들보다 조금이라도 왼쪽에 있다고 여겨지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그 범주에 집어넣고 신뢰를 훼손하려 했다.

그러한 수사는 잘못된 주장을 논박하기보다는, 상대방은 그저 악한 사람들이므로 아예 상대할 필요가 없다고 자기편을 안심시키는 기능을 더 많이 했다.

우파의 이른바 ‘edgelord’들과 ‘BLM(Black Lives Matter)’ 활동가들에게는 적어도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하나는 ‘진리’의 본질과 목적에 대한 치유주의적 이해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과 의견이 다른 사람이나 사상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안전하지 않다고 느끼는 감정이다.
(“에지로드(edgelord)”는 충격적이거나 금기시되는 말을 하며 멋있거나 어두운, 혹은 파격적인 모습을 보이려는 사람을 가리키는 인터넷 속어이며, ‘블랙 라이브스 매터(Black Lives Matter)’는 인종 차별과 경찰 폭력에 맞서 싸우는 전 세계적인 주요 사회 운동을 말함)

그 결과 사람들은 온라인을 비롯한 여러 공간에서 자신들의 ‘안전한 공간(safe space)’으로 후퇴한다. 그곳에서는 이견이 허용되지 않는다.

문제는 대학 캠퍼스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것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피해자 의식과 원한은 진리를 속에서부터 도려내는 데 이용되었고, 그런 다음 좌파든 우파든 자신들의 불만을 내세우는 어떤 집단이든 진리를 자신들의 목적을 위한 도구로 만들어 버렸다.

내 말을 다시 인용하자면, 나는 그것을 용납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치적 좌우 양극단의 급진주의자들은 아마도 내게 이렇게 되물을 것이다.

“왜 그것을 용납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까?”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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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명 |2024.11.14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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