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성 비오 10세회는 네 명의 새 주교에 대한 불법 서품을 강행했고, 바티칸은 예상대로 그 행위가 교회 분열적 행위이며 자동 파문이라는 벌칙을 초래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번 파문은 1988년의 파문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다. 당시 파문은 관련 주교들에게만 한정되었지만, 이번 파문에는 사제와 평신도를 포함하여 어떤 방식으로든 성 비오 10세회에 공식적으로 속한 모든 사람이 포함된다.
따라서 이번 파문에는 최종적 성격이 서려 있으며, 여러 교회법적 구별을 아무리 세세하게 늘어놓는다 해도 이를 얼버무릴 수는 없다. 여기에 교황 레오가 성 비오 10세회 총장과 직접 만나기를 거부한 사실까지 더해지면, 바티칸이 특유의 ‘교회적 언어’ 방식으로 성 비오 10세회에 이제 그만하면 충분하다고 말하고 있다는 결론을 피할 수 없다.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화해와 정상화를 위한 여러 시도가 있었고, 그 시도들은 성 비오 10세회의 거듭된 거부로 응답받았다. 이제 바티칸은 마침내 그러한 화해가 가능하다는 척하는 일을 멈출 때가 되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성 비오 10세회 총장 다비데 팔리아라니 신부 자신도 사실상 같은 말을 했다. 그는 페르난데스 추기경과의 추가 대화를 중단하면서, 그러한 대화는 헛된 일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그러고 나서 그는 교황 레오가 자신을 만나주지 않았다고 탄식하며, 성 비오 10세회를 바티칸의 태만으로 피해를 본 일종의 무고한 희생자로 묘사했다.
그러나 이미 사실상 화해가 불가능하다고 말한 사람을 교황이 왜 만나야 한단 말인가? 교황 알현의 가시성과 정당성, 그리고 미소 짓는 사진 촬영의 기회까지 그에게 부여하여, 성 비오 10세회가 마치 어떤 합법적 교회 현실인 것처럼 보이게 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이 교착 상태는 성 비오 10세회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다. 팔리아라니 신부가 신앙교리부와의 협상을 계속하고, 성 비오 10세회가 적어도 문서상으로는 충성을 추구한다고 주장하는 베드로좌와의 화해가 앞으로 나아갈 유일한 길임을 인정하려는 진정한 의지를 보여주었다면, 그는 결국 교황 알현을 얻었을지도 모른다. 참으로 ‘전통적인’ 가톨릭 신자라면 누구나 그리스도의 대리자와 화해하기 위해 하늘과 땅을 움직일 것이며, 이를 이루기 위해 신학적 양보도 기꺼이 할 것이다.
이것이 가리키는 바는 성 비오 10세회의 존재 이유 자체가 거부에 있다는 점이다. 그 단체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공의회 이후의 개혁들, 그리고 여러 교황들의 교도권에 저항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러므로 성 비오 10세회가 수십 년 동안 비방해온 바로 그 로마의 권위에 대해 화해적 태도를 취하는 것은, 자신들의 가장 깊은 정체성을 부정하지 않고서는 애초에 불가능했다.
그들이 근대주의적이고, 프리메이슨적이며, 개신교화된 교회라고 여기는 것을 거부하는 일이 그들의 DNA 안에 있다. 그것은 그들의 기원 신화이자 구성적 신조다. 요즘 흔히 쓰는 표현대로 말하자면, 그것은 결함이 아니라 기능이다.
바티칸이 지적하고 있는 것은 바로 반역에서 태어난 단체로서 성 비오 10세회가 지닌 이 본질적 성격이다.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성 비오 10세회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새 전례에 대해 날카로운 신학적 이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다.
교회 안에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바오로 6세 미사에 비판적인 사람들이 많지만, 그들 가운데서도 로마에 대한 순명을 유지해온 이들이 있다. 베네딕토 교황조차 공의회에 대한 자신의 주석에서 공의회의 결함들과, 적어도 갱신이나 해명이 필요한 요소들을 지적한 바 있다.
따라서 성 비오 10세회가 공의회의 가르침이 단지 사목적이고 확정적이지 않은 것이었기 때문에 그 가르침에 이견을 제기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논점을 흐리는 말에 불과하다. 성 비오 10세회는 논쟁적 사안들에 대해 신학적 이견을 공손하게 표명하는 수준을 훨씬 넘어섰다. 그들은 선동적이고 초토화하듯 몰아붙이는 수사로 공의회와 공의회 이후의 전체 기획을 문제 삼았고, 그것이 근대주의 이단들로 가득 차 있다고 단죄했다.
성 비오 10세회는 전통에 대한 자신들만의 사적 신학 해석을 무기화했고, 자신들이 ‘참된 가톨릭’과 르페브르가 전적으로 만들어낸 추상적 허구인 ‘영원한 로마’를 구현한다고 주장하면서, 유효한 보편 공의회와 공의회 이후 모든 교황의 교도권에 맞섰다.
성 비오 10세회 지지자들은 이러한 현실로부터 주의를 돌리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고, ‘그렇다면 저쪽은 어떠냐’는 식의 논법에 매달려 왔다. 그들은 우리 가운데 많은 이들이 그랬듯, 독일 ‘시노달 길’의 문제적 성격을 지적하며 로마가 이에 대해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고 불평한다. 그러나 로마는 독일 측의 여러 요청을 명시적으로 거부했다.
여기에는 평신도가 미사 중 강론을 하도록 허용하는 일, 동성 결합을 공식 전례 예식으로 축복하는 일, 그리고 교구 안에서 최고 목자로서 주교가 지니는 중심적 역할을 주변화하는 새로운 통치 구조를 세우는 일이 포함된다. 불법적인 주교 서품을 감행한 성 비오 10세회를 징계하는 것은 독일 측을 겨냥한 바티칸의 경고 사격일 수도 있다.
파문은 설령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해도 슬픈 결과다. 또한 파문은 오직 징벌적인 것만이 아니라 교정적 목적을 지니는 것이기에, 성 비오 10세회에 관련된 많은 사제들과 평신도들이 이번 일을 정신이 번쩍 드는 순간으로 받아들이기를 바란다.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명제를 매우 좁은 방식으로 붙들고 있는 성 비오 10세회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갑자기 그 ‘교회 밖’에 속한 일부가 되었다는 사실은 분명 충격적인 일일 것이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