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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캡쳐 |
김정은이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의 신설 대상들을 현지지도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새로 건설된 갈마관광철도역과 응급치료소를 돌아보며 시공 상태, 운영 준비, 설계와 법규 보완 문제까지 직접 지적했다는 내용이다. 겉으로만 보면 관광 인프라와 의료 편의시설을 갖춘 현대적 해안관광지구의 완성을 앞둔 듯 보인다.
그러나 이 보도는 북한 체제가 주민의 삶보다 보여주기식 치적 사업에 얼마나 집착하고 있는지를 다시 한번 드러낸다.
통신은 갈마관광철도역이 “불과 1년 사이”에 현대적으로 건설됐다고 선전했다. 김정은은 이를 두고 지방철도역 개건의 기준을 세우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정작 북한 주민들이 매일 이용하는 지방 철도와 교통망은 노후화, 전력난, 운행 불안정에 시달리고 있다.
관광객을 위한 철도역은 치적의 상징으로 포장되지만, 주민의 생존과 이동권을 보장하는 기본 교통 인프라는 여전히 방치되어 있는 것이다.
관광지구 가까이에 철도역을 짓고 관광열차 운영을 전문화하겠다는 계획도 마찬가지다. 북한 당국은 이를 경제 발전과 관광 활성화의 성과처럼 내세우지만, 외국 관광객 유치와 체제 선전을 위한 공간에 국가 자원을 집중하는 것이 과연 주민 생활 향상과 직결되는지는 의문이다.
식량난과 의료난, 에너지 부족이 계속되는 현실에서 해안관광지구는 주민을 위한 공간이라기보다 권력의 성과를 전시하기 위한 무대에 가깝다.
이번 현지지도에서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은 김정은이 철도역 마감 시공의 부족점, 응급치료소 내부 배치와 설계 결함 등을 직접 지적했다는 점이다. 통신은 이를 세심한 지도와 현명한 통치의 사례처럼 묘사하지만, 거꾸로 보면 북한의 건설 행정과 설계·감독 체계가 최고지도자의 현장 지적 없이는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모든 문제를 최고지도자의 ‘말씀’으로 해결하는 구조는 전문성과 제도보다 개인 우상화가 앞서는 북한식 통치의 한계를 그대로 드러낸다.
응급치료소 건설 역시 선전의 대상이 되었다. 김정은은 구급소생실, 수술실, 검사실 등을 돌아보고 의료일군 대열과 의료봉사의 질을 강조했다. 그러나 북한 주민들이 체감하는 의료 현실은 관영매체가 묘사하는 현대적 응급의료와 거리가 멀다.
의약품 부족, 의료장비 노후화, 지역 간 의료 격차는 오래된 문제다. 관광지구 안의 응급치료소는 화려하게 소개되지만, 일반 주민들이 사는 지방 병원과 진료소가 같은 수준의 의약품과 설비, 전문 인력을 갖추고 있는지는 묻지 않는다.
김정은은 해마다 20개 시·군에 현대적인 병원을 계속 건설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병원 건물만 새로 짓는다고 의료 체계가 개선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지속적으로 공급되는 의약품, 전력, 의료 인력, 감염 관리, 응급 대응 체계다.
건물 중심의 치적 경쟁은 주민 건강권의 본질을 가릴 뿐이다. 북한이 정말 주민 생명과 건강을 우선한다면 관광지구용 응급치료소보다 먼저 전국의 낙후된 의료시설과 약품 공급 체계부터 정상화해야 한다.
이번 보도는 김정은이 건설법 보완, 시공 품질 평가, 설계 심의, 예산 작성, 유지보수 책임까지 언급했다고 소개한다. 그러나 법과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는 사회라면 이런 기본적 행정 절차가 최고지도자의 현지지도 보도 속에서 새삼 강조될 이유가 없다.
북한에서 법은 주민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라기보다 당의 지시를 집행하는 수단으로 기능해왔다. 건설법 보완을 말하면서도 정작 주민의 재산권, 노동권, 안전권, 알 권리는 보장되지 않는 것이 북한의 현실이다.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는 북한이 오랫동안 대외적으로 과시해온 대표적 관광 개발 사업이다. 하지만 그 화려한 외피 뒤에는 강제 동원과 자원 집중, 선전 효과를 우선하는 체제 운영 방식이 자리하고 있다.
국가의 한정된 재원과 노동력이 주민 생활의 기초를 세우는 데 쓰이는 것이 아니라, 최고지도자의 치적을 꾸미는 상징 사업에 투입되는 구조야말로 비판받아야 할 핵심이다.
통신은 이번 현지지도를 통해 김정은의 세심함과 애민성을 부각하려 했다. 그러나 주민의 삶이 아닌 관광지구, 민생의 절박함이 아닌 건축미학, 의료 현실이 아닌 응급치료소 전시 효과를 앞세우는 보도는 오히려 북한 체제의 우선순위가 어디에 있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진정한 경제 발전은 관광지구의 외관에서 나오지 않는다. 진정한 의료 개선도 지도자의 현장 지적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주민이 굶주리지 않고, 자유롭게 이동하고, 아플 때 치료받고, 국가의 선전 도구가 아니라 존엄한 인간으로 대우받을 때 비로소 발전이라고 부를 수 있다.
원산갈마의 새 철도역과 응급치료소가 아무리 현대적으로 포장된다 해도, 그것이 북한 주민 전체의 삶을 바꾸지 못한다면 결국 또 하나의 전시용 건축물에 지나지 않는다.
김정은 정권이 내세우는 관광 치적은 화려할지 몰라도, 그 뒤에 가려진 북한 주민의 고통은 여전히 지워지지 않는다.
김·성·일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