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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캡쳐 |
6·25전쟁 76주년을 맞이 우리는 다시 한 번 묻게 됩니다. 한반도에 진정한 평화란 무엇인가. 총성이 멎었다고 평화가 온 것인가. 군사적 충돌이 잠시 멈추었다고 화해가 이루어진 것인가. 남북이 서로를 향해 적대의 언어를 거두지 못하고, 북한 동포들이 여전히 자유와 신앙과 인간 존엄을 박탈당한 채 살아가고 있다면, 그것을 어찌 평화라 부를 수 있겠습니까.
지난 6월 25일 명동성당에서는 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베드로 대주교의 집전으로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미사’가 봉헌되었습니다. 6·25전쟁의 상처를 기억하고, 갈라진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기도하는 미사는 그 자체로 소중한 신앙의 행위입니다.
특히 강론 중 북한이 내세우는 이른바 ‘적대적 2국가론’에 대해 분명한 반론이 제기된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었습니다. 남북은 본래 하나의 민족이며, 분단은 고착되어야 할 현실이 아니라 극복되어야 할 상처라는 점을 교회가 다시 환기한 것은 당연하고도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자리에 한 가지 아쉬움도 남습니다. 한반도의 참평화를 말하려면, 단지 정치적 구호나 외교적 해법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북한 땅에서 무너진 신앙, 짓밟힌 교회, 침묵당한 양심, 그리고 순교자들의 피를 함께 기억해야 합니다.
홍용호 프란치스코 보르지아 주교를 비롯해 공산주의 박해 아래 사라지고, 끌려가고, 죽임당한 수많은 성직자와 수도자, 평신도들의 희생을 기억하지 않고서 어떻게 한반도의 화해를 온전히 말할 수 있겠습니까.
북한의 어둠은 단지 정치 체제의 어둠만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느님을 부정하고, 인간의 영혼을 국가와 수령의 소유물로 만들려 한 무신론적 전체주의의 어둠입니다. 교회가 사라진 자리에 우상화가 들어섰고, 기도의 자리에 선전 구호가 들어섰으며, 양심의 자유가 있어야 할 자리에 감시와 공포가 들어섰습니다.
그러므로 북한의 회복은 단순히 경제가 나아지는 것, 도로가 놓이는 것, 교역이 재개되는 것만으로 완성될 수 없습니다. 북한 동포들의 마음 안에 다시 하느님을 향한 자유가 열릴 때, 신앙의 숨결이 되살아날 때, 그때 비로소 회복은 시작됩니다.
세속의 평화는 쉽게 신기루가 됩니다. 이해관계에 따라 만들어진 평화는 이해관계가 흔들리면 곧 무너집니다. 권력의 계산으로 만든 평화는 권력이 바뀌면 사라집니다. 선언문 위에 세운 평화는 현실의 폭정 앞에서 종이 한 장에 지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에서 비롯되는 평화는 다릅니다. 그것은 하느님 앞에서 인간이 인간으로 회복되는 평화이며, 원수를 미워하는 마음보다 더 큰 사랑의 질서를 받아들이는 평화입니다. 그것은 분단의 철책보다 깊은 영혼의 상처를 치유하는 평화입니다.
6·25전쟁은 단지 과거의 전쟁이 아닙니다. 그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북녘의 교회가 침묵당하고, 신앙인이 숨어 기도해야 하며, 순교자의 이름이 제대로 불리지 못하는 한, 전쟁의 상처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휴전선이 존재하는 것보다 더 깊은 비극은 북한 땅에서 하느님을 향한 자유가 박탈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안보를 말해야 하지만, 안보만으로 멈춰서는 안 됩니다. 통일을 말해야 하지만, 통일만으로 끝나서도 안 됩니다. 민족의 화해를 말해야 하지만, 그 화해의 중심에 신앙의 회복이 놓여야 합니다.
홍용호 주교는 어둠이 짙어질 때 양 떼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박해가 다가오는 것을 알면서도 교회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세속의 안전보다 목자의 소명을 택했습니다. 바로 그 신앙이 오늘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우리는 북한을 위해 무엇을 기도하고 있는가. 우리는 북녘의 정치적 변화만을 기다리고 있는가, 아니면 그 땅의 영혼들이 다시 주님을 만나는 날을 위해 기도하고 있는가.
진정한 평화는 적대적 언어의 중단만으로 오지 않습니다. 진정한 평화는 핵무기의 침묵만으로 오지 않습니다. 진정한 평화는 회담장과 선언문만으로 오지 않습니다. 그것은 어둠의 땅 북한에서 다시 십자가가 세워지고, 무너진 제대가 회복되며, 침묵당한 신앙인들이 자유롭게 주님의 이름을 부를 때 시작됩니다.
우리는 6·25전쟁 76주년을 맞아 다시 기도해야 합니다. 전쟁으로 갈라진 민족의 상처가 치유되기를, 북한 동포들의 자유와 존엄이 회복되기를, 순교자들의 피가 헛되지 않기를, 그리고 무엇보다 그 땅에 신앙이 다시 피어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도·희·윤 피랍탈북인권연대 대표 / 리베르타임즈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