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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캡쳐 |
북한 매체가 조선로동당의 이른바 「지방발전 20×10 정책」 시행 3년째를 맞아 각지 지방공업공장의 생산성과와 주민들의 체감 변화를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있다.
지난해 말 준공된 20개 시·군·구역의 식료공장, 옷공장, 일용품공장 등에서 제품 종류가 늘고 공업 총생산도 확대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북한 당국의 발표를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의문이 적지 않다. 공장이 지어졌다는 사실과 주민의 생활이 실질적으로 개선됐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북한 매체는 “생산자와 소비자의 기쁨”을 강조하지만, 정작 주민들이 자유롭게 선택하고 구매할 수 있는 시장 환경, 소득 수준, 물가 안정, 유통 체계, 전력 공급, 원자재 조달 문제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보여주기식 준공식은 많지만, 지속 가능한 생산은 별개 문제
북한은 최근 몇 년간 지방공업공장 건설을 김정은 체제의 대표적인 민생 성과처럼 포장해 왔다. 특히 “20개 시·군씩 10년 동안 지방공업을 발전시킨다”는 구호는 중앙과 평양 중심의 불균형을 해소하는 정책처럼 제시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건설 이후다. 북한식 경제에서 공장 건물은 비교적 단기간에 세울 수 있을지 모르지만, 지속적인 생산을 위해서는 안정적인 원료 공급, 전력, 설비 유지, 기술 인력, 운송망, 구매력 있는 소비자가 필요하다. 이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공장은 곧 전시용 시설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북한 매체가 “제품가지수”와 “공업총생산”의 확대를 언급하면서도 구체적인 생산량, 판매량, 주민 구매 가격, 공급 대상, 품질 평가를 밝히지 않는 것은 이 정책의 실효성을 가늠하기 어렵게 만든다. 숫자 없는 성과, 비교 기준 없는 생산 증가는 선전일 수는 있어도 정책 평가 자료가 되기는 어렵다.
주민의 ‘체감 변화’인가, 동원된 충성 경쟁인가
북한은 지방공업공장 가동을 두고 주민들이 생활상 변화를 느끼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북한에서 주민 인터뷰와 현장 반응은 대개 당국이 통제하고 연출한 형식으로 소개된다. 주민의 불만, 공급 부족, 품질 문제, 가격 부담은 공개될 수 없다.
따라서 “주민들이 기뻐한다”는 표현은 실제 민심이라기보다 체제 선전 문법에 가깝다. 북한 매체의 보도에서 주민은 자유로운 소비자가 아니라 정책 성과를 증언하는 동원된 배경으로 등장한다. 생산자는 시장에서 경쟁하는 기업인이 아니라 당 정책을 관철하는 수행자로 그려진다.
결국 “생산자와 소비자의 기쁨”이라는 표현은 지방 주민의 생활 개선을 증명하기보다, 당 정책이 성공하고 있다는 이미지를 만들기 위한 정치적 언어에 가깝다.
지방발전의 핵심은 공장 수가 아니라 주민의 자유와 생계 안정이다
진정한 지방발전이라면 공장이 몇 개 지어졌는지가 아니라 주민들이 얼마나 안정적으로 먹고살 수 있는지, 지역 경제가 자율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지, 개인과 기업이 자유롭게 생산·판매·이동할 수 있는지가 기준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북한의 지방발전 정책은 여전히 국가 주도, 당 지시, 동원 체제의 틀 안에 머물러 있다. 지방 주민에게 필요한 것은 준공식에 동원되는 공장 건물이 아니라 자유로운 경제활동과 안정적인 생필품 공급, 공정한 분배, 그리고 스스로 삶을 개선할 수 있는 권리다.
북한 당국은 지방자원 활용을 강조하지만, 그 자원을 누가 통제하고 그 이익이 누구에게 돌아가는지는 밝히지 않는다. 지역 주민이 주체가 아니라 당 정책 수행의 객체로 남아 있는 한, 지방발전은 주민을 위한 발전이라기보다 체제 유지를 위한 관리 정책에 머물 수밖에 없다.
병원·봉사소 건설도 ‘민생’보다 ‘치적’으로 소비될 위험
올해 북한은 지방공업공장뿐 아니라 병원과 종합봉사소 건설도 병행하고 있다고 선전한다. 표면적으로는 주민 생활 전반을 개선하려는 종합 정책처럼 보인다. 그러나 의료시설과 서비스 시설 역시 건물만으로 기능하지 않는다.
병원에는 의약품, 의료장비, 전문 인력, 전기와 수도, 위생 체계가 필요하다. 종합봉사소 역시 실제 서비스 공급 능력과 주민의 구매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북한이 과거에도 병원, 살림집, 문화시설 건설을 대대적으로 선전했지만, 실제 운영과 유지 관리에서 한계를 드러낸 사례는 적지 않다.
따라서 병원과 봉사소 건설 역시 김정은 체제의 치적 선전으로 소비될 가능성이 크다. 주민 건강과 복지를 위한 정책이라면 시설 준공보다 운영 실태, 의료 접근성, 비용 부담, 약품 공급 상황을 공개해야 한다.
지방 격차의 원인은 정책 부족이 아니라 체제 구조다
북한이 지방발전을 강조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그동안 지방 주민들이 얼마나 열악한 환경에 방치되어 왔는지를 보여준다. 평양과 지방의 격차, 중앙과 주변의 불균형, 특권층과 일반 주민의 생활 차이는 북한 체제의 고질적 문제다.
그 원인은 단순히 공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폐쇄적 계획경제, 당 중심 배급체계, 시장에 대한 통제, 이동의 제한, 정보의 차단, 주민 권리의 부재가 지방의 침체를 만들어 왔다. 이런 구조를 그대로 둔 채 공장 몇 곳을 새로 짓는다고 지방 주민의 삶이 근본적으로 달라지기는 어렵다.
북한 당국이 진정으로 지방을 발전시키려 한다면, 주민의 경제활동을 억누르는 통제부터 풀어야 한다. 지방 주민이 스스로 생산하고 거래하고 이동하고 정보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의 지방발전 정책은 자유 확대가 아니라 당의 통치력을 지방 깊숙이 확장하는 방향에 가깝다.
김정은식 ‘민생 정치’의 본질은 주민 삶이 아니라 충성 동원
북한은 지방발전정책을 김정은의 애민정치, 인민대중제일주의의 성과처럼 포장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주민의 삶을 개선하는 정책이라기보다 김정은 체제의 정당성을 강화하기 위한 정치 프로젝트 성격이 짙다.
공장 준공, 생산 확대, 주민 환호, 정책 관철이라는 보도 구조는 늘 같은 방식으로 반복된다. 주민은 수혜자로 등장하지만 발언권은 없다. 지역은 발전의 주체로 묘사되지만 실제 결정권은 중앙과 당에 있다. 성과는 숫자보다 구호로 제시되고, 문제점은 보도에서 사라진다.
결국 북한의 지방발전 선전은 “주민이 어떻게 살고 있는가”보다 “김정은의 정책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보여주기 위한 정치적 장치다.
진짜 질문은 하나다
북한 매체는 지방발전정책 3년째를 맞아 변화상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국제사회와 북한 주민들이 물어야 할 질문은 단순하다.
공장이 늘었다면 주민의 식탁은 실제로 나아졌는가.
생산이 확대됐다면 주민은 더 싸고 좋은 물건을 자유롭게 살 수 있는가.
병원이 지어졌다면 약품과 치료는 제대로 제공되는가.
지방발전이라면 지방 주민에게 결정권과 자유는 주어졌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한, 북한의 지방발전정책은 민생 개선이 아니라 체제 선전의 또 다른 이름일 뿐이다. 공장 굴뚝의 연기보다 중요한 것은 주민의 삶이다. 그리고 주민의 삶을 바꾸는 것은 선전 구호가 아니라 자유와 권리, 책임 있는 경제 운영이다.
김·성·일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