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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A 가톨릭 366] 평범한 수단, 비범한 목적

2026-05-22 07:26 | 입력 : 리베르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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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R. 트루먼 Carl R. Trueman is a professor of biblical and religious studies at Grove City College and a fellow at the Ethics and Public Policy Center. 윤리·공공정책센터 연구원


올해 나는 노트르담 대학교 시민권 및 헌정정부 센터에 파견되어 있었지만, 해마다 열리는 졸업식에 참석하기 위해 그로브시티 칼리지로 돌아갔다. 휴직 중이라면 졸업식에 참석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혜택 중 하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내게 졸업식은 내가 단순히 강의실 안의 익명적 존재가 아니라, 내 집을 방문했던 한 사람 한 사람으로 알게 된 학생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작별 인사를 건네는 시간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졸업식에는 두 개의 주요 연설이 있다. 하나는 저명한 초청 인사의 연설이고, 다른 하나는 뛰어난 학생의 연설이다. 올해 전자는 랜드 폴 상원의원이, 후자는 애슐리 밴 딕스혼이 맡았다. 그리고 흔히 그렇듯이, 학생 연설이야말로 단연 돋보이는 순간이었다.

폴 상원의원은 학생들에게 훌륭한 도전을 던졌다. 곧 우리 문화의 이른바 어두운 시대 속에서도 낙관적 태도를 지니라는 것이었다. 그의 초점은 인공지능에 있었고, 그의 경고는 인간 노동의 경제적 소멸에 대한 두려움이 지나치게 비약적이며 과장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위대한 기술 혁신들이 종종 고용의 종말에 대한 두려움을 동반해 왔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실제로 일어난 일은, 자동화의 도래에서 보듯이, 사회가 적응하고 경제가 변화하며 노동력이 재편되었다는 것이다. 그의 지적은 타당했다. 인쇄기나 조면기, 공장 생산라인 어느 것도 노동을 파괴하거나 막대한 여가 시간을 창출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인공지능의 발전을 둘러싼 두려움에는 더 실질적이고 더 위험한 것들도 있다. 폴 상원의원이 시간상 다루지 못한 두려움들이다. 개인적 차원과 국가적 차원의 안보 문제는 컴퓨터 프로그램의 취약점을 찾아낼 수 있는 소프트웨어의 발전을 통해 매우 첨예한 형태로 제기되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문제는 인공지능이 인간의 행위 능력을 변화시키기보다 오히려 저하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고등교육에서 이것은 논문을 작성하고, 학생을 대신해 조사와 사고를 수행하는 데 인공지능을 사용하는 모습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다. 인공지능이 만들어 낸 수업 과제는 교육을 우스꽝스러운 것으로 만든다. 물론 교육이 직장처럼 새로운 기술을 고려해 스스로를 재구성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밴 딕스혼의 연설은 중요한 기여를 했다. 그녀는 “평범한 사람은 없다”라는 연설 제목에서 C. S. 루이스를 떠올리게 하며, 인간의 행위 능력을 그 중심에 둔 자신의 대학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제시했다.

전체를 하나의 사랑 이야기로 구성하면서, 그녀는 캠퍼스의 고전적 건축물이 예비 신입생이던 자신을 어떻게 매혹했는지를 묘사했다. 이어 스윙댄스를 추는 일이든, 식사 시간에 친구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일이든, 실제 시간과 실제 공간 안에서 실제 육신을 지닌 사람들과 사회적으로 교류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했다.

그녀는 자신과 동료들이 대학 안에서 자기 자리를 찾아가던 시기에 상급생들이 보여 준 강력한 모범에 대해 유창하게 말했다. 또한 교수들이 단지 “사물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만이 아니라, 그것이 아름다움과 창조성이라는 개념들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가르쳐 주었다는 점의 중요성도 언급했다. 그녀는 하느님께서 비범한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 평범한 수단을 사용하신다고 결론지었다.

그녀는 어디에서도 “인격적 행위 능력”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모든 문장 뒤에 깔려 있었다. 인간이라는 것은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되었다는 뜻이다. 인간이라는 것은 육신을 지닌 존재이며, 피조물로서의 한계 안에서 자유로운 행위자, 곧 의도를 가지고 행동하는 존재라는 뜻이다.

우리는 우리를 창조하신 하느님을 우리의 행동과 관계 속에서 자유롭게 반향할 때 창조적인 존재가 된다. 그리고 우리는 하느님께서 주신 목적을 향해 나아간다. 그 과정에는 다른 사람들, 곧 다른 행위자들이 포함된다. 우리는 그들과 지속적으로 마주치는 가운데 생겨나는 마찰을 통해 성장하고 발전한다.

밴 딕스혼의 연설에서 너무나 분명했던 것은 대면 교육이 참으로 중요하다는 점이었다. 대학은 단순히, 아니 주된 의미에서조차, 수강한 과목이나 받은 성적이 아니다. 물론 서류상으로 보면 학생들은 교수들이 자신들을 가르치도록 비용을 지불한다. 그러나 실제로 그들은 강의실에서 동료들 옆에 앉기 위해, 식당과 기숙사에서 평생의 우정을 맺기 위해, 교수들의 연구실 방문 시간에, 심지어 교수들의 집에서까지 대화를 나누기 위해 비용을 지불한다.

요컨대 실제 시간과 실제 장소에서 실제 사람으로서 실제 사람들과 상호작용하기 위해서이다. 온라인 상호작용은 결코 그 이상의 것을 제공할 수 없다. 그것은 교육을 수동적 수용과 정보의 되풀이로 축소시키는 모조품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모델은 인공지능으로 쉽게 대체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교육 과정에서 마찰을 동반하는 모든 행위 능력, 곧 모든 인간성을 사실상 제거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올해의 졸업식은 임박한 노동시장의 붕괴에 대해 공황에 빠지지 말라는 유익한 경고를 제공했다. 그러나 동시에 교육이 마땅히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비전도 제시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우리가 미래를 향해 나아갈 때 유익한 교훈이 담겨 있다.

물론 우리는 인공지능을 이용한 부정행위가 제기하는 문제들을 다루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교육이 어떻게 우리를 참으로 인간답게 만드는지를 깊이 생각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인공지능이 지능뿐 아니라 우리 자신의 본성을 이해하는 기준까지 설정하도록 허용하게 될 것이다.

그러한 이해가 처음부터 자리 잡고 있을 때에만 우리는 인공지능을 우리의 선익을 위해 비판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밴 딕스혼은 인간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정의를 제시하지는 않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대학에서 자신에게 중요했던 것들에 대한 그녀의 긍정적인 설명은, 그녀가 그것을 강하고 직관적으로 파악하고 있음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것이 어디에서, 아니 누구에게서 오는지도 알고 있다. 그녀의 마지막 말이 이를 잘 보여 준다. “주님, 삶의 평범한 것들까지도 비범한 축복으로 만들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그녀와 같은 이들이 계속 이어지고, 더욱 많아지기를 바란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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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명 |2024.11.14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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