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국왕이 미국 국빈 방문에서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할 것인지,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소동을 일으킬 것인지에 대한 추측이 난무하는 가운데, 두 사람 사이에 실제로 존재하는 관계에 관심을 기울인 논평가는 거의 없었다.
가장 손쉬운 표현으로 대통령을 거칠고 상스러운 속물로 묘사하고, 찰스는 평생 왕실의 의무를 지켜 온 사람답게 그런 그를 참고 견디는 인물로 그린다. 또한 군주는 일종의 시인-왕처럼, 글로스터셔의 전원적 낙원을 마지못해 떠나 국가적 책무를 수행하는 인물로 묘사된다. 여기에는 어느 정도 진실이 있다. 그러나 이런 설명이 놓치는 것은 두 사람 사이에 놀라울 만큼 상당한 상호적 온정, 더 나아가 존중까지 자라났다는 사실이다.
이번 방문에서 그 온정은 분명하게 드러났다. 트럼프는 찰스를 “매우 우아한 사람”이라고 칭찬했고, 자신의 어머니 메리가 젊은 시절의 왕세자를 흠모했었다고 밝혔다. 그의 영국 애호는 유전된 것이다. “나는 국왕에게 (메리가) 왕실을 사랑했고 여왕을 사랑했다고 말했습니다. 여왕이 어떤 의식이나 행사에 등장하기만 하면, 어머니는 텔레비전 앞에 붙어 앉아 ‘도널드, 봐라, 얼마나 아름답니’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어머니는 정말로 그 가족을 사랑했습니다.”
트럼프가 왕실에 대해 품어 온 큰 존경심은 영국의 궁정 인사들이 늘 계산에 넣어 온 요소였다. 심지어 그들은 이를 활용해 왔다. 그들은 개성 없는 총리 키어 스타머가 트럼프와 비슷한 친밀한 관계를 맺을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찰스가 스타머보다 훨씬 더 카리스마가 있고, 사적 대화와 공개 연설 모두에서 훨씬 능숙하다는 점도 도움이 된다. 또한 그는 트럼프가 자신을 특별한 사람, 승리자로 느끼도록 해 준다. 국빈 방문 중 대통령에게 “HMS 트럼프”라고 새겨진 잠수함의 종을 선물한 것은 홍보적 관점에서 특히 반가운 일이었다.
두 알파 남성의 만남은, 두 사람이 사적으로는 자신들의 이전 혼인에 관해 흥미로운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도 있었겠지만, 결코 우열을 겨루는 과시의 장으로 의도된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각자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국빈 만찬에서 트럼프가 유쾌하게 “우리는 결코 그 상대(이란)가—찰스도 나보다 더 동의합니다— 핵무기를 갖도록 결코 허용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밝힌 것은 유감스러운 실언이었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어떤 자리에서든 자기 옆에 앉은 사람을 허풍의 동반자로 끌어들이는 트럼프 특유의 방식이었을 수도 있다.
국왕은 그 말을 반박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공개 발언들에는, 대통령에 대한 그의 감정이 호의적이기는 해도 무비판적이지는 않음을 시사하는 날카로운 순간들이 여럿 있었다. 국빈 만찬에서 그는 이렇게 농담했다. “대통령님께서는 최근 미국이 없었다면 유럽 국가들이 독일어를 말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감히 말씀드리자면, 우리가 없었다면 여러분은 프랑스어를 말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는 트럼프의 허풍스러운 성향을 솜씨 좋게 찌른 말이었다. 그리고 찰스가 의회에서 연설했을 때, 의회는 적어도 열두 차례의 기립박수로 열광적으로 응답했는데, 그는 “공동의 안보”를 뚜렷이 언급했고, 우크라이나 방어를 위해서는 “굽히지 않는 결의”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대다수 사람들은 이를 대통령을 향한 우회적 비판으로 보았을 것이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그의 지지는 유럽 동맹국들이 바라는 만큼 늘 일관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국왕의 환경에 대한 관심도 “자연의 다양성”이라는 언급과, “자연 고유의 경제”가 세계의 번영과 안보의 기초라는 제안 속에서 드러났다. 이는 “Drill, baby, drill(트럼프 대통령이 국내 석유 및 가스 생산을 극대화하기 위해 사용해 온 핵심적이고 반복적인 슬로건)”이라는 구호와는 전혀 다른 세계다.
대통령과 군주 사이에는 종종 뜻밖의 친밀감이 존재해 왔다. 조지 6세와 프랭클린 D. 루스벨트는 1939년 이른바 “허드슨 강변의 하이드파크” 정상회담에서 대단히 잘 어울렸고, 이는 진주만 공격 이전 제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의 지원을 얻는 데 매우 귀중한 역할을 했다. 엘리자베스 2세는 승마에 대한 관심을 공유했던 로널드 레이건과 훌륭한 관계를 맺었고, 아이젠하워에게는 자신이 만든 드롭 스콘 조리법을 보내기도 했다.
찰스와 트럼프의 관계는 그의 어머니와 레이건의 관계보다는, 그의 조부와 루스벨트의 관계에 더 가깝다. 두 사람이 만나는 세계가 다시 한 번 위기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문제를 더욱 긴장되게 만드는 것은, 많은 사람들의 눈에 미국이 더 이상 평화 중재자가 아니라 공격자로 보인다는 점이다.
찰스가 능숙하고도 재치 있게 해낸 일은 트럼프에게 우정과 국제적 연대를 동시에 보여 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백악관에 대해 상응하는 기대를 가지고 있음을 분명히 했다. 가장 변덕스러운 이 대통령이 과연 그 약속의 자기 몫을 지킬지는 앞으로 두고볼 일이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