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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A 가톨릭 513] 백색 순교를 살아가는 가족

2026-11-05 07:55 | 입력 : 리베르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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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바이겔 George Weigel is Distinguished Senior Fellow of the Ethics and Public Policy Center, where he holds the William E. Simon Chair in Catholic Studies. 윤리·공공정책센터 선임연구원


여러분이 일흔여덟 살에 당뇨병을 앓고 있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국가 안보를 위협했다는 혐의로 허울뿐인 재판에서 억울하게 유죄 판결을 받아, 경비가 가장 삼엄한 교도소의 독방에 2,200일 넘게 갇혀 있습니다.

독방을 나설 수 있는 시간은 하루 50분의 운동 시간뿐입니다. 지금 겪고 있는 일이 그만한 가치가 있느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여러분은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대답으로 “그렇습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이 바로 그 사람으로서, 억만장자 기업가에서 정치범이 되기까지의 여정을 돌아보고 있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감옥이 하느님과 함께하는 거룩한 성소임을 알게 되었다”고 진심으로 쓸 수 있겠습니까? “내가 당신의 현존에 더 가까이 다가가도록 이런 고통을 겪게 해 주신 하느님께 사실 더없이 감사드린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부당한 투옥을 “현세와 내세를 위한 기쁨이자 보화”로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 우리를 당혹스럽게 하지만, 언제나 우리에게 놀라운 결과를 가져다준다”고 쓸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이 바로 그 사람으로서,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딸에게 편지를 쓰고 있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딸이 림프종에 걸렸다는 소식을 막 전해 들은 여러분은,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말로 이렇게 쓸 수 있겠습니까?

"지극히 사랑하는 내 딸아…… 굳세어라. 너를 이 고통에서 구해 주실 주님의 구원을 믿어라. 이것은 시련이고, 하느님께서는 어떤 이유가 있어 네게 이 시련을 보내셨다. 우리가 헤아릴 수 없는 이유이지만, 우리는 믿어야 한다…… 그분께서는 분명 네가 중요하고 좋은 무언가를 맞이하도록 준비시키고 계실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어떤 일도 헛되이 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우리 주님의 은총이 네 마음을 밝혀, 이 고통에 담긴 지혜를 볼 수 있게 해 드려라.…… 걱정하지 마라. 하느님께서 네 곁에 계시며 너를 보살피시고 위로하고 계심을 굳게 믿어라."

한마디로, 여러분 자신이 지미 라이라고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순교자’를 뜻하는 영어 단어 ‘martyr’는 ‘증인’을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했으며, 오늘날에는 일반적으로 “신앙에 대한 증오로” 죽임을 당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이해됩니다. 그러나 7세기의 한 아일랜드 강론은 첫 천 년 동안의 그리스도교가 누가 ‘순교자’인지를 더 폭넓게 이해했음을 시사합니다.

"사람에게 십자가로 여겨지는 순교에는 세 가지가 있다. 곧 백색 순교, 녹색 순교, 적색 순교이다. 백색 순교란, 그로 말미암아 단식이나 노고를 겪더라도 하느님을 위하여 자신이 사랑하는 모든 것을 버리는 것이다. 녹색 순교란 단식과 노고를 통하여 자신의 악한 욕망에서 벗어나거나, 보속과 회개로 고행을 겪는 것이다."

물론 적색 순교는 그리스도께 충실하기 위하여 실제로 피를 흘리는 데서 그 이름이 유래합니다. 백색 순교를 적색 순교를 위한 준비로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복자 울마 가족을 떠올려 보십시오. 이들은 독일의 폴란드 점령기에 유대인들을 숨겨 주며 자신들의 안전과 행복을 위험에 내맡김으로써 백색 순교를 살았습니다. 결국 이들은 1944년 나치의 하수인들에게 학살당했고, 2023년 그리스도를 위하여 피를 흘린 적색 순교자로 시복되었습니다.

지미 라이는 오늘날 가톨릭교회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백색 순교자입니다. 중국의 독재자 시진핑이 그를 두려워하는 듯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지미의 백색 순교는 적색 순교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가 그의 석방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인간의 존엄과 참된 자유에 관하여 복음이 가르치는 진리를 두려움 없이 증언하는 이 사람은 감옥에서 죽음을 맞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그가 시민권을 지닌 영국으로 이주하는 대신, 중국 공산주의의 폭정에 맞서 싸우고자 홍콩에 남았을 때부터 가능성을 알고 있었던 운명입니다.

지미가 속박에서 풀려나도록 더욱 간절히 기도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연대의 의무입니다. 지미 라이의 가족을 위하여 더욱 간절히 기도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들 또한 지미처럼 남다른 용기와 은총으로 서서히 진행되는 백색 순교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미의 아내 테레사와 자녀들인 세바스티앵, 어거스틴, 클레어에게 결코 쉬운 일일 수 없습니다. 이들 역시 큰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클레어는 고된 항암 화학 요법을 시작하던 무렵 제게 보낸 편지에서, 마침 같은 시기에 폐암 수술을 받으신 레오 교황님의 쾌유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썼습니다.

박해받는 유대인들을 구하려고 목숨을 걸었던 울마 가족은 은밀하게 활동해야 했던 처지 탓에, 그들의 영웅적 행위에 마땅히 주어졌어야 할 기도의 연대를 경험할 수 없었습니다. 라이 가족의 경우는 다릅니다. 그들에게는 아흔다섯 번째 생일을 앞둔, 지칠 줄 모르는 또 한 분의 신앙의 영웅, 조지프 젠 추기경의 한결같은 지지가 있습니다. 이는 위로가 됩니다.

특히 현 홍콩 교구장에게서 가족이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습니다. 이 지역 주교가 연대의 의무를 다하지 못해 생긴 빈자리는, 보편 교회의 친교 안에 있는 우리 나머지 신자들의 기도로 어느 정도 메울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미 라이와 그의 가족과 함께 가톨릭 신앙의 이 순간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 앞에서 겸손해져야 하며, 동시에 자부심을 느껴야 합니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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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명 |2024.11.14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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