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젊은 여성들은 비현실적으로 높은 기준을 갖고 있다. 보수적인 젊은 남성들과 연애에 관해 이야기할 때 내가 자주 듣는 말이다.
여기에는 어느 정도 진실이 있다. 온라인에서 여성들은 미래의 배우자에 관한 규칙과 점검 목록을 자주 공유한다. 조회 수가 2,800만 회를 넘은 어느 게시물에서 한 여성은 자신의 이상형이 키 6피트 이상이고, 연 소득이 13만 달러를 넘으며, 지능지수가 120 이상인 남성이라고 말한다. 가급적 아이비리그 출신이고 대대로 부유한 집안에서 자랐다면 더 좋다고 한다.
다른 여성들은 첫 데이트 때 자신을 데리러 올 우버 차량을 보내 주는 것부터 발톱 관리 비용을 내주는 것까지, ‘공주 대접’에 못 미치는 것은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남성이 신발 끈을 묶거나 재채기를 하는 등 온갖 행동을 할 때 갑자기 혐오감이 드는 이른바 ‘정떨어짐’을 경험한다고 말하는 여성들도 많다. 어떤 남성도 충분히 괜찮은 사람으로 여겨지지 않는 듯하다.
그렇다고 젊은 여성들이 아무런 기준도 가져서는 안 된다는 뜻은 아니다. 어떤 기준들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 남성의 인품에 관한 기준들이 그렇다. 자신의 연인이 음란물을 보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정당한 기준 가운데 하나이다.
그런데 일부 보수주의자들은 이것마저 비현실적인 것처럼 행동한다. 음란물을 보는 연인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하면 이들은 방어적인 태도를 취한다. 그러다 갑자기 당신은 진보적 여성주의자로 치부되거나 남성의 성적 욕구를 병리적인 것으로 취급한다는 비난을 받는다. 물론 음란물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보수주의자들도 있다.
수년 동안 그 위험을 경고해 온 그리스도교 활동가들부터 금지 조치를 추진하는 공화당 인사들, 음란물이 초래하는 파괴를 기성세대 남성들이 이해해 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젊은 필자들까지 다양하다. 그러나 다른 이들은 음란물에 대한 어떠한 반대도 여성들이 내세우는 또 하나의 비현실적인 기대, 여성주의적 잔소리의 또 다른 사례로 여긴다.
그러나 이것은 피상적인 기대도, 비이성적인 ‘정떨어짐’도 아니다. 이것은 남성이 바꿀 수 있는 것이며, 어떤 남성이든 충족할 수 있는 기준이다. 남몰래 다른 여성들에게 음욕을 품고, 관계 만족도의 저하 및 외도 가능성의 증가와 관련된 습관을 지닌 상대에게 자신의 연약한 모습을 드러내거나 그를 위해 희생하고 싶지 않은 데에는 지극히 타당한 이유가 있다.
그렇다면 일부 보수주의자들은 왜 음란물을 옹호하는가? 나는 부분적으로 그들 자신이 음란물을 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진보주의자들만큼 많이 보지는 않는다. 진보적인 청년층이 하루에 한 번 이상 온라인 음란물을 볼 가능성은 보수적인 청년층의 약 두 배이다. 그러나 여전히 문제이다.
실제로 내가 최근 연구원으로 합류한 가족연구소(IFS)의 새 보고서에 따르면, 기혼 남성과 신앙을 가진 남성 가운데 상당수에게도 음란물은 문제이다. 연구진은 정기적으로 교회에 나가는 남편의 25%가 한 달에 한 번 이상 음란물을 본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교회에 거의 나가지 않거나 전혀 나가지 않는 남편의 경우에는 그 비율이 35%였다.
일부 보수주의자들은 여성주의 때문에 이 대화를 꺼릴 수도 있다. 오늘날 젊은 남성들은 평생 비난을 받고 악인으로 취급받으며, 자신의 성격적 특성마저 병적인 것처럼 느끼도록 강요받아 왔다. 이들은 자신의 남성성 때문에 비난받았고, 심지어 여성을 예의 바르게 배려하는 태도 때문에 꾸지람을 듣기도 했다. 그러니 여성들이 음란물 시청에 반대하는 말을 들으면, 남성에 대해 불평할 또 하나의 구실처럼 들리는 것이다.
나는 그러한 반응을 이해한다. 그러나 여기서 진정으로 겨누는 대상은 음란물 산업이다. 이 산업은 남성 역시 존중하지 않으며, 착취하고, 비하한다. 많은 소년이 어린 시절 우연히 온라인 음란물을 처음 접하며, 어떤 아이들은 겨우 아홉 살에 접하기도 한다. 젊은 남성들은 이러한 플랫폼 때문에 인생의 여러 해를 잃었다고 말한다. 때로는 하루 여섯 시간씩 시청하기도 한다. 현대 여성주의가 남성에게 자신이 악인에 불과하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면, 이 산업은 남성을 그저 자신의 악덕에 지배되는 존재로 전락시킨다.
게다가 음란물에 반대하는 이들이 대개 여성주의자들인 것도 아니다. 많은 진보적인 여성은 성에 대해 고리타분하거나 구식인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 않아 음란물을 용인하거나 심지어 옹호한다. 반대하는 이들은 흔히 보수적이고 신앙을 가진 여성들이다. 음란물은 이들의 혼인 생활에도 더 큰 부담을 주는 듯하다.
IFS 보고서는 신앙을 가진 부부 사이에서 음란물 이용이 더 높은 혼인 불만족률 및 이혼율과 관련되어 왔다고 지적한다. 연구진은 또한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성당에 다니는 가톨릭 신자와 명목상의 가톨릭 신자 모두, 개신교 신자와 종교가 없는 부부보다 혼인 만족도가 높고 이혼율은 낮으면서도, 자신이 느끼는 혼인의 안정성은 더 낮다고 응답했다.
이는 신앙을 가진 아내들이 음란물을 용인할 가능성이 더 낮기 때문일 수 있다. 보고서의 저자들은 남편이 숨겨 온 음란물 시청 사실을 알게 되는 일이 많은 부부의 혼인을 흔들 수 있지만, “성을 신성한 것으로 여기는, 성당이나 교회에 다니는 가톨릭 신자와 개신교 신자들에게는 특히 그럴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들의 표현을 빌리면 이렇다.
“신앙을 실천하는 가톨릭 신자 배우자는 이 영역에서 배우자가 저지르는 잘못에 대해 더 높은 기대와 더 낮은 도덕적 관용을 보일 수 있다.” 음란물로 가장 큰 상처를 받는 아내들은 혼인과 도덕을 가장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이들인 듯하다. 다시 말해 보수적인 남성들이 찾고 있는 바로 그런 유형의 여성들이다.
이 여성들은 틱톡에서 자신이 ‘정떨어지는’ 행동과 기대 조건을 나열하는 여성들만큼 널리 주목받지는 못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은 존재하며, 고통받고 있다. 온라인에서 한 아내는 가톨릭 신자인 남편의 음란물 중독을 알게 된 뒤 “완전히 무너졌다”고 말한다. 13년을 함께 살며 세 아이를 둔 그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충격”과 “배신감”을 느꼈고, 자신의 몸에 대한 인식도 무너졌다고 했다.
한편 더 젊은 그리스도인 여성들은 남자 친구의 음란물 시청 습관 때문에 결혼하기가 두렵고, 아이를 낳아야 할지에 대해서도 회의가 든다고 말한다. 이들은 좋은 아내가 되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결코 충분한 존재가 되지 못할까 봐 두려워한다.
물론 음란물 시청에 반대하는 것이 정당하려면 여성들 역시 자신에게 높은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우리 자신이 음란물을 소비하거나 온라인에서 관심을 끌기 위해 스스로를 대상화하면서 남성에게 음란물을 보지 말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두 사람이 모두 자신을 절제하고 저급한 충동에 저항할 때, 한때 상대를 통제하려는 일방적인 요구처럼 보였던 것은 상호 의무에 더 가까운 것, 사랑에 더 가까운 것이 된다. 남성과 여성은 서로에게 이러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 서로의 자유를 억누르기보다 서로의 덕을 북돋우면서 절제하도록 이끄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이것은 젊은 여성들이 낮추어서는 안 되는 기준이다. 물론 물질적인 기대가 높으면 사랑과 행복을 얻을 기회를 스스로 해칠 수 있다. 그러나 자신과 타인에게 적용하는 도덕적 기대는 높아야 한다. 음란물을 보지 않는 것은 그 가운데 하나이다. 나는 젊은 여성들이 용기 있게 그 기준을 세우고, 남성들이 자신의 관계와 자기 자신을 충분히 존중하여 그 기준을 충족하기를 바란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