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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A 가톨릭 490] 아르메니아의 꺾이지 않는 용기

2026-10-13 08:10 | 입력 : 리베르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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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럴드 맥더모트 Gerald McDermott’s most recent book is A New History of Redemption: The Work of Jesus the Messiah Through the Millennia. 최근 저서 『구원의 새로운 역사 : 수천 년에 걸친 메시아 예수님의 활동』


9월 중순, 나는 아르메니아 남부 슈니크 지역의 한 마을 지도자들과 점심 식사를 함께했다. 이웃 나라 아제르바이잔의 대통령은 수년 전부터 이 지역을 그 “고대의” 모국에 “돌려놓겠다”고 위협해 왔다. (아제르바이잔은 1918년에 건국되었다.) 실제로 이는 아제르바이잔이 역사적으로 아르메니아에 속했던 여러 지역에서 이미 자행한 일을 되풀이한다는 뜻이다.

그리스도인 주민들을 쫓아내고, 그들의 성당과 묘지를 불도저로 밀어버리며, 그 자리를 무슬림과 이슬람 사원으로 채우는 것이다. 식사 도중, 나는 마르고 다부진 체격의 예순 살 스바란츠 마을 지도자에게 아제르바이잔인들이 공격해 온다면 그와 동료 아르메니아인들은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었다. 그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는 싸울 것입니다.”

이번 여행 전까지 나는 오늘날 그 땅에 사는 아르메니아인 가운데 96%에게 그리스도교가 개인적 정체성과 민족적 정체성의 불가분한 일부라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그들은 자기 나라가 최초의 그리스도교 국가였다는 사실(서기 301년), 그리고 1,700년 동안 사산 왕조의 페르시아인, 비잔틴의 로마인, 아바스 왕조의 아랍인, 셀주크와 오스만의 무슬림에 맞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피를 흘려 왔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이 아르메니아 남부 마을 지도자에게서 들었듯이, 대부분은 조국과 그리스도교 신앙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놓을 각오가 되어 있다. 그들은 이 둘이 떼려야 뗄 수 없이 연결되어 있다고 여긴다.

튀르키예에서는 아르메니아인 집단학살, 곧 1915년부터 1923년까지 튀르키예인들이 아르메니아인 150만 명을 학살한 사건을 언급했다가 감옥에 갇히거나 더 끔찍한 일을 당할 수 있다. 이는 튀르키예가 세계에서 언론인을 가장 많이 투옥하는 나라들 가운데 하나인 여러 이유 중 하나이다. 그러나 현실은 이러한 인종 청소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슬람 국가 아제르바이잔은 아르메니아 영토를 조금씩 빼앗아 왔으며, 여러 차례의 전쟁과 공격으로 아르메니아인 1만 명 이상을 죽이고 그리스도교 문화를 지워 왔다.

아르메니아는 한때 지금보다 열 배나 넓었다. 그리스도 탄생 500년 전, 페르시아 황제 다리우스와 크세르크세스는 “아르미나”에 관해 기록했다. 폼페이우스와 카이사르 시대의 티그라네스 2세 치하에서 아르메니아 제국은 카스피해에서 지중해까지 뻗어 있었다.

4세기에 집필된 에우세비오의 『교회사』에 따르면, 유다 타대오 사도가 아르메니아 접경의 에데사에 복음을 전했다. 그로부터 200여 년이 지난 뒤, 성 그레고리오 계몽자는 어두운 구덩이에서 여러 해 동안 고통을 겪은 끝에 아르메니아의 티리다테스 임금이 앓던 정신 질환을 치유했다. 이에 감화된 임금은 자신의 왕국을 그리스도교 국가로 만들었다.

1890년대에 튀르키예인들의 아르메니아인 학살이 시작되기 전, 튀르키예는 중동에서 그리스도교가 가장 널리 퍼진 나라들 가운데 하나였다. 기록에 따르면 아르메니아계 그리스도인은 240만 명에 달했다. 수천 개의 성당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으며, 일부 지방에서는 그리스도인이 인구의 절반을 차지했다.

그러나 19세기 말, 오스만 제국이 “유럽의 병자”로 전락해 가던 무렵, 술탄 압둘 하미드 2세는 쿠르드족 병사들을 동원해 최대 20만 명의 그리스도인을 학살했다. 희생자 대부분은 아르메니아인이었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튀르키예의 무슬림 남녀들은 그리스도인들로 가득한 성당에 불을 지르면서 환호했고, “너희 예수는 지금 어디에 있느냐? 왜 너희를 구해 주지 않느냐?”고 외치며 조롱했다. 아르메니아인을 비롯한 그리스도인들은 “개”, “돼지”, 그리고 불신자를 뜻하는 “가부르들”이라고 불렸다.

이러한 양상은 1915년 더욱 조직적인 집단학살이 시작된 뒤에도 계속되었다. 영국의 역사학자 크리스토퍼 J. 워커는 『아르메니아 : 아주 간략한 역사』에서, 튀르키예가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동맹국 측에 가담한다면 독일이 “민족성을 근거로 튀르키예인들이 동쪽으로 러시아령 남캅카스에 진출하기 쉽도록 도울 것”이라고 튀르키예 지도자들과 비밀리에 합의했다고 전한다. “다시 말해, 독일은 튀르키예인들이 러시아령의 그 지역에 튀르키예 민족주의를 강요하고, 아르메니아인들을 억압하거나 절멸시키는 일을 도우려 했던 것이다.”

아르메니아인 집단학살은 그 목적을 거의 완전히 달성했다. 1920년대에 이르러 한때 막대한 규모였던 튀르키예의 그리스도인 인구는 전체 인구의 약 2%로 줄어들었다. 패트릭 존스톤의 『오퍼레이션 월드』는 1980년대 이전의 튀르키예를 세계 최대의 미복음화 국가로 꼽았다.

2023년 아르차흐(나고르노카라바흐)에서 일어난 인종 청소로 400명이 죽고 아르메니아인 12만 명이 대대로 살아온 고향에서 쫓겨난 이후에도, 튀르키예의 지원을 받는 아제르바이잔 지도자들은 고대 아르메니아의 땅을 “역사적인 아제르바이잔의 땅”이라고 계속 불러 왔다. 이들은 국제적으로 인정된 아르메니아 국경 안의 일부 지역들을 점령했으며, 휴전 협정을 위반해 인명 피해를 초래했다.

그러나 인종 청소가 끝없이 이어진다면, 하느님 나라의 전진 역시 끝없이 이어진다. 아르메니아인들은 여전히 자신을 그리스도인으로 여기며, 그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놓겠다는 의지를 보여 준다. 그리고 제이컵 퍼슬리가 전하듯, 세상의 주목을 받지 않는 가운데 튀르키예의 그리스도교 지도자들이 아르메니아의 그리스도교 지도자들과 만나고 있으며, 회개와 용서의 기적이 펼쳐지고 있다.

그러한 만남 중 한 자리에서, 한 튀르키예 목사는 자신의 선조들이 저지른 “야만 행위와 집단학살”을 고백하면 아르메니아 목사들이 분노할까 봐 걱정했다. 그는 자신이 아르메니아인이라면 튀르키예인을 용서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가 “매우 자긍심이 강해 보이는” 한 아르메니아 지도자에게 다가가 외워 둔 소개말을 읊기 시작하자, 그 아르메니아인은 곧바로 그를 끌어안았다. 튀르키예 목사는 눈물을 흘렸다. 그는 자신의 아르메니아인 “형제가 이미 용서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르메니아는 자신의 신앙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놓을 각오가 되어 있다. 또한 아르메니아는 솔제니친과 키르케고르가 모두 근대에 가장 드문 덕목이라고 여겼던 것, 곧 용기를 보여 준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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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명 |2024.11.14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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