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선교 여행 중 필리피를 방문한 바오로는 소동을 일으킨다. 그가 젊은 여자 점쟁이에게서 점을 치게 하는 피톤 영을 쫓아내자, 그 여자의 주인들은 그가 로마의 관습을 뒤엎는다고 고발한다. 군중은 바오로와 실라스를 거리로 끌고 다니고, 도시의 관리들은 그들을 매질한 뒤 감옥에 집어넣고 차꼬를 채우라고 명령한다. 한밤중에 바오로와 실라스가 찬미가를 부르는 동안 지진이 일어나 감옥이 갈라지고 문이 열린다. 이는 널리 알려진 필리피 간수의 회심으로 이어진다.
그날 밤의 기이한 사건들이 지나고 나자, 도시의 행정관들은 서둘러 그들을 떠나보내려 한다. 바오로는 떠나려 하지 않고, 협상에서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자신이 로마 시민임을 밝힌다. 이는 사도행전의 독자들에게도, 적법한 절차 없이 그를 매질하여 그의 권리를 침해한 필리피 사람들에게도 충격적인 사실이다. 지도자들은 난처해하다가, 자신들이 직접 그를 도시 밖으로 인도하라는 바오로의 요구를 받아들인다.
이는 매질이 공개적으로 이루어졌던 것만큼이나 공개적인, 상징적 사과이다. 바오로는 예루살렘에서도 시민권이라는 카드를 꺼내 든다. 로마 군사들이 가혹한 심문을 하려고 그의 몸을 잡아 늘이자, 그는 천진난만한 얼굴로 묻는다. “로마 시민인 사람을 재판도 하지 않고 채찍질해도 되는 법이 있습니까?”(사도 22,25)
로마 시민 바오로는 필요할 때에는 유대인이 된다. 그는 유대인들의 반발을 누그러뜨리려고 그리스계 혼혈인 자신의 조력자 티모테오에게 할례를 베푼다. 자신이 토라를 저버리지 않았음을 입증하기 위해, 나지르인 서원을 마치는 네 사람의 제사 비용을 부담하기로 한다. 유대인 군중이 그를 공격하자, 그는 이렇게 연설을 시작한다. “나는 유대인입니다. …… 오늘 여러분처럼 나도 하느님을 열성으로 섬기는 사람이었습니다.”(22,3) 그는 더 구체적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밝힘으로써 최고 의회에 분열을 일으킨다.
“나는 바리사이이며 바리사이의 아들입니다.”(23,6) 아테네의 아레오파고스 언덕에서 스토아학파와 에피쿠로스학파 사람들 사이에 있을 때에는 그리스 철학자처럼 제법 그럴듯하게 행동한다.
바오로는 카멜레온이다. 어떤 때에는 로마인이고, 어떤 때에는 유대인이며, 또 어떤 때에는 바리사이이고 그리스인이다. 그가 이처럼 모습을 바꾸는 것은 자신을 보호하려 하거나 두려워하기 때문이 아니다. 바오로는 카멜레온이 모든 사람을 화나게 한다는 사실을 누구 못지않게 잘 안다.
군중이 “그자를 없애 버려라!”(21,36) 하고 외칠 때에도 그는 침착함을 잃지 않는다. 어느 때 어떤 신분증을 내보여야 하는지 알려면 대단한 침착성과 판단력이 필요하다. 그의 기민함은 오직 하나의 목적을 향한 광적인 열정에 봉사한다. 바오로는 코린토 신자들에게 말한다.
“유대인들에게는 유대인처럼 되었습니다. …… 율법 밖에 있는 이들에게는 율법 밖에 있는 사람처럼 되었습니다.”(1코린 9,20-21) 그가 어떤 색으로 변하든, 그의 목표는 하나이다. “나는 복음을 위하여 이 모든 일을 합니다.”(9,23)
그리스도인들은 카멜레온 같은 바오로에게서 정치적 교훈을 배워야 한다. 물론 우리에게는 악을 조장하거나 지지할 자유가 없다. 우리는 교회를 존중하고 보호하는 후보와 정당, 시민들 가운데 특히 가장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후보와 정당, 성적 도착과 성적 파시즘에 맞서 싸우는 후보와 정당, 법을 수호하고 평화를 지키는 후보와 정당, 악을 행하는 자들을 처벌하고 선을 증진하는 후보와 정당을 지지해야 한다.
이러한 한계 안에서 우리에게는 행동할 여지가 상당히 많다. 우리가 정치 정당 및 후보와 맺는 일체감은 언제나 그리스도와 그분의 교회에 대한 일체감보다 부차적이어야 하며, 언제나 선교의 도구여야 한다. 어떤 이들에게는 하느님 나라를 확장하기 위해 특정 정당과의 강한 유대가 필요하고, 다른 이들에게는 더 느슨한 관계가 필요하며, 또 다른 이들에게는 새로운 정당에 힘을 쏟는 일이 필요하다.
“나는 공화당원이다”라고 외치는 것이 복음을 전진시키는 순간들이 있을 것이다. 때로 우리는 “내 할아버지는 민주당원이었다” 또는 “나는 조지아주 토박이다”라고 말해야 할 수도 있다. 심지어 우리의 정치적 견해를 드러내지 않는 것이 복음을 전진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인 때도 있다.
바오로의 정치는 영리한 만큼이나 효과적이다. 그가 필리피에 처음 도착했을 때, 리디아라는 여자가 회심하고 자신의 집에 신자들의 모임을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바오로는 자신에게 제기된 혐의가 그대로 남게 되면 그들이 위험에 노출될 것임을 안다. 바오로는 자신의 로마 시민권을 밝히고 혐의를 공식적으로 철회하라고 요구한다. 교회가 복음을 전하고 참하느님을 경배하는 전초기지로 자리 잡을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이다.
바오로의 기지 덕분에 행정관들은 도시 안에 “이질적인” 공동체가 뿌리내리는 것을 허용한다. 이 지역의 으뜸 도시인, 자부심 강한 로마 식민시가 타르수스 출신의 이름 없는 유대인의 요구 앞에 굴복한다.
바오로의 정치를 배우라. 예수님의 명령을 따르라. 그분께서는 거의 이렇게 말씀하시는 셈이다. 카멜레온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여라.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