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런던에서 나는 트라팔가 광장 근처를 걷다가 이런 문구가 적힌 펍 간판을 지나쳤다.
“완전 냉방. 차가운 맥주를 제공합니다.” 나는 아내를 돌아보며 웃었다.
“정말 이제는 내 나라를 알아보지 못하겠어.”
물론 나는 어느 정도 농담으로 한 말이었다. 그러나 몇몇 독자들이 내가 앞서 이 지면에 쓴 글에서 “내가 어린 시절 알았던 영국은 죽었다”고 주장한 데 대해 개인적으로 연락해 왔을 때, 이 일이 떠올랐다. 한 독자는 영국은 여전히 건재하며, 그것을 확인하려면 그저 펍에 가보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고전적인 충고인 “좀 밖에 나가봐야 한다”는 말을 아주 구체적으로 적용한 셈이다.
고백하건대, 영국의 펍은 내 삶에서 커다란 기쁨 가운데 하나였다. 나는 글로스터셔에서 길을 알려줄 때면 으레 여러 마을의 펍 이름을 기준으로 방향을 설명하곤 한다. 올여름에도 나는 그 오래된 만남의 장소들을 찾아다니며 약간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오늘날 영국 펍의 모습은 나의 기본적인 주장에 대한 반증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뒷받침하는 증거다.
내가 젊은 시절 사랑했던 그 영국의 펍, 적어도 그런 종류의 펍은 특정한 형태의 공동체를 상징했다. 따라서 그것은 사회생활을 가능하게 하는 공동의 직관과 감각의 핵심적 요소들을 구현하고 있었다.
펍에서는 굳이 음식을 주문할 필요가 없었다. 물론 대개 몇 가지 기본적인 음식은 있었고, 때로는 먹을 만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술 한잔을 하러 펍에 갔다. 그러나 여기에는 중요한 구별이 있다. 사람들은 술을 마시는 것 자체를 목적으로 펍에 가지 않았다. 사람들은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기 위해 갔고, 술은 거기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미지근하고 탄산이 거의 없는 맥주는 온갖 주제에 대한 대화를 부드럽게 이어주는 윤활유 역할을 했다. 그리고 아주 단순한 하나의 관습이 그곳에 존재하던 위계나 개인적인 장벽들을 자연스럽게 무너뜨렸다. 바로 돌아가며 한 턱 내는 것, 즉 술을 한 차례씩 사는 관습이었다.
한 사람씩 차례가 되면 바에 가서 모두의 술값을 계산하고, 잔을 들고 테이블로 돌아왔다. 그것은 단순히 공동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았다. 그 관습 자체가 공동체를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또 하나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점은 텔레비전이 없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술 한잔을 놓고 이야기를 나누려고 펍에 갔다. 낯선 사람들, 심지어 친구들과 함께 앉아 있으면서도 정신은 다른 곳으로 빼앗기기 위해 펍에 간 것이 아니었다.
펍 문화는 죽었다. 내가 기억하고 사랑했던 영국이 죽은 것과 마찬가지다.
작지만 주목할 만한 한 가지 사례를 들자면, 이제 영국 정부는 내가 누구와 함께 돌아가며 술을 살 수 있는지, 그 외국인의 종류까지 제한하고 있다.
남자는 여자가 될 수 없다고 믿는 보수적인 네덜란드 정치인과는 함께 술을 살 기회가 없다. 역사적인 그리스도교 원칙과 일치하는 내용의 소책자를 감히 썼던 저명한 핀란드 정치인과도 그럴 수 없다.
나와 비슷한 견해를 갖고 있고 그것을 공개적으로 밝혀온 외국인들은 이제 이 나라에서 환영받지 못한다. 따라서 나는 그 나라가 변함없이 활력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는 바로 그 펍 가운데 하나에 친구와 함께 갈 수도 없다.
그러나 그래도 용기를 내도록 하자. 영국 정부는 불법 이민이나 아동 성폭행 조직 문제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행동하지 못할지 몰라도, 적어도 엊그제까지만 해도 영국의 거의 모든 사람이 믿었던 것을 감히 말로 표현한 사람들은 국경 밖에 세워둘 수 있으니 말이다.
펍 자체도 변했다. 내가 태어난 마을의 지역 펍은 지난 10년 동안 주인이 여러 차례 바뀌었다. 재정적으로 수익을 내며 운영하기가 매우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것은 영국 전체의 상황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2000년부터 2025년까지 영국의 펍은 1만 6,150곳 줄어들었다. 36% 감소한 것이다. 더욱이 이 수치는 새로 문을 연 펍들의 수까지 감안한 순감소 수치다. 따라서 실제로 문을 닫은 펍의 수는 이보다 더 많다.
그 배경에는 무엇이 있는가? 세금과 사업용 부동산세가 펍 운영자들의 수익성에 막대한 압박을 가했다. 이것은 펍이 지역 공동체에서 무엇을 의미했고,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에 대해 아무런 관심도 없는 정부의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이제 펍을 찾는 사람들은 대화와 공동체의 확인보다는 음식과, 겉보기에는, 오락거리를 원한다. 과거의 공동체는 상호의존과 가까이 살아가는 삶, 그리고 상호 존중의 감각에서 생겨났다.
펍이 중심 역할을 했던 마을 공동체는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이것이 현 노동당 정부만의 잘못은 아니다. 그것은 수십 년 동안 작용해 온 사회적·문화적 힘들의 결과다. 그 힘들은 내가 알았던 영국을 지탱했던 공동체적 삶을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침식해 왔다.
그리고 나 자신도 그 침식의 일부다. 나는 수십 년째 먼 나라에서 살아왔다. 나 역시 내가 개탄하는 바로 그 현상의 한 증상이다.
그러므로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다른 사람들과 같지 않은 자신을 두고 하느님께 감사드리던 바리사이의 태도가 아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오늘날 영국에서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것―그리고 다른 형태이긴 하지만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인 것―이 어떤 중요한 것의 죽음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것은 훨씬 더 나쁜 무언가로 대체되고 있다. 공동체를 지탱하던 사회적 자본을 모두 소진한 문화, 이제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일상적이고 무심한 경멸이 하나의 특징이 되어버린 문화다.
좌우를 막론하고 주요 정치인들이 황금시간대 뉴스에서, 내가 네 살배기 손녀에게 그 뜻을 설명하고 싶지 않은 욕설을 거리낌 없이 사용하는 문화다.
그리고 집에서든 주유소에서든, 심지어 그렇다, 펍에서조차도 크고 작은 화면들을 통해 생각할 필요조차 없는 수동적인 오락이 끊임없이 쏟아져 들어오는 문화다.
그것은 바로 표현적 개인주의(expressive individualism)의 문화다. 그리고 영국의 펍은 이러한 병폐에 대한 해독제가 아니다. 오히려 이 병폐를 보여주는 하나의 증상이다.
고향에 돌아가 좋은 친구들과 펍에 앉아 미지근한 맥주 한두 잔을 마시는 것을 나는 여전히 사랑한다. 그러나 이제 그것은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것, 혹은 이미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를 내게 상기시킬 뿐인 듯해 두렵다.
내가 이런 말을 하게 되리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러나 이제 바에 다가갈 때, 차가운 맥주의 등장은 내가 두려워해야 할 것들 가운데 가장 사소한 문제가 되어버렸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