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7년 동안 가톨릭 교구에서 고위 실무직을 맡아 일했다. 그 기간 거의 내내 내가 담당한 업무에는 성직자 성적 학대로 인해 발생하는 법적·정치적·언론상의 후폭풍에 대처하는 일이 어느 정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 시절 원고 측 변호사에서 주류 언론에 이르기까지 즐겨 다루던 주제 가운데 하나는, 성적 순결을 가르치면서도 한편으로는 성범죄자 무리를 품고 있던 교회의 위선이었다. 그것은 참으로 고통스러운 경험이었지만, 그렇다고 근거 없는 비판은 아니었다. 나 자신도 부모로서, 학대를 저지른 가해자들과 그 사실을 알면서도 그들을 보호한 사람들을 처벌하는 것은 당연히 정의로운 일이라고 믿었다. 그들이 로만 칼라를 하고 있든 그렇지 않든 마찬가지였다. 피해자들에게 충분한 보상이 이루어지는 것 역시 당연했다.
그러나 내가 훨씬 덜 정의롭다고 느꼈고, 더욱 심각한 위선이 배어 있다고 생각했던 것은 공공 당국의 태도였다. 여기에는 당시 내가 살던 펜실베이니아주의 법무장관이었던 조시 샤피로도 포함된다. 그들은 자신들이 운영하는 기관들에서 동일하거나 오히려 더 심각한 학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고, 이를 민간 기관에 적용했던 것과 똑같이 엄중한 방식으로 처리하려 하지 않았다.
성적 학대와 관련한 소송에서 공공 당국은 통상 어떤 형태로든 주권면제(sovereign immunity) 뒤에 숨어 왔다. 그들의 논리는 이렇다. 민간 기관과 달리 공공기관은 국민 전체가 ‘소유’하고 있으며, 필수적인 공공서비스를 제공한다. 따라서 치명적인 규모의 소송으로부터 보호받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여기에는 성적 학대를 신고할 수 있는 기간을 매우 짧게 제한하는 조치가 포함된다. 또한 똑같은 위법행위에 대해 민간 조직에 적용되는 것보다 훨씬 낮은 수준으로 금전적 배상의 상한선을 정하는 것도 포함된다.
놀랄 것도 없이 학대 피해자들은 이 문제를 전혀 다르게 본다. 그리고 그들은 이에 대해 침묵하지 않는다. 피해자들은 주권면제가 소송이 제기될 가능성을 낮춘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정부 기관을 상대로 합의를 이끌어내려는 원고 측 변호사들이 얻을 수 있는 보상이 너무 적기 때문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공공 당국이 경계하고 감시해야 한다는 본능을 약화시키고, 사건을 은폐하려는 유혹은 오히려 키운다.
그러나 공공기관에서 벌어진 아동 강간이 민간기관에서 벌어진 아동 강간보다 덜 혐오스러운 것은 아니다. 정의의 실현과 보상을 받을 가치가 덜한 것도 아니다. 게다가 그러한 범죄가 덜 흔한 것도 아니다. 명백히 말해, 오히려 더 흔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몇 년 동안 피해자 단체들의 압력이 거세지면서 일부 주 의회는 학대 사건에서 공공기관과 민간기관의 금전적 책임 사이의 균형을 좀 더 공정하게 맞추기 위해 관련 법률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의원들이 의도했던 것과 달랐다. 공공 당국이 청소년 시설을 운영하는 데 민간보다 ‘더 낫다’거나, 그 시설들 안에서 벌어지는 성적 학대를 감독하고 단속하는 데 있어 ‘더 깨끗하다’는 환상은 이제 일주일 된 시체보다도 더 확실히 죽어버렸다.
가톨릭교회와 다른 민간 조직들은 성적 학대 문제로 혹독한 비난을 받아왔다.
이제 정부가 그 대가를 치를 차례다.
정확히 1년 전 나는 바로 이 지면에서 캘리포니아의 단 한 개 카운티 소년구금 체계에서 벌어진 성적 학대의 참혹한 규모와 그것이 초래한 재정적 영향을 지적한 바 있다. 메릴랜드의 공공시설 체계에서도 이와 비슷한 대규모 문제가 드러났다.
두 경우 모두 충격에 빠진, 그리고 과거에는 남을 향해 도덕적 훈계를 늘어놓던 의원들의 반응은 의미심장했다. 수천 건의 학대 소송으로 인해 동맥이 터진 듯 쏟아져 나가는 재정을 어떻게든 막아보려는 다급한 몸부림이었다.
8월 27일 《월스트리트저널》은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로스앤젤레스 카운티는 위탁 보호시설과 소년구금시설에서 수십 년 전에 발생한 아동 성적 학대 사건의 청구를 합의하기 위해 최대 1만1천 명에게 거의 50억 달러를 지급하기 시작했다.
문제가 하나 있다. 카운티의 최고 검사는 청구 가운데 대다수가 사기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카운티 측 변호사들은 이에 동의하지 않으며, 법정으로 갈 경우 비용이 더욱 커질 수 있기 때문에 합의금 지급을 계속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카운티는 이제 캘리포니아 전역의 지방정부와 교육구를 뒤흔드는 재정적 수렁의 진원지가 되었다. 그 출발은 어린 시절 성적 학대를 당한 생존자들이 훗날이라도 그 피해를 인정받고 배상받을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제정된 주법이었다. 주 의원들은 8월 31일 회기가 끝나기 전에 그 비용을 억제할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2019~2020년에 제정된] 이 법은 과거의 아동 성폭행에 대해 한시적으로 공소시효에 해당하는 민사상 청구 제한기간의 적용을 중단했고, 이후 피해 주장 당사자가 민사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최대 연령을 기존 26세에서 40세로 연장했으며,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데 따른 다른 장벽들도 낮췄다.
올해 초 캘리포니아 58개 카운티 가운데 19개 카운티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는, 이 법이 통과된 이후 이들이 현재 최소 124억 달러의 배상 책임에 직면한 것으로 추산됐다.”
결국 캘리포니아 의원들은 막판에 어느 누구도 완전히 만족시키지 못하는 절충안을 급조했다.
그들은 배상액 상한선을 설정하는 방안을 거부했다. 따라서 학대 피해자들은 앞으로도 공공기관을 상대로 액수 제한 없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새로운 예방조치와 신고 의무 역시 법적으로 요구된다.
하지만 오래된 사건들 가운데 상당수, 즉 성적 학대라는 문제가 거의 인정되지도, 공개적으로 논의되지도 않던 시대에 발생한 사건들에는 이제 보다 높은 수준의 증거 기준이 적용된다. 또한 이 절충안은 피해자들이 의회 위원회에서 직접 증언하는 절차를 우회하고 있어, 학대 생존자들의 추가적인 비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개빈 뉴섬 주지사는 9월 30일까지 이 절충안에 서명해 법률로 만들지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캘리포니아의 여러 관리들은 현재 주 내에서 제기되는 성적 학대 소송 가운데 상당수가 허위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실제로 일부가 허위일 것임이 분명하다.
나는 20년 넘게 성적 학대 사건에서 민간기관을 변호해온 미국 최고의 변호사 가운데 한 사람과 함께 일했다. 그의 평가는 매우 솔직했다.
198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가톨릭교회를 상대로 제기된 성적 학대 사건의 대다수는 실제로 근거가 있었다. 그러나 그 이후에는, 바로 거액의 보상금이 걸려 있었기 때문에 과장된 사건, 기억이 왜곡된 사건, 그리고 허위 사건의 숫자가 급격히 늘어났다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 기사가 지적했듯이,
“비판자들은 막대한 규모의 합의금을 받을 가능성이 소송 전문 변호사들을 끌어들였다고 말한다. 이들은 사건을 맡은 대가로 피해자가 받는 배상금의 40%를 수임료로 가져가는 경우가 많다. 일부 법률회사들은 납세자들이 부담할 비용을 억제하거나 심지어 그 규모를 산정하려는 의원들의 노력에 맞서 싸워왔다.”
뒤늦게 이루어진 발견이지만, 사실이다.
1990년대 후반이나 2000년대 초 어느 시점부터 원고 측 소송 변호사 업계는 성적 학대 소송에서 거대한 금광을 발견했다. 그리고 이 문제를 사실상 산업화하여, 밑 빠진 현금자동인출기와도 같은 거대한 돈벌이 기계로 만들어버렸다.
많은 피고 측 변호사들은 이러한 구조가 초래할 비용 문제뿐 아니라 심각한 소송 남용의 가능성까지 10여 년 전부터 의원들에게 경고했다.
그러나 의원들은 자신들은 안전하다고 생각했고, 그 경고를 대수롭지 않게 흘려버렸다. 이제 그들은 그 결과와 마주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들이 직접 만들어낸 재앙에 대해 다른 종류의 처벌을 기대하거나 특별한 동정을 바란다는 것은 이상할 뿐만 아니라 쓰라린 역설이며, 명예롭지 못한 일이다.
그들에게 맡겨진 임무는 젊은이들을 보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너무나 많은 경우 그들은 그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 더구나 자신들은 피해가면서 다른 기관들에게는 엄격하게 책임을 물었던 바로 그 기간 동안, 정작 자신들의 책임은 다하지 않았다.
공공기관에서 학대를 당한 피해자들의 고통은 민간기관에서 학대를 당한 피해자들의 고통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그들은 똑같은 관심과 똑같은 보상, 그리고 똑같은 법적 구제의 통로를 받을 자격이 있다.
고통은 훌륭한 스승이며, 개혁을 이끄는 강력한 동기다.
이제 공공 당국이 그 사실을 받아들일 때다. 핑계를 쏟아내는 일을 멈추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