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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하영을 위한 변명

2026-08-13 08:03 | 입력 : 리베르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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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적 책임과 연좌제는 구별돼야

인터넷 캡쳐
인터넷 캡쳐

8·15가 다가오면 대한민국 사회에는 어김없이 낯익은 풍경이 되풀이된다. 친일과 반일, 독립과 협력이라는 오래된 역사적 언어가 다시 소환되고, 어느 순간 그 논쟁은 역사를 성찰하는 일을 넘어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혈통과 가계를 심판하는 일로 변질된다.

최근 한 여배우가 자신은 얼굴조차 보지 못했을 중조부의 일제시기 행적 때문에 곤욕을 치르고 있다는 이야기가 알려졌다. 그 배우가 그동안 작품을 통해 대중의 사랑을 받아왔다는 사실과는 별개로, 조상의 행적이 오늘을 살아가는 후손의 도덕성을 재단하는 근거가 될 수 있느냐는 질문을 우리 사회에 던진다.

그래서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역사를 기억하고 있는가, 아니면 역사를 이용하고 있는가.

일제에 나라를 넘기는 데 적극 가담하고 민족을 배신한 자들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엄정해야 한다. 독립을 위해 청춘과 재산, 가족과 목숨까지 내놓았던 수많은 독립운동가의 희생을 기억하는 것 역시 대한민국 국민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도리다. 독립운동의 역사를 축소하거나 망각해서는 결코 안 된다. 오히려 더 깊이 연구하고, 더 정성껏 기리고, 후대에 더 정확하게 가르쳐야 한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역사적 책임과 연좌제는 구별돼야 한다. 식민지 시대를 살았던 절대다수의 조선인은 영웅도, 거물 친일파도 아니었다. 먹고살기 위해 농사를 짓고, 장사를 하고, 교사가 되고, 의사가 되고, 철도와 공장에서 일했던 평범한 백성들이었다. 그들은 식민지라는 거대한 구조 속에서 각자의 삶을 버텨야 했다. 오늘의 잣대로 그 시대 모든 직업과 모든 생존을 ‘친일’이라는 한 단어로 재단하기 시작한다면 살아남은 것 자체가 죄가 되는 기괴한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렇게 해서 독립운동가들의 명예가 더 높아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독립운동의 역사를 사회적 낙인의 도구로 사용할수록 그 숭고함은 훼손된다. 독립운동가를 존경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오늘의 누군가를 친일 후손으로 몰아세우는 것이 아니라, 나라가 어려울 때 자신의 모든 것을 내놓았던 그 정신을 배우는 것이다. 독립운동가의 이름을 더 찾아내고, 묘역을 정비하고, 후손을 예우하고, 기록을 복원하고, 학교에서 제대로 가르치는 일이 훨씬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의 역사 논쟁은 때때로 이상할 만큼 선택적이다. 대한제국이 어떻게 국권을 잃었는지, 당시 왕실과 지배층이 어떤 책임을 졌는지에 대한 냉정한 평가는 외면하면서 특정 왕실 인물을 비극적 피해자로만 미화하는 서사는 끊임없이 생산된다.

왕과 권력자에게는 연민을 베풀면서 백성에게는 역사적 순결을 요구하는 사회라면 어딘가 크게 잘못된 것이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이런 끝없는 친일 낙인찍기가 대한민국 내부의 분열을 끊임없이 재생산한다는 점이다.

북한은 오랫동안 대한민국을 공격하는 중요한 선전수단 가운데 하나로 ‘친일 청산’을 사용해왔다. 위안부, 강제동원, 친일파 문제를 대한민국 체제의 정통성을 공격하는 수단으로 끊임없이 활용했다. 물론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그 과정에서 벌어진 잘못은 사실대로 규명돼야 한다. 피해자의 고통 또한 존중돼야 한다.

그러나 북한식 역사관의 핵심은 과거를 치유하는 데 있지 않다. 과거를 오늘의 정치적 적대와 결합해 사회 내부의 갈등을 영속시키는 데 있다. 대한민국이 그 프레임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한다.

전쟁 직후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가운데 하나였다. 폐허가 된 서울 거리에서 내일을 걱정했고, 일본을 따라잡는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다. 그 시절의 상처와 열등감, 식민지 경험에서 비롯된 울분이 우리 사회 깊숙이 남아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의 대한민국은 그때의 나라가 아니다. 산업과 기술, 문화와 국방, 민주주의와 시민사회의 역량에서 세계의 중심 국가들과 당당히 경쟁하고 있다. 여러 분야에서는 일본을 추월하거나 대등하게 겨루고 있다. 이제 우리는 피해의식과 자격지심으로 스스로를 규정할 이유가 없다.

과거를 잊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강한 나라는 과거를 정확하게 기억하면서도 과거에 붙잡혀 살지 않는다.

8·15는 서로의 가계를 캐내 삿대질하는 날이어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이 식민지에서 벗어난 날이고, 자유로운 국민국가를 세울 기회를 되찾은 날이다. 그 자유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 가운데 하나가 바로 사람은 자신의 삶으로 평가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영에게 묻기 전에 우리가 먼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우리는 독립의 역사를 기리고 있는가. 아니면 독립의 역사를 빌려 또 다른 연좌제를 만들고 있는가.

이제 그 오래된 삿대질을 거둘 때가 됐다.

<論 說 委 員 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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