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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A 가톨릭 412] 세인트 존스 칼리지에서 보낸 나의 4년

2026-07-27 06:50 | 입력 : 리베르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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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 젠슨 골드 Kari Jenson Gold is a frequent contributor to First Things. 정기 기고자


"비록 그 무엇도 풀밭의 찬란함과 꽃의 영광이 빛나던 그 시간을 되돌릴 수 없을지라도,
  우리는 슬퍼하지 않으리. 오히려 뒤에 남은 것에서 힘을 찾으리."

- 윌리엄 워즈워스, 「유년기의 회상에서 얻은 불멸의 암시에 관한 송가」

최근 몇 주 동안 고전교육, 특히 위대한 고전들을 공부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많은 논의와 적지 않은 논쟁이 벌어졌다. 고전을 읽는 가장 좋은 방법을 두고 여러 주장이 제기되었고, 훌륭한 시민을 어떻게 길러낼 것인가에 관한 단언도 이어졌다. 그러다 보면 누군가는 어김없이 나의 모교이자 ‘위대한 고전의 학교’로 알려진 세인트 존스 칼리지를 언급한다.

이곳에서는 4년 동안 정전(canonical texts)으로 인정받는 고전들을 연대순으로 읽는다. 전공도, 부전공도, 2차 문헌도 없다. 모든 학생이 같은 시기에 같은 책을 읽는다.

나는 1974년, 열여섯 살의 신입생으로 세인트 존스에 입학했다. 고등학교 생활이 너무나 비참했던 나는 필사적으로 그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세인트 존스가 나를 받아주겠다고 하자, 나는 당장 10학년을 그만두어도 되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입학처장은 대수학 II 과정을 반드시 마쳐야 한다고 고집했다. 나는 그 과목은 이미 가망이 없다고 장담했지만, 곧 메릴랜드주 아나폴리스로 떠나 플라톤, 오스틴, 도스토옙스키와 함께 새로운 삶을 시작하리라는 생각으로 끝까지 버텼다.

나는 세인트 존스에서 보낸 시간을 사랑했다. 그곳은 내가 필요로 했던 바로 그때, 내게 꼭 필요한 곳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책들을 읽는 일에 나만큼이나 열광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우리는 아침부터 밤까지 책을 마시듯 탐독했다. 공식 세미나는 일주일에 두 번 저녁에 열렸지만, 대화는 아침과 점심, 저녁 식탁에서 계속되었고, 두 블록 떨어진 우리가 사랑하던 ‘리틀 캠퍼스’ 바에서는 새벽녘까지 이어졌다.

우리의 세미나가 어떠했는지 이야기해보겠다. 보통 열여덟 명의 학생이 탁자를 둘러앉았고, 두 명의 튜터가 언제나 서로 마주 보고 앉았다. 그중 한 사람이 첫 질문을 던지며 세미나를 시작했다. 당시에는 복장 규정이 있었다. 남학생은 재킷과 넥타이를 착용했고, 여학생은 드레스를 입었다.

우리는 서로를 “Mr.” 또는 “Miss”라고 불렀다. 튜터들 역시 “Mr.”, “Mrs.”, “Miss”로 불렀으므로 학생과 교수 모두가 동등한 위치에 놓였다. 다소 우스워 보일 수도 있는 이 격식은 두 겹의 축복이었다. 그것은 우리의 대화에 날카로우면서도 예의 바른 태도를 부여했고, 동시에 세인트 존스 학생들만의 유쾌한 의식을 만들어주었다.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적어도 두 시간 동안 우리는 텍스트와 씨름했다. 때로 튜터들은 우리를 자극하거나 방향을 잡아주었지만, 그들은 종종 속이 터질 만큼 침묵을 지켰다.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것처럼 느껴지는 저녁도 있었고, 눈부신 명료함을 경험하는 저녁도 있었다. ‘소크라테스식 문답법’은 몹시 답답했지만, 그것이 제대로 작동할 때면 짜릿하고도 강력했다.

당시에는 흡연이 허용되었고, 실제로 담배를 좋아하든 그렇지 않든 거의 모든 사람이 담배에 불을 붙였다. 나도 멋진 아이들과 어울리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잠시 카멜 담배에 마음을 준 적이 있다. 따라서 학생들의 책을 제외하고 탁자 위에 놓인 유일한 소품은 유리 재떨이였다.

재떨이는 어떤 명제를 설명할 때마다 빠짐없이 동원되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신입생 시절 플라톤의 이데아를 토론하던 때였다. 그리스어 ‘에이도스’(eidos)는 내 머릿속에서 영원히 유리 재떨이의 모습과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나는 1978년에 졸업했다. 그 뒤 여러 해 동안 대학과 관계를 유지하며 기부하고, 자원봉사를 하고, 신입생 모집을 도왔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미국은 암흑시대로 접어들었다. 앨런 블룸의 『미국 정신의 종말』이 1987년에 출간되었고, 비판이론은 곳곳의 대학 학과들을 정복하고 있었으며, 다양성·형평성·포용성, 이른바 DEI는 빠르게 이 땅의 지배 규범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동안 나는 세인트 존스가 이 시대적 상황을 기회로 삼아, 철저히 시대정신에 맞서는 자신의 대안을 세상에 널리 선포하기를 희망했다. 아니, 그렇게 하리라고 기대했다. 이 대학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필요한 시기였다. 새로운 지지자들을 만들어낼 기회도 이보다 클 수 없었다.

바로 지금이 때였다. 다윗이 골리앗에 맞서야 할 순간이었다. 그러나 대학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내가 제안할 때마다, 나는 무시당하거나 질책받았다. 마치 멀찍이 떼어놓아야 할 부끄러운 반동주의자처럼 취급받았다.

한편 나의 동문들은 워크주의의 광기에 맞서기는커녕 완전히 그 흐름에 올라탔다. 2018년 당시 총장이었던 마크 루스벨트는 민주당원이었는데, 단지 대학에 관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터커 칼슨의 방송에 출연했다. 그러자 동문들은 집단적인 공황 상태에 빠졌다. 어떻게 폭스 뉴스에 출연할 수 있는가? 어떻게 반대편 사람과 예의 바르게 대화할 수 있는가?

2020년 세인트 존스는 예상대로 미국의 다른 모든 기관을 앵무새처럼 따라 하며, 모든 동문에게 장문의 DEI 설문조사를 보냈다. 그 문구는 우스꽝스러웠고, 질문의 구성 방식은 비굴했다. 위대한 고전들을 널리 전하는 것을 유일한 존재 이유로 삼았던 그 별나고 작은 대학이 사과하고, 허리를 굽히고, 비위를 맞추며 구석에 웅크리고 있었다.

나는 순진하게도 위대한 고전들을 공부하면 우리가 이러한 광기에 물들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고전이 우리를 용감하고 강인하고 진실한 사람으로 만들어주리라고 생각했다. 설령 그러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예의를 갖춘 사람은 되게 하리라고 믿었다. 나는 얼마나 철저히 세상 물정을 몰랐던가. 세인트 존스 동문들의 비공식 페이스북 페이지는 다른 어느 대학의 온라인 군중과도 다르지 않은, 악의적이고 워크주의적인 훈계꾼들로 가득하다.

나는 더 잘 알았어야 했다.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도 사례는 너무나 많다. 대학과 이른바 ‘교육받은’ 계층은 언제나 우리의 최악의 어리석음에 책임이 있었다. 나치즘, 공산주의, 반유대주의, 워크주의, 트랜스젠더주의와 같은 수많은 ‘주의’가 초래한 재앙은 학위와 자격을 갖춘 엘리트들에게 빚지고 있다. 그 잔해가 우리 주변 곳곳에 널려 있다.

위대한 고전을 공부하면 우리는 더 나은 시민이 되는가? 고전은 우리를 더욱 사려 깊고 섬세하며, 용감하고 강인한 사람으로 만들어주는가? 분명 그렇지는 않은 듯하다. 해럴드 블룸은 정전이 우리에게 가르쳐줄 수 있는 것은 오직 “자기 자신의 고독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법, 곧 최종적으로 자신의 죽음과 대면하게 되는 그 고독을 사용하는 법”뿐이라고 주장했다.

어쩌면 우리는 그것으로 만족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거기에서 더 많은 것을 길어 올릴 수 있다고 희망하며 또한 믿는다. 모교에 대한 나의 분노와 실망을 생각하면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 길은 여전히 아나폴리스로 되돌아갈 수도 있다.

나는 최근 여러 동문과 겪은 경험을 한탄했지만, 홈커밍 세미나에 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여러 해 동안 나는 때때로 캠퍼스로 돌아가 동기들을 위한 재회 세미나에 참여했다. 내가 마지막으로 참석한 것은 졸업 40주년 모임 때였다. 우리는 보르헤스의 단편 몇 편, 그중에서도 특히 이해하기 어려운 텍스트들을 다루었다.

아마 서른 명쯤 되었던 우리는 예전과 똑같은 낡은 나무 탁자를 둘러앉아 텍스트와 씨름했다. 그리고 그렇다. 우리는 여전히 서로를 “Mr.” 또는 “Miss”라고 불렀다. 재떨이는 없었다. 우리 모두 노인처럼 보이도록 고안된 연극 분장을 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그 밖에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우리는 말했고, 또 들었다. 참으로 귀 기울여 들었다. 우리는 하나가 되어 텍스트를 이해하고, 인간이라는 존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기 위해 노력했다. 그 탁자를 둘러앉아 있던 그 짧은 순간 동안, 우리의 차이와 일상의 삶, 복잡하게 얽힌 과거는 공동의 사명을 위해 뒤로 밀려났다. 그것은 아름다웠고, 그것은 참되었다.

전투가 한창이던 때 세인트 존스 칼리지라는 기관은 전선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그러나 학생들이 계속해서 책을 읽고, 선의와 진지한 토론의 자세로 탁자에 둘러앉는 한 모든 것을 잃은 것은 아니다. 대학은 가장 훌륭한 순간에 아름다움과 진리 같은 시대에 뒤떨어진 관념을 여전히 믿을 수 있는 자리를 제공하고, 그 두 가지를 추구하도록 적극적으로 격려할 수 있다. 비록 잠시일지라도 학생은 자기 자신에게서 벗어나 다른 사람과 함께 선(善)을 찾아 나선다.

그러므로 우리는 “뒤에 남은 것에서 힘을 찾도록” 하자.

첫째는 책이다. 그중 일부는 영원히 당신 곁에 남을 것이며, 어쩌면 가장 좋은 친구가 되어줄지도 모른다. 페넬로페와 아킬레우스, 햄릿과 로잘린드, 안나와 피에르와 함께 살아가는 삶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풍요로운 삶이다.

둘째는 탁자다. 탁자는 세미나와 만찬 모두에 필수적이다. 인간은 몸을 지닌 피조물이기에 물리적인 만남과 연결을 필요로 한다. 대화는 언제나 같은 탁자에 함께 앉을 때 가장 잘 이루어진다.

앞으로 나아갈 길이 있다면, 바로 그곳에서 시작될 것이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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