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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돋보기] “권리보다 의무가 먼저”라는 북한의 여성관

2026-07-18 18:48 | 입력 : 김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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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의 권리와 자율성은 사라지고 충성·희생·사상 교양만 강조

인터넷 캡쳐
인터넷 캡쳐

북한 김정은이 조선사회주의여성동맹 제8차 대회 참가자들과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여성들에게 당에 대한 절대적 충성과 사상교양 강화를 주문했다.

조선중앙통신은 이를 김정은의 ‘믿음과 사랑’으로 포장했지만, 보도문 곳곳에서는 여성을 독립적인 시민이 아니라 당의 정책을 집행하고 가정과 사회를 통제하는 정치적 동원 수단으로 바라보는 북한 정권의 시대착오적 여성관이 그대로 드러났다.

통신은 김정은이 7월 17일 여성동맹 대회 참가자들을 만나 “당에서 하자고 하는 일은 절대적으로 지지하며 충직하게 받들어 나가는 조선 여성들의 고결한 충심과 특출한 혁명성”을 높이 평가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여기서 북한 정권이 여성에게 요구하는 가장 중요한 덕목은 능력도, 자율성도, 권리도 아니다. 오직 당이 지시한 일을 의심하지 않고 따르는 ‘절대적 지지’와 ‘충직한 복종’이다. 여성동맹은 여성의 권익을 대변하는 사회단체가 아니라 여성들을 당의 노선과 정책에 복종시키는 하위 정치조직이라는 사실을 김정은 스스로 확인한 셈이다.

여성에게 “향유할 권리보다 보답의 의무” 강요

이번 보도에서 가장 주목되는 대목은 김정은이 여성들에게 “향유할 권리보다 보답의 의무를 앞에 놓아야 한다”고 강조한 부분이다.

현대사회에서 국가는 국민의 기본권과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할 의무가 있다. 특히 여성 정책은 교육, 의료, 노동, 출산, 육아, 안전, 사회참여 등에서 여성의 권리와 선택권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추진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러나 북한 정권은 정반대의 논리를 내세운다. 국가가 주민에게 무엇을 보장해야 하는지를 말하기에 앞서 주민이 국가와 당에 무엇을 바쳐야 하는지만 강조한다. 여성에게는 권리를 요구하지 말고 먼저 희생하며, 국가가 제공하지 못한 복지와 돌봄까지 가정 안에서 스스로 감당하라고 압박한다.

‘보답의 의무’라는 표현은 결국 북한 여성들이 겪고 있는 경제적·사회적 부담을 개인의 충성과 희생으로 전가하기 위한 정치적 언어다. 식량과 생필품 확보, 자녀 양육, 노부모 부양, 장마당 생계 활동까지 떠맡고 있는 여성들에게 정권은 실질적인 지원 대신 더 많은 헌신과 복종을 요구하고 있다.

실패한 국가의 책임을 여성의 희생으로 떠넘겨

북한은 여성을 “가장 강인하고 견실하며 근면하고 슬기로운 존재”라고 치켜세웠다. 겉으로는 찬사처럼 들리지만, 그 이면에는 국가가 수행해야 할 책임을 여성의 노동과 인내에 떠넘기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

북한 경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국가 배급체계가 주민의 생활을 충분히 보장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많은 여성은 장마당과 비공식 경제활동을 통해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 왔다. 그럼에도 북한 정권은 여성들의 생존 노력과 경제적 기여를 정당하게 평가하기보다 이를 ‘애국적 헌신’과 ‘혁명적 의무’로 흡수하려 한다.

여성들의 고단한 삶은 정권의 정책 실패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지만, 북한 선전은 그 책임을 철저히 감춘다. 대신 여성이 더 근면하고 더 충성하며 더 많이 희생해야 국가가 발전할 수 있다는 논리를 반복한다.

이는 국가가 국민에게 책임을 지는 정상적인 통치가 아니라, 국민의 희생으로 정권의 무능과 실패를 덮는 전체주의적 통치 방식이다.

여성동맹의 첫째·둘째·셋째 과제는 ‘사상교양’

김정은은 각급 여성동맹 조직에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사상교양사업에 주력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북한 정권이 여성동맹을 어떤 조직으로 인식하고 있는지를 가장 명확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여성동맹의 우선 과제가 여성에 대한 폭력 방지나 노동환경 개선, 육아 지원, 보건의료 확대가 아니라 사상교양이라는 것이다. 여성들의 실제 생활 문제보다 당에 대한 충성심을 유지하고 주민을 정치적으로 통제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의미다.

특히 김정은은 여성들이 “당이 가리키는 오직 한길로만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다양한 생각과 선택, 자율적 판단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공개적인 선언이나 다름없다.

북한에서 말하는 여성의 ‘순결무구함’과 ‘아름다움’ 역시 여성의 인격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개념이 아니다. 당의 지시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가정과 사회에서 체제의 가치관을 충실히 재생산하는 여성만을 이상적인 여성으로 규정하는 정치적 기준이다.

‘공산주의 어머니’라는 이름의 이중 부담

김정은은 여성들에게 자녀들을 훌륭히 키우는 “공산주의 어머니, 공산주의 교양자”가 될 것을 요구했다.

이 같은 발언은 여성에게 가정의 돌봄 책임뿐 아니라 자녀의 정치사상교육까지 떠맡기고 있음을 보여준다. 여성은 노동 현장에서 생산과 사회적 동원에 참여해야 하고, 가정에서는 자녀를 양육하며, 동시에 당과 지도자에 대한 충성을 다음 세대에 주입해야 한다.

북한이 내세우는 ‘공산주의 어머니’는 여성의 모성을 존중하는 표현이 아니라 모성을 체제 유지에 이용하는 정치적 개념이다. 자녀를 한 인간으로 성장시키는 것이 아니라 당에 충성하는 ‘혁명의 후비대’로 길러내는 것이 어머니의 의무라고 규정하기 때문이다.

여성에게 사회적 노동과 가사노동, 생계 책임, 자녀 양육, 사상교육까지 모두 요구하면서도 여성의 선택권과 정치적 자유는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이를 여성 존중이나 여성 해방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행사 전체는 지도자 우상화 의식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이 촬영장에 등장하자 참가자들이 “폭풍 같은 만세”를 외쳤고, “끝없는 열광”과 “신념과 맹세의 함성”이 울려 퍼졌다고 선전했다.

그러나 이 같은 표현은 여성동맹 대회의 중심이 여성들의 현실과 권리가 아니라 김정은 개인에 대한 우상화에 있었음을 보여준다. 여성 정책을 토론하고 개선책을 마련해야 할 대회가 지도자에게 꽃다발을 바치고, 충성을 맹세하며, 기념사진을 찍는 정치행사로 변질된 것이다.

북한의 모든 정치행사가 그렇듯 이번 행사에서도 집단적 환호와 감격만 존재할 뿐 개인의 목소리나 정책에 대한 비판, 생활고에 대한 호소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참가자들이 여성들의 실제 어려움을 김정은에게 전달했다는 내용도 없고, 김정은이 여성들의 부담을 줄이기 위한 구체적인 대책을 제시했다는 내용도 없다.

오직 지도자의 ‘사랑’과 여성들의 ‘충성’만 반복된다. 이는 정책행사가 아니라 충성의식을 연출하는 정치극에 가깝다.

여성의 힘이 아니라 여성의 복종을 요구하는 체제

북한 정권은 여성동맹을 “세상에 비길 데 없는 여성들의 위력한 애국집단”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정작 북한이 원하는 것은 여성들이 자신의 권리를 인식하고 독립적인 사회적 주체로 성장하는 것이 아니다.

정권이 요구하는 여성의 힘은 비판하고 선택하는 힘이 아니라 지시에 복종하고 고통을 감내하는 힘이다. 여성의 지혜는 체제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한 지혜가 아니라 부족한 국가 지원을 대신해 가정과 사회를 유지하는 데 사용돼야 한다.

여성의 모성은 자녀의 자유로운 성장을 돕는 사랑이 아니라 충성심을 대물림하는 정치교육의 도구로 이용된다.
여성을 존중하는 국가는 여성에게 무조건적인 희생을 요구하지 않는다. 여성들이 스스로 삶을 선택할 수 있도록 권리를 보장하고, 가사와 육아의 부담을 사회가 함께 나누며, 노동과 정치 참여에서 동등한 기회를 제공한다.

그러나 북한 정권은 “권리보다 의무”를 강조하고 “오직 한길”만을 강요한다. 이것은 여성 존중이 아니라 여성 통제이며, 여성 해방이 아니라 여성의 정치적 예속이다.

김정은과의 기념사진 한 장이 북한 여성들의 고단한 현실을 바꿀 수는 없다. 북한 여성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지도자와 사진을 찍는 ‘영광’이 아니라 굶주림과 과도한 노동에서 벗어날 권리, 국가의 감시 없이 말하고 생각할 자유, 자신의 삶과 미래를 스스로 선택할 권리다.

여성에게 끝없는 충성과 희생을 요구하면서 이를 ‘사랑’과 ‘영광’으로 포장하는 한, 북한의 여성정책은 아무리 화려한 선전문구를 내세워도 전체주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동원 정책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김·성·일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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