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지의 시민권에 관한 ‘트럼프 대 바버라’ 판결은 나를 놀라게 하지 않았다. 대규모 이주는 오늘날 정치에서 가장 폭발적인 쟁점이다. 그것은 유럽의 전후 합의에 엄청난 압박을 가하고 있으며, 어쩌면 그것을 산산이 깨뜨릴지도 모른다.
미국은 이민자들을 동화시켜 온 역사가 있기에 이 문제가 덜 폭발적이기는 하지만, 이곳에서도 국경, 거주, 시민권에 관한 문제들이 정치적 갈등의 중심으로 이동했다. 존 로버츠 대법원장의 지도 아래, 대법원은 가능한 한 정치적 논란을 피하려고 해 왔다. 적어도 당분간은 선례를 따르는 것이 가장 안전한 결론이었다. 그러나 오래가지는 않을 것이다. 전면적인 출생지의 시민권은 21세기에는 유지될 수 없다.
자기들만의 나라의 시민으로 이해되었던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제외하면, 출생지의 시민권 원칙은 새로운 미국 공화국의 출발부터 작동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정의되고 공식적으로 확립된 것은 1868년 수정헌법 제14조가 채택되고 나서였다.
1857년 드레드 스콧 판결에서 대법원은 흑인들은 노예이든 자유인이든 미국 시민권을 보유하지 않으므로 백인들에게 부여된 권리와 보호를 청구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제14차 수정헌법의 목적은 해방된 노예들에게 완전한 시민권을 보장하는 것이었으며, 미국 내에서 태어나거나 귀화한 모든 사람, 그리고 미국의 관할권에 속하는 사람은 시민이라고 명백히 규정함으로써 드레드 스콧 판결을 뒤집었다.
수정헌법 제14조를 기초한 사람들이 그것이 MIT 대학원생의 자녀에게, 혹은 캘리포니아에서 수확 노동을 하다가 국경 남쪽의 자기 집을 오가는 이주 노동자들에게, 혹은 이민법을 위반하고 이 나라에 들어온 수백만 명에게 적용되리라고 상상했을 가능성은 낮다. 이러한 현실은 그들의 이해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었다. 1865년 미국 백인 거주자의 완전히 절반은 식민지 이주민들의 후손이었다. 노예무역은 1808년에 종료되었고, 따라서 흑인의 대다수 역시 오랫동안 정착해 있던 인구의 자녀들이었다.
국내 출생자의 압도적 우위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대규모 이주와 함께 약화되었다. 제한적 이민법인 1924년 이민법이 통과되었을 때, 미국 거주자 가운데 국내 출생자가 아닌 사람들의 비율은 거의 13퍼센트까지 올라가 있었다. 실제로는 출생지의 시민권 원칙이 잘 작동했다. 여행은 비싸고 고된 일이었다. 미국에 온 사람들은 머물 계획으로 왔다. 더구나 미국은 이중국적을 인정하지 않았다. 귀화를 통해 시민권을 얻으려면 모든 외국에 대한 충성을 포기해야 했다. 국내 출생자는 외국의 시민권을 취득할 수 없었다.
1960년대부터 연방대법원은 이중국적을 금지하는 법들을 무효화했다. 1960년에는 600만 명이 해외에서 방문했다. 오늘날에는 7,000만 명 이상이 사업이나 관광 목적으로 온다. 1960년 미국 대학과 대학교에 등록한 외국인 학생은 5만 명이었다. 2024년에는 그 수가 110만 명으로 불어났다. 또 다른 400만 명은 여러 비자 프로그램에 따라 임시적 합법 체류 지위를 가진 비이민자들인데, 이 역시 이전 세기와 비교하면 극적인 증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실은, 1960년에는 불법으로 이 나라에 거주하는 사람이 극히 적었다는 점이다. 지금 그 수는 1,000만 명을 넘는다.
정확한 숫자를 얻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우리는 추정할 수 있다. 미국에는 가임기 여성이 6,740만 명 있다. 불법 체류자나 임시 체류 지위를 가진 사람들의 인구는 젊은 층에 치우쳐 있기 때문에, 미국 안에는 이민과 귀화에 관한 우리의 공식 제도 밖에 있는 가임기 여성이 400만 명쯤 있을 수 있다. 이는 불법 체류자이거나 영주 의사를 전혀 밝히지 않은 이 인구 집단이 미국에서 태어나는 모든 아이의 6%를 차지할 가능성이 있음을 뜻한다.
이것은 책상머리 추측이다. 실제 숫자는 상당히 다를 수 있다. 그러나 현재의 무제한 출생지의 시민권 정책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도, 나처럼 반대하는 사람들에게도, 그것이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것은 단지 인구 변화의 원천으로서만이 아니라, 하나의 상징으로서도 그렇다.
2015년과 2016년에 중동 출신 이주민 수백만 명을 받아들인 뒤,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은 유명하게도 “Wir schaffen das”, 곧 “우리는 이것을 해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현대 서구 사회가 새로 온 사람들을 흡수하고 통합할 수 있는 개방적이고 수용적인 ethos, 곧 정신과 품격을 지니고 있다는 희망적 관념을 반영했다.
미국적 맥락에서 출생지 시민권은 바로 이 이상과 열망을 표현한다. 그렇다. 남용은 있고 우리의 이민 제도는 결함이 있으며, 어쩌면 망가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사고방식은 낙관적이다. 우리는 환대의 정신을 유지함으로써 나라를 새롭게 하고 연대성을 보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10년간의 유럽 경험은 이것이 쉽지 않을 것임을, 어쩌면 불가능할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미국은 다르다. 그러나 우리 역시 서구를, 아니 실로 전 세계를 변화시키고 있는 대규모 이주의 거대한 압력 아래 놓여 있다. 20세기에 적합했던 정책과 원칙들은, 19세기는 말할 것도 없고, 이 도전에 응답하기에는 매우 부적합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무제한 출생지의 시민권처럼 무차별적인 것은 더욱 그렇다.
‘트럼프 대 바버라’ 판결은 결산의 날을 미룰 뿐이다. 이것이 반드시 나쁜 일은 아니다. 시간의 흐름은 종종 우리의 공동생활에 관한 근본적 질문들이 성숙하도록 하고, 공적 정서가 해답을 중심으로 결집하도록 해 준다. 나는 흑인 미국인들에 대한 공정한 처우를 보장하기 위해 필요했던 행동을 미루었다고 해서 프랭클린 루스벨트를 비판하지 않는다. 한 나라가 세계대전을 치르기 위해 총동원되는 동시에 자기 사회의 구조를 변혁할 수 있다고 상상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민권에 대한 요구는 미루어질 수 있었다. 그러나 무기한으로 미루어질 수는 없었다. 미국 시민권으로 나아가는 길을 상당히 조이고 제한하라는 요구도 마찬가지다. 대규모 이주의 시대에 그러한 요구는 반드시 커질 것이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