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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캡쳐 |
조선신보는 김만유병원 혈관조영치료과의 심장혈관질환 인터벤션 치료 성과를 소개하며 “조선사람의 체질적 특성에 맞는 방법”을 적용했다고 선전했다.
절개수술 없이 저침습 방식으로 질병을 치료하는 인터벤션 치료의 임상적 의의를 강조하고, 수십 차례의 동물실험과 오랜 연구 끝에 치료법을 확립했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해당 보도는 의학적 성과를 설명하는 기사라기보다 체제 선전의 전형적인 문법을 반복하고 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표현은 “조선사람의 체질적 특성”이라는 말이다. 의학에서 환자의 신체 조건, 병력, 유전적 요인, 생활환경을 고려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를 특정 민족의 체질이라는 식으로 포장하면 과학적 설명은 흐려지고 정치적 구호만 남는다.
더구나 보도는 치료 성과의 객관적 근거를 제시하지 않는다. 몇 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했는지, 성공률은 얼마인지, 합병증 발생률은 어느 정도인지, 장기 추적 결과는 어떠한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
현대 의학에서 중요한 것은 선언이 아니라 데이터다. “효과가 즉시적이고 치료기일이 짧다”는 주장만으로는 의료 수준을 평가할 수 없다. 환자 한 명의 만족 발언을 내세우는 방식 역시 과학적 검증이라기보다 선전용 사례 소개에 가깝다.
신보는 1990년대 말 인터벤션 치료가 “몇 개 나라의 독점물”이었다고 주장하며, 이를 북한 의료진이 자체적으로 극복한 것처럼 묘사한다. 하지만 이 대목 역시 검증 가능한 기술사나 국제 의학 교류의 맥락은 생략한 채 자력갱생식 서사만 강조한다.
세계 의학의 성과 위에 발전한 치료법을 소개하면서도, 정작 국제적 표준과 비교한 평가나 학술적 검증은 보이지 않는다.
문제는 북한 의료 선전이 늘 이런 방식으로 반복된다는 점이다. 특정 병원과 의료진의 헌신을 앞세우고, “우리 식” “체질에 맞는” “독자적 방법”이라는 표현을 붙인 뒤, 체제의 우월성으로 귀결시키는 구조다.
그러나 주민들이 실제로 얼마나 안정적으로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지, 지방 병원에도 같은 수준의 치료 장비와 전문 인력이 갖춰져 있는지, 일반 주민이 비용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는지는 전혀 다루지 않는다.
인터벤션 치료는 고도의 영상장비, 소모품, 전문 의료진, 사후관리 체계가 함께 갖춰져야 가능한 분야다. 한 병원의 일부 성과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곧 북한 전체 의료체계의 발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평양의 특정 병원에서 가능한 치료가 지방의 일반 주민에게도 열려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북한 보도는 바로 그 가장 중요한 질문을 피해 간다.
의료는 주민의 생명과 직결된 영역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투명한 정보 공개와 객관적 검증이 필요하다. 치료법이 실제로 효과적이라면 임상자료와 연구결과, 장기 추적 성과를 공개하면 된다.
하지만 조선신보는 수치와 근거 대신 미화된 표현과 충성의 언어를 선택한다. 이는 의료 발전을 알리는 것이 아니라 의료 성과마저 체제 선전의 소재로 소비하는 태도다.
북한 주민에게 필요한 것은 “조선사람의 체질적 특성”이라는 구호가 아니다.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병원, 충분한 의약품, 검증된 치료법, 투명한 의료 정보, 그리고 생명을 정치보다 앞세우는 보건 체계다.
의료기술의 발전은 환자를 살릴 때 의미가 있다. 체제의 우월성을 과시하는 도구가 되는 순간, 그 성과는 주민의 삶이 아니라 선전 문구 속에 갇히고 만다.
김만유병원의 인터벤션 치료 성과가 실제로 의미 있는 의학적 진전이라면 그것은 환자와 의료진의 이름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그러나 북한식 보도는 그 성과마저 체제의 공로로 포장한다.
과학의 언어가 선전의 언어로 바뀌는 순간, 가장 먼저 사라지는 것은 환자의 권리이고, 가장 마지막까지 남는 것은 정권의 자화자찬뿐이다.
김·도·윤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