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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캡쳐 |
현충일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을 기억하는 날이다. 그날만큼은 정파의 언어가 아니라 추모의 언어가 앞서야 한다. 갈라치기의 구호가 아니라 감사와 경건의 마음이 먼저여야 한다. 국가가 국민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살아남은 세대가 먼저 떠난 이들의 희생 앞에 숙연해지는 날이 바로 현충일이다.
그런데 올해 현충일 추념사의 언어는 많은 국민에게 깊은 의문을 남겼다. 헌신, 희생, 기억, 숭모, 감사, 통합이라는 말보다 배신, 단죄, 친일재산 환수라는 단어가 더 선명하게 들렸다면, 이것이 과연 정상적인 현충일의 모습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은 중요하다. 나라를 팔고 민족을 배반한 행위가 있었다면 그것을 잊지 않는 것도 공동체의 책무다. 그러나 현충일의 중심은 어디까지나 조국을 위해 산화한 호국영령이다. 6·25 전쟁에서 이름 없이 쓰러진 장병들, 전후의 폐허 속에서도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몸을 바친 이들, 자유민주주의의 방파제가 되기 위해 피와 땀을 바친 모든 희생자들이 이날의 주인공이어야 한다.
그런데 추념의 자리에서 국민 통합의 메시지보다 분노와 심판의 언어가 앞선다면, 그것은 추모가 아니라 정치적 동원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현충일마저 과거사 프레임과 진영 대결의 언어로 채우려 한다면, 국가는 언제 국민을 하나로 묶을 수 있겠는가.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언어 선택의 배경에 여전히 국민을 편 가르고 동원하려는 사고방식이 깔려 있다는 점이다. 국가지도자의 말은 단순한 개인 의견이 아니다. 그것은 국가의 품격이며, 국민에게 보내는 신호다. 특히 현충일 추념사는 국가가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에게 바치는 공식적 예우의 언어다. 그 자리에 갈등의 단어, 단죄의 단어, 적대의 단어가 전면에 등장하는 순간, 국민은 다시 둘로 나뉜다.
국민을 하나로 묶어야 할 지도자가 오히려 국민을 과거의 적대 구도 속으로 끌고 들어간다면 그것은 비극이다. 현충일은 정파의 승리를 확인하는 날이 아니며, 특정 세력의 도덕적 우월감을 과시하는 날도 아니다. 이날은 자유대한민국이 누구의 희생 위에 서 있는지를 기억하고, 그 희생 앞에서 우리 모두가 겸손해지는 날이다.
지금 대한민국에 필요한 것은 끝없는 단죄의 언어가 아니라 공동체를 다시 세우는 책임의 언어다. 기억은 복수로 흘러가서는 안 된다. 역사 정의는 국민 분열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국가 지도자라면 더더욱 과거의 상처를 오늘의 정치적 무기로 삼기보다, 그 상처를 넘어 국민을 하나로 묶는 큰 언어를 선택해야 한다.
현충일에 가장 먼저 울려 퍼져야 할 말은 “배신”이 아니라 “희생”이다. “단죄”가 아니라 “감사”다. “환수”가 아니라 “기억”이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 앞에서 우리가 먼저 해야 할 일은 누군가를 손가락질하는 것이 아니라, 그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더 굳건히 지키겠다고 다짐하는 것이다.
국가지도자는 기억해야 한다. 국민을 갈라치기하는 지도자는 결코 국민의 상처를 치유할 수 없다. 현충일의 제단 앞에서조차 갈등의 언어를 내려놓지 못한다면, 그것은 지도자의 비극이자 대한민국 정치의 비극이다.
이제라도 현충일을 현충일답게 돌려놓아야 한다. 순국선열과 호국영령 앞에서는 정파도, 이념도, 갈라치기도 잠시 내려놓아야 한다. 그 자리에 남아야 할 것은 오직 헌신, 희생, 기억, 숭모, 그리고 자유대한민국을 지키겠다는 국민적 다짐뿐이다.
<論 說 委 員 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