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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캡쳐 |
요즘 일부 세력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향해 “왕”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묻지 않을 수 없다. 백악관 연회장 하나도 마음대로 짓지 못하는 대통령이 무슨 왕인가.
미국이라는 나라는 대통령의 권한이 강해 보일 때에도 의회, 법원, 언론, 여론, 주 정부, 시민사회가 사방에서 견제하는 제도적 장치를 갖추고 있다. 대통령이 하고 싶다고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마음대로 예산을 쓰고, 건물을 짓고, 국가의 기본 질서를 바꿀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왕권에 가까울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다.
그런데 참으로 기묘한 일이 벌어진다. 미국의 대통령을 향해서는 “왕”이니 “제왕적 권력”이니 하는 말을 서슴없이 던지는 사람들이, 정작 한국 사회 안에서 벌어지는 권력의 폭주 앞에서는 입을 닫는다.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인 삼권분립이 위태로워지고, 입법 권력이 행정과 사법의 영역까지 밀고 들어가며, 다수의 이름으로 헌정 질서의 균형을 흔드는 일이 벌어져도 그들은 침묵한다. 오히려 그것을 개혁이라 부르고, 민주주의라 포장하며, 국민의 뜻이라는 말로 권력 남용을 덮으려 한다. 이 얼마나 노골적인 이중잣대인가.
자신들이 반대하는 정치인에게는 “왕”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자신들이 장악한 권력에는 “민주주의”라는 포장을 씌운다. 반대 진영을 공격할 때만 “제왕적”이라는 단어를 꺼내 들고, 자신들의 권력 집중에는 한없이 관대하다. 이것은 단순한 정치적 수사나 표현의 과장이 아니다. 민주주의의 언어를 독점하고 왜곡하여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는 민주주의를 가장 크게 외치는 세력일수록 민주주의의 본질을 훼손하는 기묘한 장면이 반복되고 있다. 그들은 삼권분립을 말하면서도 자신들에게 불리한 사법 판단은 부정하고, 법치를 말하면서도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에 방해되는 제도는 공격한다. 표현의 자유를 말하면서도 반대 의견에는 낙인을 찍고, 국민주권을 말하면서도 국민의 다양한 목소리를 적폐와 반개혁으로 몰아붙인다.
이것이야말로 민주주의의 탈을 쓴 전체주의적 본색이다. 전체주의는 언제나 거창한 명분을 들고 온다. 국민, 정의, 평등, 개혁, 역사, 진보라는 말을 앞세운다. 그러나 그 끝에는 늘 하나의 결론이 있다. 반대자는 제거되어야 하고, 견제 장치는 무력화되어야 하며, 권력은 자신들의 손에 집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자유민주주의와 전체주의를 가르는 결정적 차이다.
미국 대통령에게 “왕”이라는 조롱을 던지기 전에, 우리는 우리 안의 권력 구조를 먼저 보아야 한다. 과연 지금 대한민국의 권력은 헌법적 견제와 균형 속에 놓여 있는가. 국회는 스스로 절제하고 있는가. 사법부의 독립은 존중되고 있는가. 행정부는 법치의 원칙 아래 움직이고 있는가. 언론과 시민사회는 권력을 감시하고 있는가, 아니면 특정 진영의 확성기로 전락하고 있는가.
이제 국민이 판단해야 한다. 누가 진정으로 권력을 제한하려 하는가. 누가 삼권분립을 지키려 하는가. 누가 자유민주주의의 기본 질서를 존중하는가. 그리고 누가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권력을 독점하려 하는가. 답은 그리 어렵지 않다. 상식 있는 국민은 말보다 행동을 본다. 구호보다 제도를 본다. 선동보다 결과를 본다.
“왕”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 정작 자신들의 제왕적 권력욕은 숨기는 세력, 자유의 언어를 빌려 자유를 억압하려는 세력, 국민을 앞세워 국민 위에 군림하려는 세력은 결국 국민의 상식 앞에 제압될 것이다.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의 상식을 믿는다. 자유민주주의의 이름을 도둑맞지 않을 국민의 분별력을 믿는다. 그리고 헌법의 정신, 삼권분립의 원칙, 권력은 반드시 견제되어야 한다는 민주주의의 기본 진리가 다시 바로 설 것임을 믿는다.
국민이 깨어 있는 한, 어떤 위선도 영원히 민주주의의 이름을 사칭할 수는 없다.
<論 說 委 員 室>